절강성 관음도량 보타산, 안휘성 지장도량 구화산, 사천성 보현도량 아미산과 더불어 중국불교 4대 성지 가운데 한 곳인 산서성 문수도량 오대산. ‘금오대(金五臺), 은보타(銀普陀), 동아미(銅峨眉), 철구화(鐵九華)’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대산은 중국 4대 불교성지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네팔 등 불교국가에도 널리 알려진 국제적인 불교성지로, 해마다 많은 불자들이 오대산을 순례한다.
오대산을 대표하는 탑원사 대백탑. |
금오대(金五臺)라는 별칭처럼
중국불교 제일성지로 자리매김
현통사 탑원사 남산사 등
유구한 역사 간직한 사찰 ‘다수’
오대산은 우리나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오대산 중대 보궁 태화지에서 목욕하며 문수보살을 친견한 일화가 유명하다. 자장율사는 노승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그대 나라의 동북쪽 명주땅 오대산에 1만의 문수보살이 늘 머물고 있으니 뵙도록 하라”는 가르침과 부처님 사리와 가사, 발우를 전수받고 귀국해 문수신앙을 한국불교에 최초로 전했다.
중국 오대산과 산세가 흡사한 우리나라 강원도 오대산에 월정사를 창건하는데 결정적인 동기가 된 곳이기도 하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집을 짓고 기도한 곳이 바로 현재 오대산 월정사 터다.
강원도 오대산이 문수성지로 받들어지고 있는 점도 이 때문이다.<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스님도 오대산에서 수행한 것으로 전한다. 혜초스님은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오대산에서 인도 스님인 금강지의 제자가 되었고 인도를 순례한 후 <왕오천축국전>을 펴냈다.
오대산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도 유명하다. 오대산은 2000년 중국 국가경관지역으로 지정됐고, 2003년에는 중국 10대 명산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유산과 자연경관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대산 중대 대웅전. |
중국 산서성 오대현 동북북에 위치한 오대산은 사방 500리에 걸쳐 뻗어있는 거대한 산이다. 그 자체로 문수보살의 사상이 깃든 문수도량이다. 오대산 사찰이 창건되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 명제(서기 58~75년) 때의 일이다.
한나라 명제가 사신을 천축국(현재의 인도)에 보내 불경을 구해오게 한 후, 사찰을 조성하면서 문수보살의 사상이 깃든 성지로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수나라 문제는 취암봉(중대), 망해봉(동대), 괘월봉(서대), 금수봉(남대), 엽두봉(북대) 등 오대산 5개 봉우리에 사찰을 하나씩 조성하라고 명했고, 중대 연교사(演敎寺), 동대 망해사(望海寺), 서대 법뢰사(法雷寺), 남대 보제사(普濟寺), 북대 영응사(靈應寺) 등이 각각 들어서며 명실상부 문수성지로서 위용을 갖춰나갔다.
이후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360여 곳의 사찰이 조성되면서 오대산 불교가 전성기를 맞았다. 송나라와 원나라 때에는 사찰 수가 70개 정도로 줄어들었으나 티베트 불교가 오대산에 중국불교와 조화롭게 공존하기도 했다.
명나라 시대에는 다시 한 번 불교가 번성해 많은 사찰들이 복원돼 100여 곳을 넘어섰다. 현재 오대산의 중심부인 대회진(臺懷鎭)을 중심으로 50여 곳의 사찰만이 남아있다.
대회진(臺懷鎭)에 위치한 대라정은 사찰로 동대, 서대, 중대, 남대, 북대의 다섯 문수보살을 모두 모아 놓은 곳으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대라정을 참배하면 오대의 문수보살을 모두 참배한 것으로 인정하는 풍습도 이래서 생긴 것이다. 이같은 풍습이 생기게 된 것은 청나라 건륭제 때부터다.
건륭제는 북경에서 620km나 떨어진 문수성지를 참배하기 위해 두 차례나 오대산을 찾았으나 매번 폭설과 폭풍우로 인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악천후로 오대산을 참배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건륭제는 오대산을 떠나며 대라정 주지에게 3년 뒤 다시 올테니 반드시 문수보살을 참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남겼다. 대라정 주지는 오대의 문수보살을 동일한 크기로 대라정에 봉안하며 황제의 고민을 해결했다.
이후 건륭제는 매년 대라정을 찾아 문수보살을 참배했다. 오대산 다섯 봉우리를 모두 참배하는 것은 조대(朝臺)라고 부르고, 대라정을 참배하는 것은 ‘작은 참배’라는 의미로 소조대(小朝臺)라고 부른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현통사는 오대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북위 효 문제(471~499) 당시 창건된 현통사는 오대산 중턱을 깎아 대규모 가람을 배치한 황실 원찰로, 창건 당시 이름은 화원사였다. 하지만 전국이 혼란했던 시기 전쟁의 화마를 비껴가진 못했다. 당나라에 이르러 태종이 불교에 귀의하며 대대적으로 사찰을 정비했는데, 현통사 역시 이 때 중수됐다.
이후에도 전화로 사찰이 소실돼 600년 전 명나라 태조가 복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대산 밀교사찰을 대표하는 탑원사는 중화인민공화국 창건의 주역인 모택동, 주은래 등이 국민당과 내전을 벌일 당시 머물렀던 사찰로도 잘 알려져 있다.
탑원사는 이름 그대로 현통사의 탑원이었으나 명나라 때 사리탑을 중수하며 별도 사찰로 독립했다. 특히 탑원사는 티베트 불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쫑카파 스님이 1410년경 설법을 했던 것을 인연으로 현재까지 많은 티베트 불교 수행자들이 찾는 성지로 꼽히고 있다.
중국 3대 석굴 가운데 하나인 운강석굴. |
탑원사에는 오대산을 상징하는, 높이 56.4m 규모의 대백탑(大白塔), 문수보살의 머리카락을 봉안한 문수발탑(소백탑), 대형 윤장대와 2만여 권의 경서가 보관된 장경각 등이 있다. 원나라 때 창건된 남산사는 오대산 조각예술의 백미로 꼽힌다.
남산사는 전체 7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아래 3층은 극락사, 중간 1층은 선덕당, 위 3층은 우국사로 불린다. 남산사 제일 위층인 우국사에서는 오대산 4곳의 봉우리를 모두 볼수 있다. 이밖에도 오대산 최대 불상인 천수관음을 모신 금각사, 공중에 매달린 사찰로 유명한 현공사 등도 오대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돈황막고굴(敦煌莫高窟), 용문석굴(龍門石窟)과 함께 중국 3대 석굴 중 하나인 운강석굴(雲崗石窟)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석굴은 기원 453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494년에 완성됐다. 동서로 1㎞나 이어져 있으며, 주요 동굴 45개를 비롯해 크고 작은 동굴감실이 252개, 5만여 석조조상이 현존하고 있다.
특히 제20굴에는 운강석굴을 대표하는 석불인 운강노천대불이 조성돼 있다. 굴 앞 벽이 붕괴되어 불상의 모습이 밖으로 훤히 드러나 운강석굴의 대표 불상으로 알려졌다.
자료협조= 대승투어
[불교신문3197호/2016년4월27일자]
엄태규 기자 che11@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승인 2016.04.2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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