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간쑤성(甘肅省) 서쪽 끝 타림분지에 둔황시가 있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이자 세계 최대 석불군이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20Km 지점에 있다. 사방이 사막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지역에 동굴을 파서 부처님을 모셨다. 그것도 매 시대마다 새로운 부처님을 조성했다.
둔황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이자 고대의 동서교역·문화교류의 거점으로 인류가 사막 오아시스에 조성해 놓은 ‘불국정토’로 평가된다. 1987년에 유네스코는 둔황석굴 일대를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중국 간쑤성 서쪽 끝 타림분지의 둔황시 동남쪽 20Km 지점에 실크로드의 요충지이자 세계 최대 석불군인 둔황석굴이 있다. |
1600여 년 전부터 조성
둔황은 중국 서북쪽 맨 구석에 위치한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여러 전란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비단길의 요충지여서 가장 먼저 불교를 접한 지역이기도 했다. 이 지역은 항상 전략적인 요충지여서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했고 민족적 갈등과 군사적 충돌도 잦았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새로운 사상적 도구를 찾아 백성에 대한 통치를 강화할 필요성이 생겼고 통치자 자신도 불교라는 고등종교를 이용해 자신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둔황을 중심으로 한 자연스러운 불교융성은 불경번역과 고승출현으로 이어졌다. 특히 동진시대의 법현스님은 인도로 가서 불경을 가져오는 구법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찰경내에 굴을 파고 절을 지어 신도를 모아 경전을 강설하기도 하고 경전을 번역하며 중국내에 불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366년 전진(前秦)의 낙준스님에 의하여 시작된 석굴사원의 조성사업은 북위, 서위, 북주, 수, 당, 5대, 송, 원에 이르는 13세기 무렵까지 지속되었다. 처음 석굴의 조성시기는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와 비슷하니 지금부터 약 160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부터 14세기까지 약 1000여 년간 수많은 스님과 통치자, 조각가, 화가, 도공, 목공들이 이 황량한 사막의 한 켠 석벽에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염원하며 도솔천 세계를 아로새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크고 작은 석굴이 1000여 개나 됐다.
‘벽 위의 박물관’ 채색벽화
둔황석굴 안에 그려져 있는 벽화. |
둔황석굴이라 함은 막고굴을 중심으로 한 석굴을 말하는데 막고굴, 유림굴, 서천불동, 동천불동과 다섯 개의 묘석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막고굴이 가장 크며 대부분 경제력이 풍성했던 당나라 때 조성된 것들이다.
1000여 개의 석굴은 다시 1000여 년 동안 자연과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소멸되어 지금은 500여 개의 석굴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석굴조각의 장엄함과 예술성은 인류문명의 보물창고로 평가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둔황은 인류문명을 소중히 생각한다고 하는 서구 선진국들에 의해 약탈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서구열강의 대륙 침략과 둔황 유물에 대한 발견과 연구가 ‘둔황학’을 낳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둔황의 유물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갈기갈기 찢어진 종이조각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벽 위의 박물관’으로 불리는 막고굴의 채색벽화는 감탄을 자아낸다. 그 종류도 불상화(佛像畵), 불전고사화(佛典故事畵), 본생고사화, 인연고사화, 비유고사화, 경변화(經變畵), 불교사적화, 공덕상 등 다양하다. 불상화는 부처님과 보살 등 불자들이 신봉하는 존엄한 분을 모시는 형상으로 석가모니부처님과, 삼세불, 칠세불, 십방제불(十方諸佛), 현겁천불(賢劫千佛) 등이 있다.
둔황석굴 입구에는 매 호실마다 번호를 붙여 놓았다. |
경전에 나타난 오래된 이야기에 근거해 그린 벽화가 불전고사화다. 이 벽화는 여러 장면을 연결하는 식으로도 조성되기도 했다. 오래된 이야기에는 드라마틱하고 애절한 사연을 많이 담고 있다. 여기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와 관련된 설화도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전생에 행했던 여러 선행을 묘사한 본생고사화 벽화도 있으며 석가모니부처님의 심오한 불교의 가르침을 제자들과 재가불자들에게 설법하는 비유고사화도 있다.
경전을 근거로 그린 경변화(經變畵) 혹은 변상도(變相圖)도 있다. 경변화에는 하나의 경전을 한 폭의 그림으로 거대하게 그렸다. 막고굴에 있는 주요한 경변화 가운데 ‘유마힐경변 維摩詰經變’은 유마경 14품 중 유마힐거사가 꾀병을 부려 문병 온 문수보살과 논쟁을 하는 대목도 있다.
불교의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을 그려놓은 불교사적화도 있다. 당나라 초기에 조성된 제323호굴에는 불교사적고사가 가장 많이 그려져 있다. 공덕상은 돈을 내고 동굴을 파고 불상을 조각한 시주를 위해 그린 상이다.
인류문명의 대발견, 장경동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막고굴 제17호실 모습. |
11세기 어느 날, 누군가가 둔황 막고굴에 수많은 문서를 넣고 밀봉해 버렸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는데 그곳이 바로 장경동(藏經洞)이다.
장경동은 매우 극적으로 발견됐다. 1900년 호북성 출신 왕원록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찾아와 그동안 돌보지 않아 흙모래에 묻혀있는 석굴을 보고 이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굴을 보수하려고 굴 한쪽에 쌓여 있던 모래를 쓸어냈는데 벽에 금이 하나 생겼고, 이 벌어진 틈으로 막대기 같은 것을 찔러 넣으니 쑥 들어갔다.
그곳에는 흙으로 막힌 작은 문이 있었다. 작은 문을 열어보니 안에 한 칸의 석실이 또 있었는데, 겨우 한 사람 정도 들어 갈 수 있는 크기였다. 그 석굴 안에는 약 5만여 권의 경전과 고문서들이 발견되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더욱 의미 있는 사건은 장경동, 즉 막고굴 제17호실에서 신라 혜초스님이 인도를 갔다 온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신라 스님이 목숨을 걸고 인도를 다녀온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선지식의 처절한 구법정신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대승투어 최우창 차장은 “실크로드를 통해 한반도에까지 전파된 불교의 원류 중의 한곳이 둔황으로 한국불교에 영향을 미친 곳이라 불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성지”라며 “한국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협조: 대승투어
[불교신문3146호/2015년10월21일자]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승인 2015.10.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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