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중국성지순례

월 기획 / 해외성지순례 ⑮ 중국 선종사찰 (下)6조 혜능스님의 가르침 한국선으로 꽃피다

정혜거사 2019. 2. 13. 11:02


 
위 좌측 사진은 3조 승찬스님이 머문 삼조사 일주문.

#3조 승찬스님 머문 톈주산 삼조사

 

소림사에서 남쪽으로 내달려 후베이(湖北)성 안칭(安慶)시 쳰산(潛山)현 톈주산에 중국 선종의 3조(三祖)인 승찬스님이 머물렀던 삼조사가 있다. 삼조사의 현재 소속종파는 임제종이다. 2조 혜가스님의 법을 이은 승찬스님은 중국 선종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해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인물이다.


 후베이성 출신이라는 것 이외에 출생연도나 속가의 성도 알려지지 않았다. 풍병(나병)을 앓다가 혜가선사를 찾아가 문답 끝에 그 자리에서 깨침을 얻었고, 이후 후베이성 텐주산에서 수행하며 법을 펴다가 원적에 들었다. 저술로는 선불교 명저의 하나로 손꼽히는 <신심명(信心銘)>이 있다.



3조인 승찬스님은 ‘누가 너를 묶어 놓았는가(誰縛汝)’라는 화두로 유명하다. <전등록>과 <조당집> 등에 혜가스님과 승찬스님의 선문답이 나온다. 혜가스님이 소림사에서 법을 펴고 있을 때 마흔 나이는 넘었을 법한 거사가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불쑥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다.



“제자는 풍병을 앓고 있습니다. 화상께서 참회하게 해 주십시오.”

“죄를 가지고 오너라. 내가 참회시켜 주겠다.”

“죄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대의 죄는 다 참회되었다. 앞으로는 불(佛) 법(法) 승(僧)에 의지해 머무르라.”

혜가스님은 “너는 나의 보배다. 승찬이라 부르라”며 제자로 삼고 법을 전했다.



승찬스님은 초조 달마스님으로부터 시작된 ‘자기 마음이 곧 부처’이며 평상심이 곧 도임을 일깨웠다. 삼조사의 ‘3조동(三祖洞)’에는 승찬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동굴 왼쪽에 있는 큰 바위 윗면에는 ‘묶인 것을 푼다’는 해박(解縛)이라는 붉은 글씨가 있다. 삼조사에 있는 승찬대사가 선 채로 입적한 곳에 세워진 입화탑(立化塔)도 꼭 가봐야 할 성지다.

 

  

중국 선종의 4조인 도신스님이 주석했던 사조사의 비로탑. 당나라에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11m나 된다.


#4조 도신스님 주석처 솽펑산 사조사

 

삼조사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후베이(湖北)성 황메이(黃梅)현 솽펑(雙峰)산에 중국 선종의 4조(四祖)인 도신스님이 주석했던 사조사가 있다. 승찬스님의 선맥(禪脈)을 계승한 도신(道信, 580~651)스님은 이곳에서 30여 년 간 법을 폈다.



사조사는 한국불교와 인연이 깊다. 신라 출신 법랑(法朗, 632~?)스님은 도신스님의 4대 제자로 꼽힐 정도였기 때문이다. 도신스님의 전신을 모신 사조사의 비로탑 안에는 법랑스님의 입상이 함께 있다. 법랑스님의 문하에 있던 신행(神行, 704~779)스님이 다시 중국에 가서 선(禪)을 배워와 전파함으로써 훗날 한국불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기원이 됐다.

사조사의 가장 큰 유적은 비로탑이다. 산 중턱에 세워진 이 탑은 벽돌로 쌓은 전탑(塼


塔)으로 당나라대 에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11m나 된다. 이 탑은 도신스님이 자신의 후계자인 홍인스님을 얻은 것을 기념해 세웠다고 하기도 하고, 도신스님의 묘탑(墓塔)이라는 설도 있다.



사조사는 중국 선종사에서 스님들이 사찰을 건립하고 거주하면서 집단수행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사조사에서 도신스님은 선농일여(禪農一如)의 사상을 펼쳤다. 이는 인도에서 스님들의 노동금지와 걸식이라는 전통적인 수행방법을 넘은 중국식 불교의 모습이었다. 100여 년 후 만들어진 백장 회해스님의 ‘백장청규’ 계율의 시원으로 여겨진다.

 

  
6조 혜능스님 등신불로 광둥성 남화선사에 모셔져 있다.

#5조 홍인스님 법 펼친 핑마오산 오조사

 

사조사에서 10여km 떨어진 곳인 핑마오(憑茂)산에 5조(五祖) 홍인스님(弘忍, 594~674)이 머물렀던 오조사(五祖寺)가 있다.



사조사인 솽펑산과 오조사 핑마오산은 그 위치 때문에 각각 서산(西山)과 동산(東山)으로 불렀다. 홍인스님이 법을 펼쳤던 동산의 오조사는 중국 선종의 법문이 본격적으로 행해진 곳이다. 이른바 ‘동산법문(東山法門)’이 발원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홍인스님의 두 수제자인 혜능(慧能)스님과 신수(神秀)스님이 가르침을 받았던 곳이다.



오조사에서 신수스님은 이 사찰에서 공부하는 1000여 명의 대중 가운데 가장 빼어난 학식과 외모로 대중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에 비해 혜능스님은 일자무식의 나뭇꾼 출신으로 변방 출신의 20대 행자였다. 마땅히 신수스님이 홍인스님의 법통을 이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혜능스님에게 법맥을 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홍인스님은 아버지 없이 태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홍인스님은 도신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상펑산에서 70이 넘도록 소나무를 가꾸며 출가의 꿈을 꾸었는데 계속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을로 내려와 빨래를 하고 있던 처녀의 태(胎)에 들어가 태어났다는 설이 전한다.


오조사에는 홍인스님의 어머니 좌상(坐像)을 모신 성모전(聖母殿), 홍인스님의 수제자인 신수스님을 제치고 의발(衣鉢)을 전수받은 6조(六祖) 혜능(慧能) 대사가 행자로 일했던 방앗간이 유명하다.

 

  
우측은 5조 홍인스님이 법을 펼친 오조사의 대웅보전.

#6조 혜능스님 주석처 조계산 남화선사

 

광둥(廣東)성 제2의 도시인 사오관(韶關)시에서 남쪽으로 20km쯤 떨어진 곳에 중국 선종의 육조(六祖)인 혜능(慧能, 638~713)스님이 30년간 법을 펼친 남화선사(南華禪寺)가 있다. 옛 이름이 보림사(寶林寺)인 이 사찰 입구에는 ‘조계(曹溪)’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이곳을 가로지르는 냇물이 조계였다.



또 사찰의 뒷편 산 이름도 조계산이다. 우리나라 대한불교조계종 또한 그 이름에서 비롯됐으니 한국불교의 원류가 아닌가 싶다. 혜능스님이 법을 펼친 남화선사에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명패가 있다. 이를 지나면 큰 글씨로 조계(曹溪)라고 써놓은 편액이 걸려 있다.



남화선사에는 좌선한 채 열반한 모습 그대로 보존된 혜능스님의 진신상인 등신불이 봉안돼 있다. 원래는 대웅전 뒤편 5층 전탑에 있던 것을 옮겨 화려한 좌대 위의 유리관 속에 모셨다고 한다.



그 뒤에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다. 대승투어 최우창 차장은 “중국 선종사찰은 한국 선종과 깊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찰로 한국 선종을 공부하는 스님과 불자들의 순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협조 : 대승투어,  참고자료:<그 마음을 가져오너라>(조계종출판사)

[불교신문3089호/2015년3월18일자]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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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8 1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