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사 쌍림석굴에 원석을 이용해 조성한 석가모니 부처님(사진 ①) |
중국대륙은 문화유산의 보고다. 특히 불교 문화유산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절강성 신창도 많은 불교문화재를 보유한 도시다. 아직 한국인의 발길이 많지 않은 지역이지만, 항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이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각광 받는 곳이기도 하다. 신창의 대표적인 사찰이 대불사(大佛寺)다. 대불사는 이름 그대로 거대한 불상이 다수 조성된 사찰이며, 1600년 역사에 걸맞은 문화유적이 담긴 사찰이다. 대불사를 중심으로 신창 지역 불교유산을 답사해 보자. |
대불사는 사찰 내 명승고적과 문화유산이 풍부해 ‘전국 중점 개방 사원’으로 불리는 곳으로 1600여 년 전 창건된 사찰이다. 불교학원의 발원지였으며, 중국 최초의 미륵불 도량으로도 유명하다. 미륵도량으로 성장할 당시에는 중국 전역에서 고승들이 집결하는 장소였으며, 천태시조 정중의 한 곳으로 자리했다.
사찰을 찾은 역대 문인들의 이름도 눈에 띈다. 왕희지, 이백, 맹호연, 미불, 안진경, 홍일 등 비롯해 수많은 문사들이 이곳을 다녀가며 글을 남겼다. 근래에는 현대 중국 불교의 성장 기반을 닦은 조박초 선생과 일본 마쯔유라유히끼 등 명사들이 이곳을 찾았다.
대불사에는 지금부터 1500년 전인 공원 486년에 굴착한 ‘강남제일대불’이 모셔져 있다. 미륵불상으로, 중국 사천성 낙산대불보다 200여 년 빠르게 조성된 불상으로 석굴불상으로는 중국 강남 일대에서 조성연대와 규모가 제일이다.
남조시대 문인인 유협은 이 미륵불을 ‘불세지모 무등지업’(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요, 더할 나위없는 업적)이라고 치켜세웠다.
대불사에는 또 1075위의 석불이 보존돼 있어 강남의 돈황석굴로 불린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건물로 불심광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불국동천, 천연성경, 쌍림석굴과 노천 미륵불, 500나한굴, 백운호 등 다양한 유적이 자리해 있다.
# 쌍림석굴과 천불선원
사진 ②는 월국돈황에 조성한 부처님 |
쌍림석굴에는 거대한 바위를 따라 불상을 조성한 와불이 모셔져 있다. 남북으로 23m, 좌우로 48m에 이르는 거대한 석불은 본 바위를 조각한 것으로, 사라나무 아래서 열반에 든 부처님의 모습이다. 당대 석굴 예술의 걸작으로 꼽힌다.
천불선원은 동진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원래는 원화사라고 불렀다. 남제 영명3년(485년)에 굴을 만들어 천영존을 조성했는데, 석굴 내 가장 큰 불상은 18m에 달하며, 높이 7m, 길이 10km의 석굴을 따라 1040위의 불상이 조성돼 있다. 작은 석굴에 모셔진 35위 불상과 더불어 1075위의 불상이 조성된 공간이다.
# 반약골과 노천미륵
야외 바위에 부처님과 일대기 등을 조성한 반약골 전경. |
반약골은 명조 지하의 채굴장으로, 지금은 폭포와 청지, 돌계단과 터널로 조성돼 있다. 석벽에는 부처님의 본생담이 새겨져 있어 사람들에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또 보현ㆍ문수ㆍ관세음ㆍ지장보살을 바위에 새겼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중국에서는 묘덕보살이라고 하는데, ‘불성을 보기 때문에 덕이 원만하지 않음이 없고, 번뇌가 다하지 않음이 없어 묘덕’이라고 한다. 보현보살은 중국에서 연명보살이라고도 한다. 중생들의 생명을 길게 이어주는 덕을 지닌 보살이란 의미다.
또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모든 것을 지켜보며 고뇌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주는 분이며, 지장보살은 지옥세계의 중생을 다 제도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로 “탐욕을 모두 버리고 서원의 갑옷을 입은 4대 보살”을 석굴 벽면에 조성했다.
반약골에는 또 운광개산, 지축유풍, 반약창조, 삼색승적, 지자원적 등 중국불교를 이끈 스님들의 수행모습을 생동감 있게 조각했다. 야외에는 작은 산 하나를 이용해 조성한 특이한 미륵불이 있다.<사진> 높이가 30m에 이르는 산을 몸으로 하고, 그 위에 인공으로 조성한 두상을 얹어 완성했는데, 마치 산이 미륵불의 몸처럼 다가온다.
이 모습을 본 관람객들은 “불상이 하늘을 떠밀고 있는 듯하며, 산이지만 산이 아니고, 불상이지만 불상이 아닌 듯하다”고 말한다. 중국 강남일대에서는 ‘불산성경’이라고 불린다.
# 오백나한동과 월국돈황
대불사 유적 가운데 비교적 근래에 조성된 곳이 오백나한동으로, 청나라 건륭(1787년)에 건립됐다.<사진> 일제시대 훼손된 것을 최근 다시 개보수를 했는데, 500위의 나한이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한분 한분의 표정은 강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주로 앉아 있는 형태의 우리나라 오백나한상과 달리 서서 움직이는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근대 중국에서 보기힘든 걸작품으로 꼽힌다.
대불사 참배에서 놓칠 수 없는 곳이 ‘강남 제일대불’ 월국돈황이다. 남조시대인 418년부터 516년에 걸쳐 굴착을 진행해 조성한 월국돈황은 중호ㆍ중속ㆍ중우스님 3대 30년에 걸쳐 조성한 유적이다. 전 중국을 통틀어 가장 초기에 발굴한 곳으로 강남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석굴예술품이다.
대불은 높이가 15.6m에 이르는데, 가부좌를 튼 다리 넓이가 10.6m, 귀 길이가 2.8m, 눈 길이가 1.08m에 달하는 거대한 불상이다. 불상을 여러 각도에서 보면 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인자한 웃음을 잃지 않고 있어 신비함을 자아낸다.
대불사는 그 규모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꼬박 하루 동안 돌아다녀도 문화유산을 꼼꼼히 살펴보기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는 대불사의 규모에 감탄해 1년간 머물렀다고 한다.
# 인근 관광지 보타산ㆍ주가각
관세음보살을 모신 보타산은 절강성 영파시 동쪽 바다 가운데 위치해 있다. 주산군도 500여 개 섬 중 하나로, 지장보살을 모신 안휘성 구화산, 보현보살을 모신 사천성 아미산, 문수보살을 모신 오대산과 더불어 중국 4대 불산의 하나다.
옛 시인들은 보타산의 아름다운 절경에 대해 “산과 호수의 으뜸은 서호에 있고, 산과 강의 명승은 계림에 있고, 산과 바다의 절경은 보타에 있다”며 칭송하기도 했다.
보타산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것은 862년의 일로, 혜악스님이 오대산 관세음보살상을 일본으로 모셔 가던 도중의 일이었다. 영파를 떠난 배가 매령산에 도착했을 때 태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 하는 수 없이 매령산 조음동으로 피했다.
신심이 깊었던 이 마을 장씨 부인이 쌍봉산 기슭의 자택 별실을 내어 관세음보살을 모시자 ‘이곳이 관세음보살을 모실 인연지’라고 생각한 혜악스님은 매령산에 관음원을 짓고 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송나라 초에 매령산을 보타산으로 개칭했고, 송 태종3년에 보제사의 전신인 원광사를 지었는데 이때부터 보타산이 관음보살의 도량이 됐다.
주가각은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된 수향(水鄕)으로 ‘상하이의 베니스’ 라고 불린다.<사진> 송원 시대부터 유명한 마을로, 그 중심에는 ‘팡성차오(방생교)가 있다. 성조스님이 이 다리를 건설하면서 “고기나 자라를 잡아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방생교라 불리게 됐다.
자료협조= 대승투어
[불교신문3275호/2016년2월22일자]
안직수 기자 jsahn@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승인 2017.02.2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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