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전통 계승하며 찬란한 문화유산 꽃피워
세계유산 담불라석굴 비롯
치아사리 봉안한 불치사
공중에 조성된 시기리야
스리마하 보리수 등 유적 다수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유적지 시기리야. 시기리야는 200m 바위산 정상에 고대 왕궁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
인도대륙의 남단 인도양 위에 떠 있는 섬나라인 스리랑카는 예로부터 ‘동양의 진주’, ‘보석의 섬’으로 불렸다. 산스크리트어로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면적은 한반도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수려한 자연과 2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기원전 3세기부터 초기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오늘날까지 불교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오고 있다.
스리랑카는 인구 약 2000만명으로 이 가운데 약 70%가 불자들이다. 헌법에서 불교에 최우선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섬 전체는 불교적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매월 보름은 뽀야 데이(Poya day)라고 해서 공휴일로 지정해 식당이나 술집에서 술 판매와 살생을 금하고 있다. 불교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만큼 많은 불교 사원들과 유적들이 전 세계 순례자들과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불교성지는 담불라(Dambulla) 석굴이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담불라 석굴은 160여 개의 불상과 신상이 조성돼 있고, 천장과 벽에는 화려한 빛깔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담불라 석굴은 각각의 동굴이 하나의 사원이다.
석굴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위대한 왕의 사원’이라는 뜻을 가진 마하 라자 비하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위대한 왕은 사원을 세운 도투게무누 왕으로 절 안에는 그의 석상도 조성돼 있다.
마하 라자 비하라는 스리랑카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마하 라자 비하라는 제2동굴로, 담불라 석굴 가운데 최대 규모다. 폭 52m, 깊이가 25m, 높이는 입구 부분이 약 6m이고 동굴 내부로 들어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동굴 안에는 56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불상과 함께 참배객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벽과 천장에 그려진 벽화이다. 벽화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와 스리랑카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제1동굴인 데바 라자 비하라는 ‘신들의 왕의 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담불라 석굴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이다. 데바 라자 비하라에는 이 사원 최대 불상인 열반상이 모셔져 있다. 벽과 같은 자연석으로 조각된 것으로 전체 길이는 약 14m에 달한다. 전신은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고 발바닥에는 빨갛게 불꽃같은 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제3동굴은 ‘위대한 새로운 사원’이라는 뜻을 가진 마하 알트 비하라다. 18세기에 왕 킷티 시리 라자하에 의해 세워진 사원으로, 길이 9m의 와불을 비롯해 57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제4동굴은 ‘서양의 절’이라는 이름의 파스시마 비하라다.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부터 스리랑카를 구하기 위한 구국 일념에서 세워진 사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규모가 상당히 작은 편이다.
부처님 치아 사리를 봉안한 불치사. |
불치사(佛齒寺)는 콜롬보의 북동쪽 11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스리랑카의 제2도시인 캔디(Kandy)에 있는 불교사원이다. 불치사는 연주황 벽에 갈색 지붕을 한 싱할라 건축양식의 팔각형 전각이 아름답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원 내부에는 크리스탈 바위를 깎아 만든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상과 정밀한 조각이 새겨진 돌문, 옅은 감색의 화려한 당초 모양으로 만들어진 천장 등이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원 안에 봉안된 부처님 치아 사리는 인도에서 부처님께서 열반했을 때 모셔온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스리랑카로 모셔온 때는 4세기경으로 이후 스리랑카의 수도를 옮길 때마다 불치사리도 함께 이동했다.
불치사리가 캔디로 옮겨진 것은 1590년으로 당시 캔디 왕 수리야 1세는 불치사리를 모시기 위해 2층 건물의 사원을 조성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남아 있는 불치사이다. 현재 불치사를 둘러싼 법당과 전각은 캔디 왕조의 마지막 왕 라자신하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왕권의 상징으로서 불치사리가 있는 곳이 바로 스리랑카의 수도일 만큼 스리랑카에서는 불치사리를 매우 소중한 성보(聖寶)로 여겨 왔다.
불치사는 새벽부터 황혼 무렵까지 개방되어 있어 참배가 자유롭다. 하지만 불치사리가 조성된 방의 문이 열리는 때는 하루에 세 번, 푸자 의식이 행해질 때뿐이다. 이 때는 스리랑카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순례객들로 사원이 북적거린다.
스리랑카 중부의 밀림 지대에 위치한 시기리야(Sigirya) 역시 대표적인 유적지다. 시기리야는 200m 바위산 정상에 고대 왕궁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사자 모양의 성문 유적에 남아 있는 거대한 발의 앞부분과 암벽에 그려진 500명의 천상계 여인의 모습이 옛 왕조의 영화를 나타내고 있다.
사자의 머리와 갈기를 표현하기 위해 촘촘히 벽돌을 박았던 흔적이 절벽에 남아 있다. 시기리야라는 이름도 싱하(사자) 기리야(목구멍)에서 유래했다. 바위산 아래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과 담장과 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 유적이 펼쳐지는데, 기하학적이고도 아름다운 ‘물의 정원’ 유적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982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160여 개의 불상과 신상이 조성돼 있는 담불라 석굴.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
스리마하 보리수도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불교유적이다. 스리랑카 최대의 불교 성지인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스리마하 보리수는 인도 아소카 왕의 공주 상가미타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도한 보리수 가지를 기원전 3세기경 이곳에 가지고 와서 심은 것이라고 한다.
스리랑카에 보리수 나무가 전해지자 데나남피사 팃사왕은 그 보리수를 아쇼카왕의 소원대로 정성껏 모시고 그 보리수를 주변으로 많은 참배객들이 머물 수 있는 사원을 조성했다.
이밖에도 바위사원이라고도 불리는 이수르무니야 사원도 중요 성지다. 이수르무니야 사원은 기원전 3세기 불교가 스리랑카에 전래된 이후 최초로 조성된 불교 사원이다. 포쿠나라고 불리는 연못에서 손과 발을 씻고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고, 언덕 위의 다고바를 시계방향으로 탑돌이를 하고, 다음으로 보리수를 참배하고 마치 석굴암처럼 바위 속에 조성된 법당에(바위 사원) 참배하는 순서이다.
법당 왼쪽에는 일본 천초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그린 사원 설립 벽화를 만날 수 있으며, 박물관에는 왕이 앉았던 돌의자와 왕족상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왕자와 신분이 낮은 여인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묘사한 연인의 상도 유명하며, 불교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데바남피샤 팃샤왕에 의해 완성된 팃사웨와 저수지도 볼거리다.
자료협조=대승투어
[불교신문3243호/2016년10월26일자]
엄태규 기자 che11@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승인 2016.10.2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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