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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가야 (부다가야)

정혜거사 2019. 2. 12. 22:18

보드가야 (부다가야)

 

◆ 마하보디 대탑 사원

마하보디(महाबोधि , Mahabodhi) 사원 복합단지는 붓다의 생애와 관련된 4개의 성지 가운데 하나로, 특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초기 불교 사원은 기원전 3세기경 아소카(Asoka) 왕이 축조하였고, 현존하는  불교 사원은 5세기〜6세기경 굽타 왕조 후기에 벽돌로 지었으며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마하보디 사원단지는 붓다의 생애(기원전 566~486)와 직접 연관이 있는데, 기원전 531년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 앉아 깨달음, 즉 정각(正覺)을 이룬 곳이다.
 마하보디 사원 단지는 붓다의 생애와 관련된 기록과 이후의 예불 의식을 잘 보여준다.


  1,880년에 커닝험이 이 대탑은  힌두사원이 아니고 부처님이 성도하신 자리에 아쇼카왕이 세운 불교 탑인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불교가 없어지자 이 대탑은 힌두사원이 되어 불자들은 참배도 할 수 없었던 때였다.


미얀마의 왕이 이 정보를 듣고 이곳의 힌두 왕에게 엄청난 돈을주고 이 탑을 수리할 수 있는권한을 얻고 나서 많은 사람을 보내 거의 현재처럼 복원하였다(12세기 전반).

 

그리고 미얀마 왕은 이 곳의 왕과 함께 참배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부다가야 사원 경영위원회가 발족되어 힌두교 4명, 불교인 5명, 정부관리 1명이 관리하고 있는데, 정부관리는 반드시 힌두교인이어야 한다니  아직도 소유권이 완전히 불교로 넘어온 것은 아니라 하겠다.

계속 소유권을 요구하고는있지만 인도에는 스님도 불자도 소수(0.3%)이기 때문에 쉽게 타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많은순례객들이 오고, 또 인도정부의 관광수입에 굉장한 비중을 차지함으로 성지 관리는 잘 되는 편이다.

부처님이 보리수나무에서 동편으로 앉아서 새벽 별빛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여 나무 동편에 대탑을 쌓았다고 한다.

대탑 1층은 굴로 된 법당으로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한 때 힌두사원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부처님 불상 밑에★링가를  모셨으나 지금은 철거되었다.

★링가 linga --  힌두교에서 시바신(神)의 상징. 산스크리트로 링가는 <표지> 또는 <심볼>을 뜻하며, 특히 남성의 성기를 가리킨다. 이것을 본뜬 조상(彫像)이 시바신의 힘의 상징으로서 오늘날까지 인도 민중들로 부터 숭배를 받고 있다. 풍양다산(豊穰多産)의  상징으로서 링가의 숭배는 《마하바라타》등에서도 보이며, 대부분의 힌두교 사원에 모셔져 있다. 그 형태로는 링가의 윗 부분에 시바의 머리를 돋을새김한 것도 있으며,  2·4·5면의 것도 있다.

안으로 해서 2층 계단으로 올라가면 동편에도 역시 돔이 있어 아침 5시부터 저녁 9시까지 스님들과 외국인들이 함께 참선을 한다. 대탑의 2층 네 귀퉁이에는 대탑과 거의 같은 모양의 탑이 세워져 있다.

대탑 주변의 조그마한 스투파들은 봉헌 스투파라고 하여 대탑에 공양을 올리는 탑으로써, 후대 사람들이 작은 탑을 쌓아 수천개가 되었다.

현장스님의 기록에 큰 탑 주위에 작은 탑이 수천 개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봉헌 스투파이다. 이런 탑들은 나란다 대학에 사리푸트라탑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대탑 동문으로 들어와 대탑을끼고 돌아가면 서편에 부처님께서 그 아래 앉아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보리수나무가 있다.

그러나 이 나무는 2600년 전 그 보리수는 아니다.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을 당시 있던 보리수의 씨앗을 스리랑카에 가져다 심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이 곳의 보리수가  죽자, 그 씨앗에서 자란 나무의 자손인 어린 묘목을 가져와다시 심은 것으로 수령은 200년 정도 되는 나무이다. 보리수 오른쪽으로는 부처님의발자국이 그려져 모셔져 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을 그리워했지만, 부처님은 원래 남기신것이 하나도 없었다.

불상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500년이 지나서,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간다라 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성되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부처님께서 맨발로 다니시며 남겼던 족적을 떠서 조각으로 만들거나 또는 보리수로 부처님을 상징하며 숭배하였다.

그 보리수와 대탑 사이에 길상초를 깔고 깨달음을 얻으신 금강보좌가 모셔져있다. 지금은 돌 위에 길상초를 새겨 기념하고 있다..

 

                        < 금강보좌 >                                                                               <보리수>



◆ 7 선정터_ 
깨달음을 얻으시고  선정에 드셨던 곳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그 자리에서 
첫 일주일을 보내면서 법열을 즐기셨으며, 선정에 들어있는 동안 시방세계의 불보살들이 모인 가운데 화엄경을 설하셨다고 한다.

두 번째 주에는 동문 왼편에서 자신이 깨달은 그 보리수 나무를 눈을 깜박거리지 않고 일주일간 응시하였다는데, 그것은 나무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셋째주는 대탑 북편에서 동서로 19발 자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주일간 행선, 즉 움직이면서 선정에 드셨다. 그 걸음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라 부처님 발을 받쳐주었다고 하여  연꽃무늬를 바닥에 새겨놓았었는데 지금은 다 파괴된 모습으로 남아 있고,다시 단을 쌓고 그 위에 새롭게 19개의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았다.

넷째주는 보리수나무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시 일주일간 앉아 계실 때, 부처님의 온몸에서 오색광명의  빛을 발하며 보리수를 비추었다고 한다. 이를 형상화 한 것이 불교의 오색기이다.

다섯째 주는 동문과 대탑 사이에 팻말이 있는 그곳에서 일주일을 보내셨다. 그 때 어떤 바라문이 와서 부처님께 ‘어떤것이 훌륭한 바라문이냐?’ 고물었는데 ‘마음이 깨끗한 것이  훌륭한 바라문이다.’라고 대답하니까, 이 바라문은 흥흥하면서 그냥 지나가 버렸다고 한다.

이 사람은 자기의 생각에  빠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기회, 법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여섯째 주에는 대탑의 입구에서 남쪽으로 무칠린다 연못이있는 그 곳에서 선정에 들어 있었는데 비가 엄청나게 와서그 지역이 물바다가 되었다.

그 때 머리가 아홉달린 코브라가 나타나 부처님의 몸을 감싸고, 뱀의 머리를 펼쳐 비를 맞지 않도록 부처님을 덮었다고 한다. 이 연못에 조각된 뱀은  머리가 하나이나 보통 방콕이나 인도의 다른 조각을 보면머리가 9개 달린 뱀이 부처님뒤에서 호위하는 모습을 하고있다.

우리는 이것을 무칠린다용왕이라고 부른다.                        무칠린다연못>

일곱째 주에는 대탑과 무칠린다연못 중간쯤에서 선정에 잠기셨는데, 이곳에 머무르실 때  지나가던 두 상인이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님께 첫 공양을올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복을 빌기 위해서 공양을 올렸을 뿐 부처님께 법은 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세속적인 복은 받았겠지만, 역시 법을 듣고 해탈할 기회는 놓쳐버렸다.

이때  상인이 올린 공양을 어떤 그릇에 받아야 할까를 생각하자 사방의 사천왕들이 금, 은, 유리,마노로 만든 발우를 바쳤는데  부처님께서 그것은 수행자에게  맞지 않는다 하여 받지 않으셨다.  다시 사천왕들이 돌로 만든 발우를 드리자 부처님은 그 모든것을 포개어 하나의 발우로 만드셨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발우는 펼치면4개가 되고 포개면 하나가 되는 발우의 유래는 이렇다.

부처님은 7주가 지난 뒤에 이 깨달음의 법을 듣고 과연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관하시다가 자신의 스승이었던 웃타카라마푸트라와  아라라까라마를 떠올렸다.

그러나그들은 이미 돌아가셨음을 아시고, 자기의 옛 다섯 친구를찾아 ★사르나트로 떠나게 된 것이다.

 ★사르나트 --  보드가야(우르빌바)에서 바라나시까지는 직선거리로도 약 200km정도가 되므로 실제로 부처님께서 지나간 여정은 무척 먼 길이었을 것이다.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 사이를 18유순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1유순(由旬)이란 멍에를 건 암소가 걸어서 하루가 걸리는 거리이다.


 
◆ 니련선하(尼連禪河)강 (니란자라)

마하보디 대탑에서 가까운거리에 있는 강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정각산에서 6년동안이나 고행을 하고서 나이란자나강(니련선하)에서 목욕하고 ,, 걸어서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정좌하고 3x7일 선정에 들었다고 합니다.


◆ 수자타 마을

 
고타마 싯다르타는 독자적인 수행의 길을 걸으면서 극심한 고행을 통해 해탈을 얻으려는 노력도 해보았지만 몸만 극도로 쇠약해지고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는 고행을 포기했다. 수자타라는 처녀가 공양하는 우유죽을 먹고 몸을 회복한 후 나이란자나 강에서 목욕을 하고 그 물을 마셨다고 한다



◆ 전정각산(前正覺山)

네란자라(nerañjarā) 강 건너편에 있는 바위산으로, 고행을 포기한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루려고 이 산에 올랐으나 주위 환경이 여의치 못하여 네란자라 강을 건너 붓다가야로 향했다고 하며, 

그 후, 이 바위산은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오른 산이라고 하여 이와 같이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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