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108사찰

태조산 도리사:아도화상, 태조선원(16.7.8)

정혜거사 2018. 6. 20. 14:52




아도화상

아도의 어머니 고도녕은 중국에서 온 사신 아굴마와 연정이 깊어져 아도를 낳게 되었다.

그 후, 아도가 다섯 살이 되자 고도녕은 아도를 출가시켰다. 아도가 16세가 되자 아도는 중국으로 가 현창화상 밑에서 수행을 하고 고구려로 돌아왔다.



어머니 고도녕은 아들을 불교가 없던 신라로 불법을 전하라며 보내었다.

당시 신라는 외래 문물에 배타적이어서 불교 박해가 심했었다.



그는 묵호자란 이름으로 지금의 선산부 도개에 와서 모례장자의 집에 몸을 의지하고 낮에는 일을 하여 도움을 주고 밤에는 사람을 모아 자비로운 불법을 전하였다.



그때, 양나라의 사신이 신라에 향을 예물로 보내왔으나 그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없어 걱정 해오던 중 모례장자의 추천으로 궁에 들어가 향의 사용법을 알려주길 “향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하여 신성하기가 이를데 없고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다”하였다.


이에 왕의 공주인 성국공주가 큰 병이 들어있었는데, 왕이 아도화상에게 치료를 청하니 아도화상이 칠일간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니 신통하게도 공주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 공덕이로 불교를 전할 기회를 얻었으나, 왕이 세상을 뜨자 아도화상을 해치려 하는 무리들이 공격을 해와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모례장자의 집에 잠시 머물다 떠나려하자 모례장자가 가는 길을 물었으나 “나를 만나려거든 얼마 후 칡순이 내려올 것이니 칡넝쿨을 따라 오시오.”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그 해 겨울 과연 기이하게도 정월 엄동설한에 모례장자 집 문턱으로 칡순이 들어왔다. 모례장자는 그 줄기를 따라가 보았다. 한 겨울인데도 복숭아 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 좌선대에서 아도화상이 정진하고 있었다.



“ 잘 오셨오. 모례장자. 내 이곳에 절을 세우려 하니 이 망태기에 곡식 두말을 시주하시오.”

아도화상은 모례장자 앞에 작은 망태기를 내놓고 시주를 권했다. 모례장자는 기꺼이 승낙을 하고는 다시 집으로 내려와 곡식 두 말을 망태기에 부었으나 어인 일인지 망태기는 두말은커녕 두섬을 부어도 차지 않았다. 결국 모례장자는 재산을 모두 시주하여 도리사를 세웠다.



아도화상은 절 이름을 복숭아 꽃과 오얏꽃의 이름을 따 도리사라 칭했고 그곳이 바로 신라에 처음 세워진 절 도리사이다.



아도화상은 도리사에서 정진하다 나이가 들어 금수굴에 들어가 열반에 들었다. 지금도 도리사에서는 성국공주의 병을 낫게한 아도화상 동상 앞에서 향을 피워 올리며 가족과 친지들의 쾌차를 위해 기원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 가피를 받고 있다.


<도리사 홈페이지>











태조선원(太祖禪院)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으로 정면 7칸, 측면 8칸 규모의 ‘ㄷ자’형 건물이다.

근래의 선지식인 전강영신(田岡永信) 큰스님을 비롯하여, 성철(性徹) 큰스님도 이곳에서 정진하였다. 정면에는 「太祖禪院」ㆍ「桃李寺」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