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 의학전문기자의 주목! 이 클리닉] (27)
중앙대병원 맞춤형암치료클리닉
암세포에 영양분 공급 혈관 파괴
암세포를 굶어 죽게 만들어 치료
최근 항암치료는 맞춤형이 대세
전이된 암 환자 유전자 정보 분석
표적 항암제 등 이용 치료법 결정
중앙대병원 암센터 혈액종양내과 황인규(오른쪽 두 번째) 교수와 하주영(오른쪽 첫 번째) 교수가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검사를 통해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은 대장암 환자에게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5년 전 4기 대장암(직장암) 수술을 받은 사업가 김모(59)씨는 2년 전 암이 재발해 폐와 간까지 퍼졌고 치료가 힘든 절망적 상황이었다. 그에게 희망의 불씨를 되살린 것은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였다.
의료진은 몸 속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대장암 세포만 골라 죽이는 ‘아바스틴’이란 표적항암제 사용을 권했다. 아바스틴은 암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을 파괴하고 새 혈관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6개월 후 표적항암제마저 더 이상 듣지 않는 내성이 생겼다.
의료진은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면역항암제를 써보자고 했다. 김씨의 유전자 검사에서 ‘DNA 불일치 복구 유전자’ 4개 가운데 2개의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면역항암제가 잘 듣는 편이다. 김씨는 지난해 2월부터 ‘옵디보’라는 면역항암제를 2주마다 정맥주사로 맞고 있다. 1년여가 지난 현재 암 크기가 10.7㎝에서 8.4㎝로 줄어드는 등 반응이 나타났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흔히 수술이 불가능한 말기 암이라거나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고 하면 과거에는 치료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근래 항암치료법의 발전으로 암이 주변 조직을 침범하거나 멀리 있는 장기까지 퍼진 3, 4기 암 환자의 극복 사례가 늘고 있다.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3~2017년 진단받은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4%로, 약 10년 전(2001~2005년)의 54.1%보다 1.3배 높아졌다. 수술과 항암, 방사선 등 기존 치료법에 그치지 않고 유전자 검사 등 정밀의학에 바탕을 둔 개인별 맞춤 암 치료가 가능해진 게 생존율 상승에 한몫했다.
중앙대병원 암센터 맞춤형암치료클리닉 황인규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23일 “최근 항암치료는 암 관련 유전자들의 변이를 살펴서 치료에 반영하는 개인 맞춤 치료가 대세”라며 “암 관련 표적유전자를 찾아내 그것만 공격하는 표적항암제, 인체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설계된 면역항암제가 주요 수단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독성을 갖는 1세대 화학항암제에서 진일보한 2세대 표적항암제, 3세대 면역항암제의 등장으로 죽음 문턱의 4기 암도 완치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면역항암제는 표적항암제의 부작용과 내성 문제를 극복할 구원투수로 주목받는다.
개인 맞춤 암치료 활성화에는 전이암 환자들의 유전자 정보를 한꺼번에 동시 분석할 수 있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패널 검사) 보급과 건강보험 급여화가 기여했다. NGS 패널 검사는 적은 양의 검체로 50~150개의 유전자 변이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제품에 따라선 300여개 유전자 변이까지 검사가 가능하다.
대표적 유전성 암인 유방암, 난소암의 경우 암 발생에 관여하는 변이 유전자는 ‘브라카1, 2(BRCA1, BRCA2)’다. 이 병원 혈액종양내과 하주영 교수는 “이들 유전자 변이가 있는 여성은 평생 유방암 발생 위험이 60~80%에 달하고 난소암은 40%”라며 “남성도 이 유전자 변이를 가졌다면 전립선암과 유방암(남성도 유방암에 걸림) 위험이 커지고 췌장암, 대장암 발생과 관련 있다는 보고도 있다”고 설명했다.
폐암은 대부분 흡연 등 후천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지만 가족력이 있으면 발병 위험이 2~3배 높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폐암 발생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주요 유전자 변이는 ‘EGFR’이다. 한국인에 흔한 위암의 경우 ‘Her-2’ 유전자 변이가 전체 위암의 20%를 차지한다. 대장암 환자의 45%는 ‘RAS’ 유전자 변이가 확인된다. 콩팥암의 경우 ‘본히펠린다우증후군 유전자(VHL)’를 갖고 있을 경우 일반적인 콩팥암 발병 연령(50~60세)보다 빠른 평균 39세의 젊은 나이에 발생하는 특성이 있다.
황인규 교수는 “전이된 암 환자의 유전자 정보를 NGS로 분석해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를 이용한 개인 맞춤 치료법을 결정한다”면서 “예를 들어 위암의 경우 환자별로 암을 생기게 하는 유전자 변이가 서로 다르다면 동일한 항암제를 쓰지 않고 각 변이에 맞는 항암제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한 대학병원 연구팀은 1차 항암치료에 실패한 말기 위암 환자를 NGS로 분석해 암 관련 유전자 변이 8개를 발견했으며 그에 맞는 표적항암제 8가지를 골라 투여한 결과 기존 항암제를 썼던 환자보다 생존율이 약 40%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면역항암제는 재발·전이암 치료에 새로운 무기로 부상하고 있다. 2015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키트루다’라는 면역항암제를 써서 뇌까지 번진 악성 흑색종(피부암)을 4개월 만에 완치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니라 원래 몸속에 있는 면역세포(T세포)의 암세포 인식 능력을 증가시켜 암세포 공격을 활성화하는 원리다. 오심 구토 탈모 같은 부작용이 적고 비교적 고령 환자들도 수월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
황 교수는 “면역항암제는 악성 흑색종뿐 아니라 폐암 대장암 유방암 비뇨기암 비호지킨림프종(혈액암) 두경부암 등 여러 암종으로 치료 적응증을 넓히고 있다”며 “면역항암제 단독 사용뿐 아니라 기존 항암제나 표적항암제, 또는 방사선 치료 등과 병용해 치료 효과를 높였다는 연구 보고가 최근 잇따르고 있어 전이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고 했다.
면역항암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해 아예 몸 바깥에서 면역T세포의 기능을 증폭시킨 뒤 재투여하는 면역세포치료제(CAR-T세포 치료제 등) 개발도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주영 교수는 “혈액암 분야에 이런 면역세포 치료제가 세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최근 받았으며 기존 치료에 더 이상 반응이 없던 재발 림프종 환자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걸로 알고 있다”면서 “국내에는 아직 도입 전인데 들어온다 해도 현재로선 약값이 워낙 비싸 환자들의 사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기사입력 2020.03.23. 오후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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