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라스를 배경으로 오색의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이는 곳에서 순례단 스님들은 카일라스 코라 순례를 부처님과 카일라스신께 고하는 입재식을 가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일이던가! 티베트 우주의 중심이라는 수미산 카일라스로의 여행을 말이다. 혼자서 꾸는 꿈은 그냥 꿈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되는 법이다. 드디어 ‘영진스님과 함께하는 수미산 순례’를 지난 8월22일부터 9월5일까지 80여명의 스님들을 모시고 14박15일 다녀왔다. 내 삶과 수행에 있어 하나의 큰 숙제를 해낸 느낌이다. 그렇게 원만히 순례를 마칠 수 있게 한 모든 자연과 사람들의 인연과 자비덕화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진정 행복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티베트의 관문인 라싸의 콩가공항으로 들어가 이틀간 삼예사원과 포탈라궁과 조캉사원, 그리고 드레풍사원과 세라사원을 순례하였다. 그리고 라싸를 출발해 간쩨의 바이쥐사와 십만불탑을 보고는 제2의 도시인 시가쩨로 들어갔다. 시가쩨에서 판첸라마가 머무는 세계 최대의 타쉴룬포 사원을 보고는 샤카사에서 티베트에 최초로 선법을 전한 정중무상 선사와 그의 제자들과 신라 출신의 천축구법승을 위한 추모제를 올렸다. 그후 2박3일간 해발 4~5000m를 넘나드는 티베트 고원을 달려 수미산 아래 다르첸(4565m) 마을에 도착했다.
카일라스 神에 고하는 입재식
다음날 아침에 수미산 코라 순례의 출발지로 향한다. 그런데 출발지에 도착하자마자 수미산이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내밀며 우리를 맞이한다. 그 신비롭고 웅장하며 아름다운 자태에 넋이 나간채 행복의 충격과 전율에 젖는다.
카일라스를 배경으로 오색의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이는 곳에서 우리는 카일라스 코라 순례를 부처님과 카일라스신께 고하는 입재식을 가졌다. 먼저 예불을 드리고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에 법성스님의 축원과 일진스님의 발원문 낭독이 이어졌다. 예불을 드릴 적에 곁에 한 비구니 스님이 감격에 겨워 흐느끼는지라 나도 울컥해 눈물로 참회와 서원의 예불을 올렸다. 그후 사방으로 둘러앉아 10여분간 입정의 시간을 가졌는데, 카일라스가 내 안에 들어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지도법사이신 영진스님의 간결하고 가슴을 울리는 입재사는 히말라야 연봉과 산하대지는 물론 허공과 바람마저 귀기울여 듣는 듯 했다.
티베트의 영혼인 카일라스(6638m)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뵌뽀교의 성지로 ‘우주의 중심’으로 불린다. 티베트어로는 강린포체라고 한다. 수미산 외곽을 도는 카일라스 코라는 총 52Km로 다르첸(4565m)에서 시작해서 돌마라 패스(5640Km)를 넘는 여정이다. 한 바퀴를 도는데 보통 2박3일이 걸린다. 티베트인은 하루만에도 도는 이가 있다고 하고 오체투지로는 10여일이 걸린다고 한다. 카일라스 코라 첫날은 다라푹사원(5210m)까지 12Km를 걸어야 한다.
카일라스 서쪽면을 오른쪽에 두고 협곡 사이의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어 오른다. 길의 양옆에는 야크와 양떼들 그리고 걍이라는 야생동물이 뛰어놀고 오체투지로 순례를 하는 티베트인 가족들 모습이 성스럽고 행복하기만 하다. 바람에 흩날리는 오색의 타르초와 길마다 돌탑처럼 자리한 ‘옴 마니 반메 훔’이나 경문을 새겨 놓은 마니석이 이채롭다. 나도 그 위에 돌멩이 하나와 먼저 가신 은사 스님과 부모님을 추모하는 글을 적은 하얀 천을 매달았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다라푹 사원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위에 도착하니 카일라스 북면이 그 웅장한 자태와 신령스런 기운으로 우뚝 자리한다. 다라푹 사원을 둘러보고는 언덕위 새로 생긴 롯지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는 롯지 뒷편의 전망대에 올라 카일라스 북면과 정면으로 마주대한 채 한바탕 대결을 펼친다.
말이 롯지이지 화장실도 없고 정전은 다반사이다. 새벽 3시경에 일어나서 공중화장실로 볼 일을 보러 나갔다가 문득 밤하늘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카일라스 북면의 위풍당당한 모습과 찬연히 빛나는 휘황한 별빛의 향연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기만 하다. 지상의 온갖 꽃과 사람들의 비원이 하늘로 올라가 카일라스와 별빛으로 화한 것이리라. 그런 까닭에 조용히 정좌한채 한시간 가량 그것들을 마주보며 정녕 환희스럽고 행복한 순간을 함께했다.
다음날 아침에 순례를 계속할지와 하산할지를 묻는 대중공사가 벌어졌다. 결과는 대중의 자유의사에 맡겨 힘들어하는 11명이 하산을 하고, 나머지 60여명은 다시 조를 편성해 조장을 정하고는 순례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셈이다. 카일라스 북면을 향해 의식을 봉행하고는 새로운 신심과 서원을 발원하며 둘째날의 코라길에 올랐다. 계속되는 오르막 너덜길로 고도를 430m 높이며 치고 올라가야 하는 가장 힘든 코스이다. 특히 5640m 의 가파른 깔딱고개인 돌마라 패스는 이번 코라 순례길의 가장 큰 고비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할 것이다.
처음부터 오르막길로 네댓번의 고갯길을 돌아서 조장터를 지나면 언덕이 나오는데 이른바 ‘해탈의 고개’이다. 순례객들은 이곳에서 평생 지은 업보와 함께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의미에서 입었던 옷가지와 신체의 일부를 이곳에 내려놓고 순례를 계속하는 것이다. 조금 더 가면 부모님께 효경을 다하는 곳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입적하신 원담 노스님과 은사이신 법장스님, 그리고 속가 부모님의 극락왕생과 속환사바를 간절히 기원드렸다.
마지막 오르막길을 오르노라면 저 멀리 오색의 타루초가 펄럭이는 돌마라 고개가 눈이 들어온다. 그러나 온몸은 이미 천근만근이고 한 발자국조차 내딛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한 비구니 스님이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내딛는 발걸음에 감동과 환희가 밀려온다. 마치 화두를 든채 행선을 하는 듯이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이다. 그리 꼼짝도 않던 카일라스조차 스님의 발자국을 따라 함께 움직이며 걸어가는 듯하다. 이에 졸시 하나 지어 찬탄해 본다. “수천 수만의 히말라야 연봉마다/ 수천 수만의 연꽃이 피어나고/ 추천 수만의 연꽃마다/ 수천 수만의 부처일레라!/ 그대 한 발자국마다/ 수미산도 춤을 추네!”
드디어 돌마라 고개 정상에 올랐다. 그곳은 온통 오색 타르초가 펄럭이는 ‘천상의 화원’과 같았다. 그 꽃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순례자들의 꿈과 비원이 바람에 펄럭이는 타르초처럼 하늘로 전해지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정상에 오르면 음성공양을 하겠다던 법련사 주지 스님의 찬불가 한자락은 그 무엇보다 가슴 뭉클한 감동과 환희로 함께한다. 아, 나는 마침내 카일라스의 돌마라 고개에 올랐어라! 신의 정원에 초대되어 카일라스와 함께 하였으니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마음이었다.
순례 중 스님의 찬불가 한자락
돌마라 고개를 내려오는 길에 발아래 놀랍고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앙증맞게 예쁘면서 신령스러운 기운을 뿜어내는 연못이 하늘 위에 떠 있다. 그것이 계곡 주위의 산과 하늘, 빙하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수채화를 그려낸다. ‘은총’이라는 의미의 호수로 힌두교에서는 코끼리 모양을 한 가네쉬 신이 태어난 가우리꾼드(하얀 연못)로 숭배하고 있다고 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 빙하인지 눈밭인지를 걷다가 문득 서산대사의 선시가 떠올랐다. “눈덮인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이여, 함부로 난삽하게 걷지 말지어다. 그대가 걸어가는 이 발자국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시처럼 살아갈 일이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에 비바람을 맞기도 하고 이름없는 풀꽃에 감동을 하기도 한다. 힘겹게 걸어 내려가 작은 텐트에서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마의 돌마라 고개를 무사히 넘어서인지 대중들의 얼굴에는 일종의 성취감과 환희가 함께한다. 다시 돌무더기 내리막길을 3시간 넘게 걸어서 둘째날의 숙소인 쥬틀북 사원(4810m) 앞의 롯지에 도착했다. 험난한 여정을 거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전율과 희열로 인해 너무나 행복한 마음이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강가로 나가니 순례자의 텐트와 양떼들이 노니는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이 냇물은 여러 지류가 몸을 섞으며 알롱창포 강이 되고 히말라야 동쪽 끝을 돌아 부라마푸트라 강이 되면서 갠지즈강과 합쳐진다고 한다. 문득 송대의 대문호인 소동파의 “시냇물 소리는 도리어 부처님의 장광설이고 산빛은 일찍이 부처님의 청정법신이 아니리요. 밤새 흐르는 물소리는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이니 후일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어찌 말할 수 있으리오!”라는 오도송 싯구가 떠오른다. 카일라스와 알롱창포강의 소식을 어찌 후일에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침을 먹고는 뒤편의 밀라레빠가 은거해 수행했다는 쥬틀북사원을 참배하고는 강을 따라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간다. 마음이 편안하니 어제는 보이지 않던 작고 예쁜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언덕에 올라 뒤돌아보니 지나온 길과 카일라스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운다. 생각해보면 여기까지 온 인생의 모든 과정이 기나긴 순례이자 매순간 기적이 아니었나 싶다. 그 모든 과정의 자연과 사람들과의 지중한 인연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모두에게 다함없는 경외와 찬탄
드디어 마지막 종착지에 다다랐다. 서로 부둥켜 안고 카일라스 코라길 순례의 원만성취를 자축한다. 그리고 마니석이 있는 담장 앞에서 감사와 환희의 회향식을 가졌다. 모든 대중이 순례를 마친 희열과 성취감을 만끽하며 너무나 밝고 환한 모습들이다. 모두에게 다함없는 경외와 찬탄,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마도 오랫동안 카일라스의 추억과 깨달음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카일라스 순례 후 자다의 토림경관과 신비의 구게왕국을 둘러보고 오는 길에 환상적인 무지개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마치 우리의 순례를 축복하는 듯하다. 그리고 귀호로 불리는 락샤스탈 호수와 ‘우주의 자궁’이라 일걸어지는 마나사로바 호수를 순례하는 것으로 이번 순례의 대단원을 마무리했다. 내 생애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여, 나는 카일라스와 마나사로바를 향해 안녕을 고하건만, 그들은 나를 향해 “짜시델레!(Tashidele: 안녕이라는 인사말)”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언젠가 또다시 너를 보러 오리라 다짐해 본다! 조계종 교육부장
[불교신문3522호/2019년10월2일자]
진광스님 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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