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70)
요즘 신종코로나(코로나19)가 온통 나라 안을 패닉으로 몰고 있다. 불행하게도 바이러스성 질병에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약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번 감기도 예외는 아니다. 오로지 면역기능에 의존해 자연치유를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노약자나 기저질환이 있는 취약계층의 경우에는 면역력이 약해져 있어 더 위험하다. 사망자가 속출해서 안타깝다. 그럼 면역이란 뭔지, 면역기능이 어떻게 병원균을 물리치는지를 알아본다.
면역(免疫)이란 역병을 면한다는 뜻이다.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질병을 막아주는 방어기전을 말한다. 우리 몸은 외부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항상 보초를 서고 있으며, 침입자가 발견되면 면역세포가 비상상태를 발령해 이와 전쟁을 벌인다.
면역세포에는 종류가 많지만 우선 일차적으로 적을 잡아먹는 백혈구(대식세포 등)가 행동을 개시하고, 그래도 감당이 안 되면 다른 면역세포가 가세해 요격무기(단백질)를 만들어 적군을 타격한다. 이런 무기를 항체(抗體)라 부른다.
그런데 항체를 만들어 내는 일이 그렇게 녹녹지가 않다. 많은 물질과 세포가 관여하고 엄청나게 복잡한 수많은 반응이 진행된다. 한권의 책으로 설명해야 할 내용을 몇 줄의 문장으로 요약하는 게 무리지만,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억지 설명을 해 보자면 이렇다.
우선 적의 척후병인 T세포(종류 다양)라는 것이 침입자의 외부 생김새를 탐색하여 요격할 목표(target)를 정한다. 그 타깃은 보통 침입자의 겉면에 노출된 단백질, 탄수화물, 지질 등이다. 이를 표면항원(表面抗原)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T세포는 이들 항원의 정보를 다른 면역세포인 B세포에 전달하고, B세포는 각 항원(적군)에 특이적 요격무기(미사일?)인 항체를 만들어 낸다. 각각의 항체 단백질은 침입자의 표면에 있는 항원에 벌떼처럼 달라붙는다. 만신창이가 된 병원체는 활동을 멈추고 결국은 죽는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열흘 가까이 걸린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감기 등의 질병이 낫게 되는 이유다.
그럼 감기약은 뭔가? 감기바이러스를 죽이는 약이 아니다. 대증(對症)적인 요법이다. 열나면 해열제, 두통에 진통제, 염증엔 항생제라는 식으로 항체가 생길 때까지 버티게 하는 약재를 말한다. 이때 항체가 만들어지기까지 몸이 견디어내지 못하면 변고가 생긴다.
감기에 의한 사망은 바이러스의 무한정 증식으로 폐나 기관지가 심하게 손상되거나 폐렴균 등의 2차 감염으로 호흡곤란, 패혈증 등에 기인한다. 세균에 의한 염증은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다. 단 감당할 정도라면.
그럼 면역이 생기고 나면 어떻게 되나? 한번 침입한 적군은 이후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아니 들어와도 힘을 못 쓴다. 과거 침입한 놈의 정보를 기억해 뒀다가 들어오자마자 즉각 퇴치해 버린다. 요격할 항체 미사일도 미리 만들어 뒀고, 동시에 항체를 제조하는 공장(B세포)도 이미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외는 있지만 한번 걸린 전염성 질환에 다신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릴 때 잔병치레 많이 한 사람은 성인이 돼서 감기 등에 잘 걸리지 않는 이유다. 건강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어떤 병원균에 면역이 돼 있는 경우가 있다. 증상은 없었지만 과거 적의 침입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혈액검사로 간단히 확인된다. 간염 등의 항체가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는데도 발견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럼 백신은 뭔가. 예방약이다. 위험한 진짜 병원균이 들어올 때를 대비해 가짜(?)를 미리 보여주고는 면역체계에 방위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백신은 위험한 병원균 자체가 아니라 이를 죽이거나 병원성을 약하게 한 것(약독화), 혹은 병원균의 표면항원(타깃)만을 따로 떼어내 만든 것으로 혈관에 주사해 면역세포에 경험을 시키는 것, 이른바 을지훈련 같은 것을 말한다. 주사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항체와 B세포 등이 만들어져 유비무환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때 오해 말아야 할 것은 면역세포의 공격 타깃은 병원체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 몸은 타인의 것 즉, 자기 것이 아닌 단백질 등의 항원이 들어오면 이를 적으로 간주하고는 즉각 공격을 개시한다는 사실이다. 장기이식에 자주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이게 부모·형제라도 장기를 마음대로 줄 수 없는 이유다.
콩팥, 심장, 간 등에 있는 단백질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면역세포는 이를 적으로 간주해 항체를 만들어 공격한다. 이를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투여해 면역기능을 약화해 보호하는 조처를 한다. 고로 면역억제제를 투여받는 경우는 방어가 허술해져 질병에 취약하다.
드물게 자가면역이라는 것도 있다. 자기 것을 적으로 인지해 오인 폭격하는 경우다. 홍반성낭창으로 알려진 루프스, 다발성경화증, 류마티스, 크론병, 베체트 등 80여 가지가 알려져 있다. 흔한 알레르기, 아토피까지도 일종의 자가면역이다. 이는 엉뚱한 물질에 흥분해 싸움을 벌이는 경우다.
먼지 속 진드기나 애완동물의 털, 꽃가루 등에 공연히 열 받아 피아 구분 없이 면역세포가 마구 총질을 해대는 것이 그 예다. 피부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아토피, 코에서 싸우면 비염, 기관지를 공격하면 천식이라는 식이다. 자가면역은 아직 그 원인을 잘 모른다.
유전적 혹은 면역체계의 이상에서 발생한다는 짐작이다. 고로 치료 약도 없다. 체질이나 환경을 바꿔 피아(彼我)도 구별 못 하는 이상해진 면역세포를 달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재의 해결책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세간에는 면역력을 높이는 음식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이는 거짓이다. 면역을 높이는 음식은 없다. 그런 약도 없는데 음식이 있을 리가 있나.
단지 건강한 신체와 균형 잡힌 식사가 면역력을 높여 줄 뿐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면역력을 높인다는 수액주사를 광고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슈퍼면역 강화 링거 20% 할인’이라고. 이는 사기에 가깝다.
체온을 1℃ 높이면 면역력이 5배 증가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학문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체온을 높인다고 면역력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병원균에 감염되어 면역세포가 적군과 싸우게 되면 체온이 올라간다는 게 맞다. 체온은 인위적으로 올릴 수도 없으며 무턱대고 올라가면 오히려 위험하다.
면역력은 높이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니며, 필요 이상으로 높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면역력도 적당해야 안전하다. 무턱대고 높아지는 것은 일종의 병적인 현상일 뿐이다. 싸워야 할 적군이 없는데 군사만 지나치면 할 일이 없는 군사는 오히려 적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적과 아군도 제대로 구별 못 하고 자기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어서다.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이나 자가면역(auto-immunity)처럼.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기사입력 2020.03.11. 오후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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