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108사찰

완주송광사: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극락전, 지장전(19.7.21)

정혜거사 2019. 7. 26. 11:26





백화도량 종남산 송광사의 역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부다가야에서 깨달아 중도(中道)로 가르침의 핵심을 삼은 이래, 그것은 불교 전통의 주요 개념이었다. 불교가 역사적 전통에서 가꾸어온 모든 사상 · 문화· 제도는 모두 중도의 선양을 위한 것이었다. 송광사도 중도의 선양을 위한 곳이다.



백두대간이 남서쪽으로 기세를 떨치다 마친 이곳 전라북도 완주군에 종남산이 있다. 송광사는 그 산 동남쪽 끝자락에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종남산 남쪽에 영험있는 샘물이 솟아나 그 옆에 절을 짓고 백련사라고 했다고 한다.


송광사가 역사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통일신라 말이다. 보조 체징(普照體澄, 804~880) 선사가 설악산 억성사에서 수행하다 선법의 요체를 구하러 중국에 유학을 가던 길에 백련사가 영험도량이라는 소문을 듣고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


귀국해서도 가지산 보림사와 종남산 백련사에 번갈아 거주하면서 도의국사의 선법으로 널리 교화했다.

이때 체징선사는 백련사를 선종의 종취에 따라 송광사로 개칭했다. 이래로 송광사는 사세를 면면히 이어왔다.


고려 중기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1055~1101)이 중국 송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천태종을 개창하자, 사명을 백련사로 다시 고치고 천태종에 귀속했다.

조선시대 임진 ·정유 양란 때 송광사는 전소되었는데, 광해군 때 벽암각성(碧巖覺性)의 문도인 덕림화상이 주맹이 되어 응호, 승명, 운정, 득순, 홍신 스님 등과 더불어 노력 끝에 중건하였다.


송광사개창비(松廣寺開創碑, 1636년)에 따르면, 송광사는 인조의 척족(戚族)인 이취반(李就潘)이 폐허가 된 절터를 시주하였고, 보조국사 체징이 점지해 두었던 터에 1622년부터 역사를 시작하여 이듬 해에 7칸 중층의 대웅전을 건립함으로써 초창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으로 사액되었다고 했다.


그 후 명부전(1640년), 천왕전(1649년), 나한전(1656년), 일주문 등이 연이어 신축됨으로써 세 번째 중건됐다. 그 후에도 1707년에 네 번째 중건이, 1857년에 다섯 번째 중건이 있었다.

<송광사대웅전중수상량문(1857년)>에 따르면, 다섯 번째 중건은 전라도 순찰사 김병교, 전라도 관찰사 심경택, 전주부윤 홍종화 등이 백만전을 지원하여 2층 구조로 지어진 대웅전을 49일만에 허물고 53명의 장인이 7개월만에 단층 대웅전으로 다시 건립했다고 한다


이러한 송광사의 중건을 전하는 바로는 <전주송광사개창비(全州松廣寺開創碑), 1636년)>, <경진년칠월일서방산송광사시왕조성흘공기 (庚辰年七月日西方山松廣寺十王造成訖功記), 1640년>, <불상조성시주목록(佛像造成施主目錄), 1641년>, <대영산십육성중오백성문조성회원문(大靈山十六聖衆五百聲聞造成回願文), 1656년>, <전가경19년갑술법당중수동참기(前嘉慶十九年甲戌法堂重修同參記), 1814년)>, <송광사대웅전중건상량문(松廣寺大雄殿重建上樑文), 1857년> 등이 전해 온다.


지세를 다듬고 그 터에 당우를 세우는 일은 중도의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송광사가 있음으로 인해 부처님의 지혜가 더욱 빛나서 모든 인연있는 이들이 유화하고, 도량이 청정하며, 법륜이 항상 구르기를 바란다.




일주문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일주문은 송광사의 입구에 세워 속세와 불계(佛界)의 경계 역할을 하는 상징물로 조선 후기에 지은 것이다. 원래 지금의 위치에서 약 3㎞ 떨어진 곳에 세웠던 것인데, 절의 영역이 축소되어 순조 14년(1814)에 조계교 부근으로 옮겼다가 1944년에 현재 자리로 옮긴 것이다.


건물은 2개의 원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간결한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공포는 용 머리를 조각하는 등 조선 중기 이후의 화려한 장식적 수법을 엿볼 수 있다. 기둥의 앞뒤로 연꽃무늬를 장식한 보조기둥을 세워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앞면 중앙에는 ‘종남산송광사(終南山松廣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




금강문

금강문(金剛門)

송광사 금강문은 1999년 7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3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금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를 모시는 문인데, 조선후기 금강문에는 중앙 통로 좌우로 두 명의 금강역사와 문수보살·보현보살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송광사 금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붕 천장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고,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 천장이다. 앞면 3칸 중에 가운데칸이 출입구이고, 양 옆칸에는 금강역사와 동자 모습의 사자를 탄 문수보살상과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금강문은 새날개 모양으로 장식된 익공양식의 공포와 지붕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어 규모도 작고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송광사 금강문은 다포계 팔작지붕인 점이 특징이다.


벽암각성(1574~1659) 대사가 중창한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구례 화엄사· 경남 하동 쌍계사, 그리고 완주 송광사는 일주문 → 금강문 → 천왕문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어, 임진·정유 양란 이후 신중신앙이 호국신앙과 연결된 가람 배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천왕문

천왕문(天王門)

천왕문은 사천왕을 모시는 곳이다.


송광사는 사천왕을 모신 곳을 천왕문으로 하지 않고 천왕전으로 건축하여 이곳은 여닫는 문으로 되어 있다.


현판도 사찰에 들어오는 쪽에는 천왕문으로, 대웅전 쪽에는 천왕전으로 현판을 달았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서방 광목천왕상 왼쪽 머리끝 뒷면에는 조선 인조 27년(1649)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는 글이 있으며, 왼손에 얹어놓은 보탑 밑면에는 정조 10년(1786)에 새로이 보탑을 만들어 봉안한 기록이 있다.



송광사 사천왕상

1997년 6월 12일에 보물 제1255호로 지정되었다.


사천왕(四天王)은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동방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 등 네 명의 천왕을 말한다.


도리천에 사는 제석천의 심부름꾼으로 사방을 수호하는 호법신인데 국가적 차원에서는 호국신앙과 연결되었고, 종교적 측면에서는 불법(佛法)과 사찰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신앙되었다.


송광사의 사천왕상은 앞 뒤로 문이 달려 여닫을 수 있는 천왕전(天王殿)에 안치되어 있으

며, 이곳에서는 음력 매월 초하루 사천왕 법회 및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천왕 기도가 행해지고 있는 신앙 공간으로서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천왕문이라 하지 않고 천왕전이라 하고 있다.


송광사의 사천왕은 진흙으로 조성된 소조상(塑造像)으로 크기가 425cm에 달하는 거대한 상이며, , 인조 27년인 1649년에 조성되었다.


얼굴 표정은 분노형으로 마음 속의 모든 번뇌 망상을 모두 잊게 할 만큼 무섭다. 갑옷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다양한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동방 지국천왕은 비파를, 남방 증장천왕은 칼을, 서방 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북방 다문천왕은 당(幢)과 보탑(寶塔)을 들고 있다.


신체 비례가 균형잡혀 있고 각 부분의 세밀한 표현이 돋보이는 등 조선후기 사천왕상 가운데 뛰어난 조형성을 가진 수준작으로 평가된다.




극락전






지장전


지장전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1999년 4월 23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되었다.



지장전은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성불하는 것을 뒤로 미룬 대원본존(大願本尊)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당나라 때 개원사 스님이었던 도명존자는 동명이인으로 잘못 판단한 저승사자에 의해 지옥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지장보살을 만난 후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무독귀왕은 『지장보살본원경』에 의하면 어떤 브라만의 딸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찾으러 지옥에 갔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있는 지옥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인연으로 지장보살의 협시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명부전은 지장삼존상과 명부세계의 재판을 담당하는 10명의 왕인 시왕(十王)을 함께 모신 전각을 말한다.


송광사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은 1999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는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명부전이 협소한 까닭에 지장전을 신축하고 지장전으로 옮겨 봉안하게 되었다.

현재 지장전에는 지장삼존상을 비롯하여 시왕상 10구, 판관상 6구, 사자상 6구, 동자상 8구, 금강역사상 2구 등 총 31구의 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조성기에 의하면 1640년에 승명(勝明) 스님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17세기 명부신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이후 명부전의 존상들은 2005년에 보수·개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에도 송광사 지장전은 우리나라 3대 지장성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