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루
종루(鐘樓)
송광사 종루는 1996년 5월29일 보물 제1244호로 지정되었다.
종루는 범종(梵鐘)·법고(法鼓)·목어(木魚)·운판(雲板) 등 사찰에서 의식 때 사용하는 불전사물을 봉안한 곳이다. 송광사 종루는 중앙의 1칸에서 사방으로 1칸씩 돌출된 아(亞)자형 평면의 2층 누각 건물로, 십자형 평면 위에 팔작지붕을 교차시켜 세웠다.
일반적으로 종루나 종각이 사각형으로 지어지는데 반해 송광사 종루는 보궁(寶宮)에 주로 채택되는 십자형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2층의 누마루는 우물마루로 구성되고 주위를 계자난간을 두르고 계단이 있는 쪽만 개방되어 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에는 기둥 바깥으로는 마루가 설치되지 않고 계자난간도 없어 지금과 같은 마루와 계자난간은 『조선고적도보』 에 실린 사진 촬영 이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광사의 종루는 현재까지 그 연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건물의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1814년 혹은 1857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종루에 걸린 범종·법고·목어·운판 등은 1977년에 조성된 것이고, 바닥에 놓인 범종은 1716년(숙종 42)에 무등산 증심사에서 조성되어 1769년(영조 45)에 중수된 것이다.
송광사에는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는 송광사 범종(梵鍾)과 유형문화재 제 170호로 지정되어 있는 송광사 목조 삼전패(三殿牌)가 보존되어 있다.
송광사 범종(梵鍾)
1992년 6월 20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현[/av_dropcap1]재 십자형 종루 바닥에 놓여있는 송광사 범종은 전체높이 104.5㎝, 몸체높이 84.0㎝, 입지름 72.0㎝로, 종 몸체에 새겨진 기록에 의해 숙종 42년(康熙 55년, 1716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77년 범종이 새로 조성되기 전까지 사용해 왔으나 이후 범종에 균열이 생겨, 1981년에 두 차례에 걸친 균열방지 작업 후 타종이 불가능해져 현재와 같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몸체 중앙부의 배부분에는 네모꼴 연곽(蓮廊)을 비롯하여 보살상과 위패(位牌)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거의 수직을 이루는 몸체의 하단부에는 연곽 바로 아래에, 범종을 조성한 시기와 봉안사찰· 봉안장소· 조성에 참여했던 스님들과 사주자 등을 기록하고 있다.
범종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강희 55년인 숙종 42년(1716년)에 조성되어 광주 무등산 증심사 대웅전에 봉안되었는데, 어느 시기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송광사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영조 45년인 1769년에 범종을 중수했다는 기록도 추가로 새겨져 있다.
관음전
대웅전
대웅전(大雄殿)
송광사 대웅전은 1996년 5월29일 보물 제1243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은 석가여래를 큰 영웅 즉 대웅(大雄)이라 일컫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여래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송광사 대웅전에는 조선후기에 유행한 석가여래·약사여래·아미타여래 즉 삼세불상(三世佛像)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에는 사바정토의 교주인 석가여래, 향우측에는 중생들의 병고를 다스리는 동방약사유리광정토의 교주인 약사여래, 향좌측에는 서방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여래가 배치되어 있다. 또한 불단에는 왕· 왕비· 세자의 축원을 위한 용도로 제작된 조선후기 최대의 목공예품인 삼전패(三殿牌)가 있다.
정면 5칸, 측면3칸의 대웅전은 「송광사사적기」에 의하면 초창 당시인 1622년에는 2층건물이었으나, 1857년에 건물이 기울어져 제봉선사에 의해 중수되면서 단층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부 기단은 가공된 장대석을 두르고 있는데, 최근 대웅전 주위의 흙을 걷어내 기단의 높이가 높아졌다.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추녀의 처짐을 보완하는 활주를 모서리마다 세워두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불상 크기에 비해 내부공간이 좁지만 천장부에 파격적인 장엄을 하여 천장 전체가 천개인 것처럼 꾸민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요소이다.
대웅전 현판의 글씨는 선조의 아들인 의창군(義昌君)이 썼는데, 구례 화엄사 대웅전 현판 역시 의창군의 글씨여서 두 사찰과 의창군 그리고 벽암각성대사의 관계가 주목된다.
당간지주
대웅전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 유물
1997년 8월 8일 보물 제1274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 대웅전에 모셔진 이 삼불좌상은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앙에 모시고, 좌협시(향우측)로는 약사여래를, 우협시(향좌측)로는 아미타여래를 배치하고 있다.
무량사 소조아미타불상(540cm)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거대한 소조불상(565cm)으로, 신체 각 부분이 비교적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장중하고 원만한 얼굴과 두껍게 처리한 옷은 당당한 불상 양식에 걸맞는 표현 기법을 보여준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 표현은 강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존불인 석가여래상에서는 세 불상의 조성기와 『묘법연화경』을 비롯한 불경류, 후령통(喉鈴筒) 등 다수의 복장품이 발견되었다. 불상 조성기에 의하면 숭정 14년(인조 5년, 1641) 6월 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나라와 청나라의 연호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당시의 극심한 혼란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난 극복의 의지와 역사 의식의 반영과 함께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만든 연대가 확실하고 역사 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불상과 함께 복장유물 12종 중 불상조성기 3점과 후령통 3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송광사 목조 삼전패(三殿牌)
1999년 4월 23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로 지정되었다.
완주 송광사의 목패는 대웅전 안 석가여래상 옆과 약사여래상 및 아미타여래상 앞에 놓여 있다.
당시 왕과 왕비 그리고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부처님 명호를 기록한 불패(佛牌)와 구분하기 위해 삼전하(三殿下)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삼전패(三殿牌)라고 일컫는다.
높이가 약 230cm에 달하는 거대한 목패는 모두 3점인데,이들은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세부의 문양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여러 장의 나무판을 엮어서 만든 것으로 구름과 용을 뚫어새긴 것이 특징이다.
석가여래상 옆의 목패는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으며, 인조 때 조성된 것이라는 제작 연도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왕과 세자를 위한 전패에는 정조 16년(1792)에 수리했다는 묵서명이 있어, 목패 연구에 기준작이 되고 있다.
조각이 정교하고 크기가 거대하며 조성된 연대와 수리한 연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불교 목공예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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