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영문화기념관
태공 송월주 스님 특별전
처영대사, 서산대사, 사명당
처영문화기념관
대적광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개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원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보신불(報身佛)인 아미타불과, 화신불(化身佛)인 석가모니불, 즉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함으로써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상징한다. 이 금산사 대적광전(金山寺大寂光殿)에도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아마타여래와 석가모니불을, 우측에 노사나불과 약사여래를 모셨다.
위치
금산사 대적광전은 금산사 경내의 중심 위치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좌우로 금산사 미륵전(金山寺彌勒殿)과 금산사 대장전(金山寺大藏殿)이 있다. 기단 앞쪽으로 금산사 육각다층석탑(金山寺六角多層石塔)과 금산사 노주(金山寺露柱)가 좌우에 서 있고, 멀리 정면에는 금산사 보제루(金山寺普濟樓)를 앞에 두고 있다.
변천
1597년(선조 31) 정유재란으로 소실되기 전에는 대웅대광명전이라 하였다가 1635년(인조 13) 재건된 후부터 대적광전이라 칭하였다. 1776년(영조 52)에 중수하였으며, 1926년에 보수를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476호로 지정되었다가, 1986년 12월 6일 화재로 전소되어 보물 지정에서 해제되었다. 1990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형태
금산사 대적광전은 금산사의 중심이 되는 불전이며 사찰 내의 단층 건물로는 가장 웅장한 정면 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이다. 축대 중간에 석계가 있고, 한층 높은 기단 위에 원주를 세웠는데, 정면 7칸에는 쌍합의 10개의 빗살문을 달았다.
그러나 출입하는 중앙칸 이외는 모두 하부에 머름을 대어 문 높이를 줄이고 있다. 측면은 4칸으로, 4칸 중 제1칸은 외짝 출입문을 달고, 나머지는 회벽을 치고 상부에 인방(引枋)을 가로질렀다. 주춧돌과 기둥은 각각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과 목재를 사용하였다. 공포는 다포식에 내외 2출목이다. 공간포는 한 개씩이나 중앙칸은 2개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각 문의 문살은 빗살문이다.
법당에는 마루를 깔고, 측면 제3기둥에 연하여 길쭉한 불단을 만들었다. 임진왜란 때 대웅전, 대광명전, 극락전, 약사전 등이 불타자 수문대사가 1635년(인조 13) 이들을 합쳐서 28칸의 대적광전을 세워 5여래 6보살을 안치하였다. 법당 내부에 2단으로 불단을 쌓고, 그 상단에 5구의 소조여래좌상과 6구의 소조보살입상을 봉안하였다.
불단 서편으로부터 아미타여래·석가모니불·비로자나불·노사나불·약사여래의 순으로 좌상을 배열하고, 보처불로는 아미타여래 좌우에 관음보살·대세지보살을 모셨으며, 비로자나불 좌우에는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셨고, 약사여래 좌우에는 일광보살·월광보살을 모셔 6구의 입상을 배치하였다. 이들 불상 앞에는 각기 다른 형상의 조그마한 목조나한상이 4~5줄로 늘어서 있는데 그 수는 500구에 달한다.
본래 비로자나불과 석가여래의 천장에는 용을 조각한 닫집을 매달았으나, 지금은 석가여래의 정상에만 닫집이 남아 있다. 대들보는 자연목과 거칠게 다듬은 목재를 사용하고 좌우 측면에는 각각 3개씩의 충량(衝樑)을 걸었다. 천장은 대들보 바로 위에는 우물천장을 했으며, 불단 위쪽은 한층 높게 가설하였다.
의의와 평가
금산사 대적광전은 화재로 소실되기 이전에는 보물 476호로 지정될 만큼 귀중한 문화재였다. 비록 현재의 건축이 문화재는 아니지만 대웅전, 대광명전, 극락전, 약사전 등의 통합 전각으로 그 규모와 불상의 배치 등은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산사 대적광전 [金山寺大寂光殿]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대적광전 5불 6여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아마타여래와 석가모니불을, 우측에 노사나불과 약사여래를 모셨다.
보처불로는 아미타여래 좌우에 관음보살·대세지보살을 모셨으며, 비로자나불 좌우에는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셨고, 약사여래 좌우에는 일광보살·월광보살을 모셔 6구의 입상을 배치하였다.
대적광전 5불 6여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아마타여래와 석가모니불을, 우측에 노사나불과 약사여래를 모셨다.
보처불로는 아미타여래 좌우에 관음보살·대세지보살을 모셨으며, 비로자나불 좌우에는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셨고, 약사여래 좌우에는 일광보살·월광보살을 모셔 6구의 입상을 배치하였다.
대적광전 5불 6여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아마타여래와 석가모니불을, 우측에 노사나불과 약사여래를 모셨다.
보처불로는 아미타여래 좌우에 관음보살·대세지보살을 모셨으며, 비로자나불 좌우에는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셨고, 약사여래 좌우에는 일광보살·월광보살을 모셔 6구의 입상을 배치하였다.
주불인 비로자나불
주불인 비로자나불
미륵전
보제루를 지나 가람의 중심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국보 제62호인 웅장한 규모의 미륵전이 보인다.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그분의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라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 속에 응축시킨 것이 미륵전이요, 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세계에서 함께 성불하자는 것을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이다.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부터 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 안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 남쪽 벽에 미륵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
지금의 모습은 인조 13년(1635)에 수문대사가 재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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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 본존은 높이가 11.82m이고 삼존불 중의 협시는 8.79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조성할 당시에는 3년간에 걸쳐 완성한 미륵장륙상 한 분만이 모셔졌었다. 그 뒤 조선시대에 수문대사가 다시 복원 조성하면서 소조 삼존불로 봉안했는데, 1934년에 실화로 일부가 소실되었다. 4년만인 1938년 우리나라 근대 조각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이 석고에 도금한 불상을 다시 조성해 오늘날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
지금도 남아 있는 불단 아래의 거대한 청동대좌는 정확한 조성시기를 알 수 없지만 잦은 소실과 복원의 과정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불상을 받들고 있는 역사의 대변자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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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등계단과 미륵전
미륵전
대묘상보살, 미륵불, 법화림보살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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