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종각
석등
대장전 앞에 보물 제828호인 고려시대의 팔각석등이 있다. 지대석에서 보주까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고 전체 높이는 3.9m이다. 사각형의 지대석위에 하대석을 얹고 그 위에 간주석(竿柱石), 연화석(蓮華石), 화사석(火舍石), 옥개석, 보개, 보주의 순서로 조성되었다.
이 석등은 화창에 시설했던 창문만을 제외하면 현재 거의 완벽한 모습을 남기고 있다.
더욱이 오랜 가람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잃지 않고 은은한 법등을 밝혀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금산사의 귀중한 성보문화재라 하겠다.
대장전
미륵전의 정면 서쪽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다포식 팔작지붕인 대장전(大藏殿)이 자리한다. 이 전각은 보물 제827호로 지정되어 있다. |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 1635년(인조 13)에 가람을 중창하면서 본래 목탑이었던 것을 지금과 같은 전각의 형태로 변형하면서 대장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의 위치로 이전된 것은 1922의 일이다. 이렇듯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지만 전각 꼭대기에는 복발과 보주 등이 아직 남아 지금도 신라 때의 목탑 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외벽에도 좌우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한편 대장전의 내부 출입문 위에는 1974년 건물을 중수할 때 참여한 사람들의 인명과 불상의 개금불사에 시주한 사람들 이름을 적은 현판이 걸려 있다. |
노주
대적광전 오른쪽에는 독특한 형태의 노주(露柱)가 있다.
노주란 ‘노반지주(露盤之柱)’의 줄임말로서 처음에는 전각의 정면 귀퉁이에 세우는 두 개의 장대였다가 나중에 탑의 상륜부를 구성하는 부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탑의 일부인 이 노주가 왜 별도의 조성물로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중기록에 보면 ‘노주’는 잘못 된 명칭이고, ‘광명대(光明臺)’로서 미륵전 앞에서 미륵불에게 광명을 공양하던 석등이었다고 한다. 이 말이 맞다고 한다면 지금의 모습은 불을 밝히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이 없어진 상태가 된다.
고려시대의 조성기법을 간직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보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석련대
대적광전에서 동남쪽으로 10여m 떨어진 곳에 보물 제23호 석련대(石蓮臺)가 있다. 불상의 대좌로서 정확한 이름은 석조연화대인데, 높이 1.67m, 둘레가 10.3m가 넘는 거대한 작품이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형의 연화대좌인데다가 더욱이 하나의 화강석으로 각 면에 조각한 수법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
그렇다고 한다면 고려시대 이후 언젠가 절을 중창하면서 석련대가 놓였던 전각은 사라지고 그 위에 봉안된 불상은 다른 전각이 새로 들어서면서 그곳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한편 이 정도의 대좌가 필요했던 불상이라면 그 규모도 엄청나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금산사의 역사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역시 이 대좌의 주인공은 미륵장륙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문헌자료가 없을 때는 작품의 양식을 통해 조성시기를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석련대의 경우는 충분한 역사적 정황이 성립될 수 있으므로 통일신라 하대의 작품일 것이라는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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