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사[孤雲寺]
안동에서 군위로 향하는 5번 국도는 의성을 동서로 가른다. 단촌면과 의성읍, 금성면의 중심으로 통과하는 이 길가에는 아름다운 유적지가 많다. 아늑한 절 고운사도 이 길을 통해 들어간다.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서 고운사 가는 길은 깊은 산속 같은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러한 정경은 이미 옛적부터 유명했으니 벽허(碧虛) 스님의 시 한 수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십 리나 되는 산봉우리를 돌고 돌아
길 또한 아득한데 선인(仙人)이 간 자취
구름가에 서리었네.
꼬불꼬불한 산길 20리는 길고도 길지만 가히 절경이어서 자신이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다. 이 길의 끝, 나지막한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자리에 고운사가 있다.
구름을 타고 오른다는 뜻의 등운산(騰雲山). 산이름에 걸맞게 절이름도 ‘높이 뜬 구름’ 고운사(高雲寺)이다.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거창한 규모는 아니다. 오히려 681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던 때의 아늑한 절집 분위기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분위기이다.
한때 신라 말기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이 머물면서 승려 여지(如智), 여사(如事)와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립한 일이 있는데 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최치원의 아호를 따서 ‘孤雲寺’로 부른 적도 있다고 한다. 신라 하대 헌강왕 때에는 선각국사가 주석하여 석조여래상과 오층석탑을 조성했다.
고려 때는 화엄종이 쇠퇴함에 따라 인근 부석사 등의 사세가 약해지고 상대적으로 이곳 고운사가 번영하여, 영주·선산·금천·군위·영천 등 인근 14개 고을에 걸친 절들을 관할하는 큰 절로서 규모도 366칸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크고 작은 불사가 끊임없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세가 계속 번창했었던 듯하다. 임진왜란 때에도 사명대사가 승군의 전방기지로 삼았다고 한다. 숙종 22년(1695) 중건불사가 크게 있었으나 1835년 불탔고, 다시 중창되었으나 절 규모를 그다지 크게 일으키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조계종 31본산의 하나가 되어 현재 안동·의성·영주·봉화·청송의 60여 절을 말사로 거느리고 있다.
고운사는 깊은 산중에 있는 절이라 공부하기에는 그만일 듯싶다. 그래서인지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이 찾아올 뿐 아니라 ‘고운사에 와서 글 아는 체하지 말라’는 속설도 전해 내려온다.
울창한 송림을 지나 절 입구에 이르면, 언제 그런 산골을 거쳐왔나 싶게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길게 자리한 평지에 고운사가 펼쳐져 있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계곡가에 2층 누각 가운루(駕雲樓)가 보인다.
역시 ‘구름 위에 올라탄다’는 뜻이니, 계곡에 발 디디고 있는 가운루가 어찌 구름을 탄다는 것일까? 해답은 멀지 않다. 가운루에 올라서서 계류에 비친 구름을 내려다보면 절로 구름 위에 올라선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새로 지어진 전각이 많은 고운사에서는 비바람에 견뎌온 세월을 간직한 운치 있는 건물이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이다. 처음에 세운 것은 신라 하대에 최치원이 이 절에 머물 때라고 하나 지금의 건물은 언제 지어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1899년에 중수한 것으로만 확인된다.
가운루고운사 계곡을 가로지르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크고 당당한 2층 누각이다. 신라 말 최치원이 이 절에 머물 때 세운 것이라 전하나 지금의 건물은 언제 지어진 것인지 분명치 않다. 다만 1899년에 중수한 것으로만 확인된다.
가운루 왼쪽으로 고운사의 중심공간이 펼쳐진다. 가운데에 있는 우화루는 종무소로 쓰이는데, 우화루를 둘러싸고 석비가 있는 정자각과 요사채·범종루 들이 있다. 조금 떨어져서 깊숙한 곳에 대웅보전·극락전·관음전 등이 있고, 그 뒤쪽에 명부전이 있다.
극락전은 현존하는 고운사의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확한 연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학자에 따라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중기 건물로 보기도 한다.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1670년에 창건된 명부전은 지장도량인 고운사의 중요한 법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극락전과 명부전 사이에는 담장을 두르고 대문을 설치한 연수전(延壽殿)이 눈에 띈다. 이 연수전은 1744년에 영조가 하사한 어첩(御帖)과 불구(佛具), 보기(寶器) 등을 모시기 위해 처음 지었던 것이다.
왕실의 원당으로 건물이 지어진 것은 뜻밖이나 영정조대에는 전국의 이름난 절에 나라의 원로들을 대접하는 뜻에서 기로소(耆老所)의 원당을 설치하는 것이 한때 유행했었기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현재의 건물은 1907년에 중창된 것으로, 영조 때의 예에 따라 연수전을 다시 지어 당시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의 안녕을 축원하였다고 한다.
계곡을 건너 오른쪽에는 고즈넉한 약사전 건물이 있는데, 그 안에 모신 석조석가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어 고운사의 오랜 내력을 말해준다. 뒤쪽에 있는 나한전 앞에는 무너져내린 석탑 한 기가 근근히 버텨서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이다.
교통, 숙식 등 여행에 필요한 기초 정보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에 있다. 일직 면소재지인 운산리 삼거리 SK남일주유소에서 의성으로 이어지는 5번 국도를 따라 1.3㎞ 가면 길 왼쪽에 고운사·옥산으로 가는 930번 지방도로가 나 있는 망호리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930번 지방도로를 따라 5.2㎞ 가면 길 왼쪽에 작은 가게가 있는 신기마을 삼거리에 닿고,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마을길을 따라 2.3㎞ 가면 고운사 입구 대형주차장에 이른다. 주차장을 지나 1㎞쯤 더 가면 고운사가 나온다.
승용차는 고운사까지 갈 수 있으나 대형버스는 고운사 입구 대형주차장에 주차해야 한다. 의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운사까지는 버스가 하루 1회 다닌다.
안동 시내 안동초등학교 앞에서 고운사로는 38번 시내버스가 하루 4회 다닌다. 고운사 주변에는 숙식할 곳이 없다. 가까운 의성이나 안동에는 숙식할 곳이 많이 있다.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호)
약사전 안에는 광배와 대좌를 온전히 갖춘 석불 한 분이 모셔져 있다. 약사전에 모셔져 있지만 손에 약합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약사불이라 보기는 어렵다.
오른손 손목이 떨어져나가 그마저도 확실치는 않지만 자세로 보아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석가여래로 여겨진다.
전각 안에 다른 아무런 치장 없이 모셔져 있어 그 단아함이 더 두드러지는데, 불상 높이는 79㎝, 좌대 높이 72㎝, 광배 높이 134㎝로 아담한 편이다. 보물 제246호이다.
석조석가여래좌상약사전에 모셔져 있지만 손에 약합을 들고 있지 않은 상태라 약사불이라 보기는 어렵고 전체의 자세로 보아 석가여래로 보인다. 다소 도식적인 불상에 비해 뒤를 받쳐주는 광배의 보상당초문과 화염문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육계가 분명치 않고 소라껍데기 같은 나발 모양으로 머리 모양을 나타낸 것은 신라 하대 석불의 일반적 모습이다. 각진 얼굴에 눈, 코, 입도 작은 편이다. 인상이 강하지 않은 대신 어깨와 가슴이 단단해 보여서 안정감이 있다.
옷차림은 왼쪽 어깨를 감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인데, 옷이 몸에 착 달라붙은 듯하게 표현되었고, 옷주름은 매우 도식적으로 규칙적이어서 생동감은 별로 없다.
광배는 몸 전체를 감싸는 듯한 배 모양인데, 선으로 두광과 신광이 각각 표현되어 있으며 두광 맨 가운데 부분에는 만발한 연꽃을 새기고 그 바깥쪽으로 보상당초문을 새겼다. 맨 바깥으로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듯 화염문이 매우 섬세하다.
8각 대좌는 상대에 반원 모양의 겹연꽃이고, 중대는 8각의 기둥 모양이며, 하대는 엎어진 겹연꽃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두툼한 연잎은 적당히 살이 올라 살짝 꽃잎 끝을 곧추세웠으나 과장되지 않아 보기에 썩 좋다.
전체적으로는 사실성이 강한 8세기 모습에서부터 다소 도식적으로 되어가는 9세기 불상 조각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운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 경북북부, 초판 1997., 15쇄 2010., 돌베개)
일주문
사찰의 입구로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이다.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일부문을 꼽으라면 고운사의 일주문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등운산 고운사
일주문의 조계문 현판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은 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것들이다.
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이다.
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보살님의 원만자비하신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일제시대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다.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해방이후 쇄락하여 많은 사찰재산이 망실되고 지금은 이십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10여년전부터 중창불사의 뜨거운 원력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낡은 건물들을 수리 및 단청하여 지금은 위풍당당한 본산의 위상과 소박하고 절제된 수행지로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정도 규모 이상의 고찰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고운사는 민가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을 자랑하며 일주문에 이르는 솔밭 사이 비포장길은 부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다소곳이 다가서는 불자들의 마음처럼 포근하고 정감넘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청정하고 엄격한 수행가풍을 자랑하는 고금당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비롯한 고운사의 모든 대중들은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대승불교의 참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새벽의 찬공기를 가르며 부처님전에 발원을 멈추지 않는다.
- 서기681년
(신라신문왕1년) - 의상대사께서 고운사(高雲寺)창건
최치원이 여지.여사 양대사와 함꼐 가운루, 우화루 건축
고운사(孤雲寺)로 바뀜 - 1990년
- 종각, 고금당선원 건립
약사전 복원 건립 - 1998년
- 고운대암, 용왕당, 대향각, 연지암, 산문 건립
삼성각 이전 건립 - 2004년
- 부도탑 조성
- 2005년
- 고운실비노인요양원 건립
- 2007년
- 선체험관 건립
- 2008년
- 수월암 복원 건립
법계도 조성
일주문 보수
안동청소년문화센터 건립 - 2009년
- 화엄승가대학원 복원 건립
종무소 개축 - 2010년
- 화엄승가대학원 서고, 화장실, 샤워장 건립
화장실 개축 - 2012년
- 사찰음식체험관 건립
- 2015년
- 화엄문화템플관 건립
천왕문
사천왕문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동서남북을 관장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지국천왕ㆍ증장천왕ㆍ광목천왕ㆍ다문천왕이 조성되어 있다.
동방지국천왕과 남방증장천왕
서방광목천왕과 북방다문천왕
고불전
고불전
오래된 석불을 봉안해놓은 아주 작은 전각으로 그 요철 모양의 구조가 특이하다.
가운루
고운사와 최치원
고운사 가운루.
고운사의 얼굴이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누각이 가운루이다.
아래로는 계류가 흐르고 뒤로는 산과 구름을 접하는 신선의 세계가 펼쳐진다.
고운사는 의상대사가 681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현재까지 경북 북부 지방의 중심 가람으로서 전통을 자랑하고, 가람 건축의 짜임새도 뛰어난 곳이다.
의상대사 창건설 말고도 신라말의 대학자인 최치원이 창건했다는 설도 전해져서 더욱 이채롭다.
전설인즉, 고운 최치원이 여지, 여사라는 두 스님과 이 곳에 와서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라는 두 누각을 건립하였고, 이 때부터 최치원의 호를 좇아 고운사라고 불리웠다는 것이다.
최치원은 유학자이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풍류도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풍류도란 신라 화랑들과 같이 산천을 찾아 다니며, 심신을 단련하고 자연을 숭상하는 수행법이자 일종의 종교적 행위였다.
당대의 대 지성이요, 풍운아였던 최치원이 언제 죽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는 가야산에서 산신이 되었다는 설이 풍미했을 정도로 신선도나 도교의 성인에 가까웠다.
최치원과 밀접한 인연을 간직한 고운사는 도교적 이미지로 가득한 절이다.
뒷산의 명칭도 뭉게구름을 뜻하는 등운산이고, 최치원이 세웠다는 가허루나 우화루 역시 도교의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비행체들을 뜻한다.
물론 도교 또는 풍류도의 도사가 불교 사찰을 창건했다는 전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단지, 이 땅의 산세가 신선이 노닐만한 선경이라는 점,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지 신라말에 최치원과 관계가 되었기에 형성된 창건 연기가 아닐까.
가허루는 현재 가운루(駕雲樓)로 바뀌었고, 우화루는 우화루(雨華樓)로 이름이 바뀌었다.
가운루
최치원이 지었다고 우각이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 계곡위로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나무기둥을 세워 건물을 지었다.
종각
종각
법고ㆍ범종ㆍ목어ㆍ운판의 사물(四物)이 설치되어 있다. 조석예불에 그 소리를 낸다.
고운사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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