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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파키스탄 여행기 4 "울타르와 라카포시 트레킹"

정혜거사 2017. 6. 6. 21:43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여행기 9 (파키스탄 4)

 

"울타르"와 "라카포시" 트레킹

 

 

 

 

 

 

 

 

 

 

 

*울타르  트레킹

울타르 산은 해발7388미터다. 우리가 묵고 있는 힐탑호텔 뒤에 발티트 포트가 있고, 바로 그 위에 울타르 산이 있다. 사실은 울타르 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5075미터인 알티트 봉, 7329 미터인 보여하구르-두아나서 봉, 6270미터인 훈자 봉, 6000미터인 후불리마팅 등 이름도 괴상한 고산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우리의 목적지는 3270 미터 지점에 있는 울타르 초원지대(Ultar meadow)였다. 즉, 3270미터 지점에서 7388미터 울타르 산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이들 뒤에 보이는 산이 울타르 산이다>

 

 

2012년 5월 24일 아침 8시, 울타르 봉을 향해 트레킹을 떠난다. 아침부터 무리를 지어 마을 뒷산으로 오르는 이방인들의 무리를, 동네 사람들이 호기심 있게 바라본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포즈를 취하고, 길가에 늘어선 가게 집 주인들은 혹시나 자기 집 물건을 사주지 않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고등학교로 보이는 한 학교에서는 아침 조회를 하고 있었다. 초록색 가디건에 회색 바지가 교복이다. 웅성거리며 떠들더니 갑자기 열을 맞추어 운동장에 도열하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교장선생님인 듯한 사람이 서 있고, 선생님들은 뒤에서 뒷짐을 지고 대화를 나누거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어도 겉 모습은 한국의 조회 시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는 조회가 없어진지 오래다. 개학식이나 졸업식 등을 제외하고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이나 선생님이 모일 기회가 거의 없다. 학생들 간에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같은 학교 선생님이, 자기 학교 선생님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애국 조회를 했던 기억은 이제 먼 옛날의 추억일 뿐이다.

 

 

 

 

 

 

약간 경사가 있는 마을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한 것은 9시 경이었다. 가파른 오솔길로 올라가는데, 길은 좁고 바위는 미끄러워서 상당히 조심을 해야 했다. 앞에 올라가는 사람의 엉덩이가 내 코앞에서 얼씬거렸다. 앞선 사람들을 따라 잡으려고 노력하는 대원들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나도 기를 쓰고 따라가려고 했으나, 나의 생각과 몸은 따로 놀고 있었다.

 

 

 

 

 

 

 

 

 

잠깐 숨을 돌리고 뒤를 바라보니 훈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멀리 솟구친 구름 아래 흰 설산을 배경으로 초록의 훈자 마을은, 꽃댕기 입에 물고 수줍어 하는 17세 소녀처럼 다소곳이 거기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절벽을 깎아 만든 좁은 돌 길 위로 염소와 목동이 지나가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딴 생각을 했다가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뼈도 추리지 못할 이런 절벽에 누가 길을 내 놓았는지 벌어진 입이 닫아지지가 않는다. 내가 이 길을 가는 것이 두렵듯, 저 염소들도 같은 두려움을 느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전에 시골에서 염소를 키워본 적이 있는데, 염소는 모험을 좋아하여 일부러 위험한 곳에 가는 듯 했었다.  절벽에 대한 공포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권이자 특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는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9시 40분, 바위를 돌고 돌아 드디어 펑퍼짐한 계곡이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지체하는 사이에 선두는 이미 개미 새끼처럼 작게 보이는 지점까지 올라가 있었다. 같이 가는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 함께 가는 것도 어려울 판국에, 그들을 따라 잡는다는 것은 뱁새가 황새를 따라잡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날은 덥고 갈길은 멀고, 포기할 때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쳐져 있던 우리 네 명은 아쉽지만 깨끗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울타르 산이건, 울어라 산이건, 사람이 살고 볼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포기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으며, 아마도 앞서 올라간 사람들은 지금쯤 힘들어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하니, 집착에서 포기로의 변화가 사람을 이렇게도 홀가분하게 만드는구나, 하고 스스로 놀랐다.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과연 그런 사람 중에 몇 사람이나 성공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포기를 조장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안될 놈은 안돼"라는 "용감한 녀석들"의 말을 귀담아 듣기도 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계속할 것인지, 깨끗이 포기하고 다른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인생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며, 이것이 바로 성공의 열쇠인지도 모른다. 너무 일찍 포기하여 조금만 노력하면 성공할 것을 포기한 경우도 많이 보아왔고, 포기 기회를 놓쳐서 머리가 돌거나 신세 망치는 것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보아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가 아니라, "포기하느냐 계속 하느냐"가 대부분의 인생사에서 성패를 결정한다.  

 

 

 

 

 

 

계곡에서는 눈녹은 회색빛 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이 물은 훈자 사람들의 생명수이다. 하지만 아직 정수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우리 호텔의 샤워장의 물은 언제나 회색빛 물이었다. 우리는 마실 물은 항상 슈퍼에서 구입하여 마셨지만, 샤워하고 빨래하는 물은 항상 이 회색빛 물을 사용했다.

 

 

 

 

 

 

 

 

 

 

 

 

내려오는 길은 새파란 풀과 나무가 흰색 눈을 배경으로 전원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흰 구름이 나타나 찬조 출연을 하고, 한 가운데 흐르는 훈자강의 강물이 북과 드럼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어디서 새 몇 마리 나타나 한 곡조를 뽑으니, 작렬하는 태양이 모두에게 축복의 햇빛을 선사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라카포시 트레킹

 

 

 

 

 

<구글 지도>

 

 

 

<로운리 플래니트 지도>

 

 

2012년 5월 27일, 아침 7시 30분 라카포시 산 트레킹에 나섰다. 등산 출발점인 미나핀에 도착하니 아침 9시, 아예 처음부터 몇 사람은 올라갈 것을 포기하고 근처에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강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겠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몇 사람은 라카포시 베이스 캠프까지는 가지 못하고 돌아오더라도 시작은 해보기로 하고 트레킹에 나섰다.

 

 

출발 지점에 한 파키스탄 남자가 땅 바닥에 앉아 있었다. 도대체 이 뜨거운 햇볕을 받아 가며 무엇을 하는가 보았더니, 갑자기 옷을 벗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에엑~, 으윽~, 허억~" 모두들 기절 초풍하여, 수박서리 하다가 주인에게 들켜 도망치는 소년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동네 주민>

 

 

 

 

 

처음 시작할 때는 평평한 길이었다. 라카포시 계곡물이 흐르는 수로를 따라 걸었다. 오른쪽으로 뜨거운 태양 아래 주민들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높지 않은 회색빛 산이 병풍처럼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런 장면은 한동안 계속되어 오늘 트레킹은 듣기와는 달리 별 것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지점에 돌로 쌓아 놓은 원주민의 집이 있었다. 당나귀 몇 마리가 배회하고 있을 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 동안 이런 곳에 머물며 더위를 피하는 것은 한 번은 해봄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척박한 곳에서 사는 사람이나, 동물에게는 삶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라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였다. 먼 설산을 배경으로 그럴듯한 경치는 눈으로는 즐거우나, 사람의 추위를 막아주고 배를 불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다른 부대원들에 뒤처져 혼자 걷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걷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세 명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들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달라고 했다. 나는 볼펜 한 자루와 사탕 하나씩을 주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말을 하더니, 서로 물물 교환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한 아이는 볼펜 2개를, 한 아이는 사탕 2 개를, 한 아이는 볼펜 1개와 사탕 1개를 갖고 산으로 사라졌다.

 

 

이 지점부터 사람 죽이도록 걷기가 힘들었다. 시계를 보니 12시 20분, 걷기 시작한지 3시간 20분이 지난 지점이었다. 약 20미터 걷고 쉬기를 반복했다. 포기할까 말까 망설였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 포기할 수가 없었다. 울타르 산에서의  현명한 포기를 곱씹어 보았으나, 조금 가면 목적지가 나올 것 같아, 가다 죽더라도 더 걸어보기로 했다.

 

 

바로 앞쪽에 다른 대원들이 걷고 있었다. 조금만 더 언덕을 올라가면 바로 라카포시가 보일 것 같았다. 앞대원들도 힘이 드는지 달팽이 걸음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나는 또 포기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온 것이 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무릎이 고장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힘은 고갈되어 있었다. 고산지대이라 그런지 10미터만 걸으면 숨이 찼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도계는 해발 3100미터를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무조건 20 발자국을 뗀 뒤 쉬기로 했다. 힘은 없지, 숨은 차지, 올라야 할 언덕은 앞에 떡 버티고 있지, 지나온 시간은 아깝지, 수 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헝클어 놓고 있었다. 이미 등산을 다녀온 복만이의 말이 생각났다. "라카포시 목표 지점 도착 직전에는 내 다리를 짤라내고 싶었습니다." 나는 이미 짤려진 다리처럼 만신창이가 된 내 다리를 다시 붙여 걸어야만 되었다.

 

 

계곡으로 계속 올라가는 대원들을 보면서, 나는 옆으로 빠져 능선을 따라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덜 가파랐기 때문이다. 능선 너머에는 빙하가 용처럼 꿈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도 있었다. 라카포시의 산 줄기의 끝자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빙하에서 불어오는 어름 바람을 피해 능선 바로 아래쪽을 소금에 절인 배추잎처럼 처져 걸었다.

 

 

 

 

 

 

 

 

 

갑자기 어디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미 도착해 있던 대원들이 늦게 온 나에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거기가 바로 라카포시 정상이 눈 앞에 보이는 지점이었던 것이다. 여기가 거긴가? 나는 환호와 탄성과 울부짖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두 팔을 들어올려 만세를 불렀다. 올림픽 금 메달을 거머쥔 운동선수가 바로 이런 심정일까? 히로뽕 주사를 맞은 사람이 이런 기분일까?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나는 안개를 뚫고 하늘로 치솟아 마침내 천국의 문을 열었다! 심장이 멈추고 가슴이 터지며 몸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그때가 바로 2012년 5월 27일 오후 2시 26분 40초였다.

 

 

 

 

 

 

 

 

 

라카포시와 디란 그리고 알 수 없는 수 많은 백설 봉우리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어서 18-250미리 렌즈 카메라로는 전 광경을 포착할 수 없었다. 파랗다 못해 퍼런 하늘을 배경으로 순백의 형체가 눈 앞에 꿈틀 거리고 있었다. 눈 구름이, 마법사의 주문에 따라 이동과 멈춤, 나타남과 사라짐, 분열과 융합을 반복하고 있었다. 산 등성이는 찬 바람이 무섭게 불어서 단 몇 초를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칼 얼음바람 맞으며 한 동안 서 있었다.  한 방울 눈물이 또르르 흘러 내렸다. 오늘 걸어온 여정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내가 이런 곳을 와보다니, 내 체력이 대단해서도 아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 나이로 보아, 내 평생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의미심장하게 내 가슴을 후려패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를 내려오자 말과 소가 풀을 뜯는 초원이 나타났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저 멀리 이미 앞서 내려간 대원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나무 아래 앉아 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눈을 반쯤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라카포시에서의 흥분을 가라 앉히고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옆에서는 한 파키스탄 사람이 산 정상을 향해 절을 하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루에 몇 번씩 행하는 기도 시간이 된 듯 했다. 그의 모습은 목욕재계를 하고 산신령께 축원을 보내는, 소복(素服)을 입은 새벽의 안개 낀 강가의 무당을 연상시켰다. 신내린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강렬한 눈빛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는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더니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5월의 라카포시 계곡은 연푸른 풀과 나무 잎의 축제장이었다. 그 위로 석양이 마지막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빛은 산등성이도 자비를 베풀고 있었다. 그 석양빛은 오늘 나의 등정을 축하해주는 한 모금의 축하주였다. 나는 마음껏 축하주를 마시고 또 마셨다. 나는 빛에 취해 비틀비틀 걸었다. 줄에 발이 묶인 말이 뒤로 넘어져 등을 땅에 비비며 나를 축하해 주었다. 총을 든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나타나 바람도 없는 공중에 총을 높이 들어 또 나를 축하해 주었다. 오늘은 정말 감격스러운 날이다!

 

 

 

 

 

 

 

 

 

 

 

 

 

 

 

 

 

 

 

 

 

 

 

 

 

 

차가 대기하고 있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 한 소년이 다가왔다. 그는 내 주위를 배회하며 떠나지를 않았다. 나는 그가 돈을 달라거나 먹을 것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머니에 뭔가 남은 것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할 때, 그는 내가 가지고 있는 빈 플라스틱 물병을 달라고 했다. 플라스틱 물병이 없어서 먼 길 걸어와 외국인에게 달라고 한다!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하늘을 날다가 다시 땅에 착륙하여 발을 땅에 밟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에서 우뢰같은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이미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였다.

 

 

라카포시 ― 그것은 가슴 벅찬 추억으로 남아, 내가 이 세상을 마감하는 날까지, 영원히 그리고 도도하게 내 피줄 속에 흐를 것이다.    

 

 

(2012년 8월 10일 작성)

출처 : 투어인케이씨-자유배낭여행동호회
글쓴이 : 알바트로스(곽영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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