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료 /카라코람 하이웨이

[스크랩] 파키스탄 여행기 2 "파수에서 훈자까지"

정혜거사 2017. 6. 6. 21:41

 

 

 

 

 

 

중국, 파키스탄, 인도 여행기 7

 

파키스탄 2

 

 —"파수에서 훈자로"—

 

 

 

 

 

 

 

 

 

 

 

 

 

<이 글에서 언급된 여행 경로: 파수에서 훈자까지>

 

 

 

 

<위성 사진에서도 길이 끊겨있다.>

 

 

2012년 5월 22일, 쌀쌀한 비가 지척지척 내렸다. 나는 배낭에 쳐박아 놓았던 파카를 끄집어 내어 툴툴 털어 입었다. 미나핀이라는 마을에 도착하자 차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고 했다. 길이 끊긴 것이다. 눈을 들어보니 저 멀리 강 가운데 백사장에 임시 선착장이 보였다. 비를 맞으며 사람들이 연신 배에 타고 내렸다. 누가 뭐래도 세월은 흐를 것이고, 물의 수위는 점점 높아 갈 것이며,  그에 따라 선착장도 뒤로 뒤로 옮겨갈 것이다.

 

 

 

 

 

 

한국의 사극 드라마에서 보는 어느 포구를 닮았다. 사람이 분주히 타고 내리며, 비에 젖은 묵직한 가마니가 바쁘게 배에 실리고 있었다. 가마니 속에 있는 감자가 삐죽삐죽 나와 비를 맞는 모습이 처량했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나무 판자 위로 걸어가 작은 배를 탔다. 우리는 그 작은 배를 타고 수심이 깊은 곳에 정박해 있는 큰 배로 옮겨타고 훈자강을 따라 내려갔다.   

 

 

 

 

 

 

 

 

 

 

 

 

우리가 탄 배는 잠수함을 닮았다. 입구를 제외하면 모두 막혀 있고, 앞쪽 천장에 구멍이 덩그러니 나 있었다. 그 작은 구멍으로 비바람이 세차가 들이닥쳤다. 그 구멍을 우산으로 가렸다가, 뚜껑으로 가렸다가, 그냥 열어 놓았다가---그  뚜껑은 아무나 심심하면 한 번씩 만져보는 장난감으로 변했다.

 

 

나는 추위에 떨었다. 한참을 배 안에 있다가, 밖을 내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살며시 둥근 뚜껑을 열고 방금 알에서 깨어나온 병아리처럼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훈자 호수다! 말로만 듣던 아름다운 훈자강이다! 강이 변하여 호수가 된 망망대해를 우리 잠수함은 통통통 소리를 내며 질주하고 있었다. 양쪽에 기기묘묘한 바위로 가득찬 훈자강을 배는 길고 뽀얀 흔적을 남기며 질주하고 있었다.

 

 

가슴을 적시는 시원한 훈자강
바람은 세차게 불어오누나
가랑비 적시어 내마음 달래려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배는 살같이 해원을 달린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내배는 살같이 해원을 달린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의 패러디>

 

 

만약 사고가 나서 뒤 부분부터 물에 잠긴다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은 다른 배 한 척과 부딪칠 뻔한 일이 있을 때였다. 18명 중, 몇 사람은 작은 구멍으로 빠져 나와 목숨을 건지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우적 대다가 수장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방정맞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헛된 생각에서 깨어나 주위를 돌아보니, 겨울 바람에 흔들거리는 등불처럼 모두들 웅크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주황색 배가 우리가 타고온 배다>

 

 

10시 40분에 출발한 배는 12시 30분에 산사태로 막힌 강뚝에 도착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짐꾼에게 1달러를 주고 짐을 운반하게 시켰다. 도대체 무슨 산사태가 나서 이런 호수가 만들어졌을까? 살펴보니 강폭이 좁은 협곡을, 위에서 엄청난 흙더미가 쏟아져 완전히 막아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강물이 계속 저장되어 점점 수위가 올라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점점 올라오는 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산사태가 났듯이 강뚝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 파키스탄 정부는 미리 어떤 계획이나 세워놓고 있는 것일까?   

 

 

 

 

<배에서 내려 주차장으로걸어올라가고 있다.>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훈자강은 카라코람 산맥을 따라 흐른다. 그러나 2010년 1월 4일 산사태로 흘러내린 토사가 강물을 막으면서 이 강에 거대한 호수가 생겼다. 수위는 계속 높아져 근처 마을은 하나 둘 물속으로 잠겼다. 3만명 이상의 주민이 이주했다고 한다. 물론 길도 물속에 잠겨서 산사태 북쪽에 있는 마을은 관광객이 거의 끊긴 상태이며, 굶주리던 주민들은 모두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이 사진은 2012년 1월 22일 일어난 2차 산사태 장면이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았다. 어떻든 앞으로도 이런 일은 종종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중국 카스에서 훈자로 오면서 거의 90도 되는 수백, 수천 키로 되는 연약한 절벽이 즐비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러나, 저기 사진 찍는 사람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만 궁금할까?>

 

 

다시 봉고차를 타고 훈자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 40분, 우리가 앞으로 일주일 동안 묵을 Hill Top Hotel이다.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소녀처럼, 단아하게 맞이하는 Hill Top Hotel. 주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홍차와 우유로 만든 짜파티를 한잔씩 따라주었다. 어쩐지 파키스탄 사람 같지 않은 훈자인들이, 파키스탄인이 아닌 이방인처럼 멋있게 보였다.

 

 

 

 

<우리가 묵었던 훈자의 힐탑 호텔>

 

 

 

<짜파티라는 차를 마신다>

 

 

종업원은 나무로 대충 깎아 만든 열쇠꾸러미를 들고,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문을 여니, "와, 여기가 어디냐? 이수일과 심순애가 사랑을 나누었던 꽃 침대가 아니더냐? 화려하게 놓아진 두 침대가 룸살롱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아가씨처럼 포근하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와, 여기가 무릉도원이냐, 파라다이스냐, 아니면 샹그릴라냐?"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요,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이 아니더냐? 싱그런 초록 들판, 쭉뻗은 고산 위로 흰구름 너울너울 하늘에 이어졌다. 구름 그림자가 산 위에 낮게 깔려 내 가슴 뒤 흔든다. 이래서 사람들이 훈자,훈자 하는구나!

 

 

 

 

<일 주일 동안 묵었던 호텔 방>

 

 

 

<나의 방문을 열면 보이는 훈자: 호텔에서 보아 서쪽 계곡이다.>

 

 

 

 

<훈자의 피칸 파이>

 

 

길옆 2층에 있는 한 가게에 들렀다. 호두를 석류 씨앗처럼 많이 넣은 달직한 피칸 파이를 팔고 있었다. 주인이 주는 차와 더불어 파이는 내 목구멍을 간지르며 살살 녹아 넘어갔다. 옆에 있는 진열대에는 살구 기름을 팔고 있었다. 먹기도 하고 바르기도 한다는 살구씨 기름이, 작은 병에 담겨져 노란 민들레처럼 수줍게 놓여 있었다.   

 

 

 

 

 

 

 

 

 

 

저 멀리, 가까이 있는 설산이 나를 둘러싸고 나를 오라한다. 때로는 다정히 손을 내밀고, 때로는 달래며, 때로는 위압적으로 유혹한다.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배가 곱게 밀려온다"(이육사: 청포도).  '아,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양희은: 한계령)', 저 설산은 내 푸른 소매를 잡아 당긴다.

 

 

 

 

<북쪽의 설산>

 

 

 

<훈자의 거리>

 

 

훈자의 거리에는 동물이 산다. 염소와 양이 주인을 따라 텅빈 거리를 가다가 길을 잃기 십상이다. 염소를 몰고가는 노인에게서 평화로움이 묻어 난다. 염소 한 마리 키워서 무슨 큰 이득이 날 것인가? 하지만 그 생활이 즐거워 오늘도 길을 나섰다.

 

 

훈자는 세계의 장수마을 중의 하나다. 해발 6000미터 이상 높은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훈자의 평균 해발은 2500미터다. 오염시설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짜파티를 마시고 느릿느릿 걸으며, 가난하건 부자건 하루하루가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는 만족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훈자의 거리에는 아이들이 산다. 허름한 옷에 슬리퍼를 신고 떼지어 다닌다. 뛰고 달리며 나무에 매달리고 물속에 뛰어든다. 모래를 쌓고, 모래 굴을 만들고, 모래 위에 누워 잔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고기를 사오고, 풀을 뽑고 풀을 베면서 해가 뜨고 해가 진다.

 

 

 

 

 

 

옆에 있던 복마니는 '훈자'는 '혼자' 오면 더욱 멋있는 곳이라고 한다. '혼자'가 아니라 '각자'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가 말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훈자 이야기를 할 것이다. 다음에는 '먹자, 보자, 걷자' 이야기를 할 것이다.

 

 

(2012년 7월 12일)

출처 : 투어인케이씨-자유배낭여행동호회
글쓴이 : 알바트로스(곽영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