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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 파키스탄, 인도 여행기 5 "카스의 마지막 밤 그리고 파키스탄으로"

정혜거사 2017. 6. 6. 21:39

 

 

 

 

중국, 파키스탄, 인도 여행기 5

 

 —"카스의 마지막 밤, 그리고 파키스탄으로 "—

 

 

 

 

 

 

 

 

 

내일이면 카스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자못 의미심장하지만, 여행 와서 마지막이란 그저 술이나 실컷 먹는 것 이외에 무슨 뾰죽한 수가 있으랴. 비록 카스바는 없지만, 술을 먹을 때까지 먹어보기로 했다. 될대로 돼보라는 말기암 환자 같은 심정인지도 몰랐다.  파키스탄에 들어가면, 회교국이므로 술을 먹을 수 없고, 만약 먹다가 적발되기라도 하면, 경찰에 끌려가거나, 감옥에 가거나, 심지어는 손이나 발을 짤린다는 말도 있어서, 이날 밤만은 독하게 마음먹고 술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전체가 술과 저녁을 먹다가 슬슬 빠져서 결국 'KC'와 '달마대사' 그리고 '나' 셋이서 최후로 남게 되었다. 아니 확실한 기억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적어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러했다. 저녁 7시부터 시작한 술은 새벽 1시인가 2시까지 계속된 것 같고, KC가 묵고 있는 방에 가서 한 잔 더 하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비몽사몽 간에 KC를 따라가는데, 어떤 현지인이 자꾸 KC 호텔방으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다. 나가라고 떠밀면 들어오고, 문을 닫으면 노크를 하고, 그야말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본능적으로 나는 나의 방을 찾아 들어왔다.

 

 

한참을 자다보니, 아무래도 내가 내방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방에서 자는 것 같았다. 나는 속옷바람으로 밖으로 나와, 나의 호텔방을 찾아간다고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마침 어떤 방문이 빼꼼이 열려있었다. 뚱뚱한 여자 두 명이 TV를 보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고 괴성을 질렀다. 그러면서 문을 확 닫아 버렸다. 그 여자들이 문을 닫아 버렸으니 망정이지 밖으로 튀어나와 도망치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나에게 달려들었다면, 그야말로 그날밤 호텔에서는 눈부신 개그 콘서트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그때  KBS 개그 콘서트의 '감사한 일' 코너가 머리 통을 때리고 지나갔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나는 내가 술이 덜 깼음을 알고, 잽싸게 내가 왔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호텔 복도를 걸으면서, 이러다가 호텔직원한테 걸리면 뒈지게 얻어터질텐데 큰일이다,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다행이 3-4시가 되어서인지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제는 내가 나온 방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기왕에 베린 몸, 호텔복도의 x좌표와 y좌표를 하나하나 샅샅이 검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 밤중에 어스름하게 비춰진 호텔복도를 미로에 갇힌 생쥐가 출구를 찾듯, 하나하나 문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모든 문은 잠겨있었다.

 

 

천만 다행으로 몇 분 걸리지 않아 나는 내 방을 찾을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방을 나올 때, 방문을 열어놓고 나왔기 때문이다. 죽음의 전투에서 살아아온 양,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샤워를 했다. 그리고  화장실 벽에 붙어있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머리는 산적처럼 부시시했으며, 얼굴은 냉장고에 오래 묵혀진 딸기처럼 붉게 시들었고, 등은 늙은 나무처럼 굽었으며, 뱃가죽은 젖을 다 빨린 늙은 개처럼 처져있었다. 그래도 배가 나오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며, 이빨을 들어내어 '히히' 웃고는 "미친 놈"이라는 한 마디를 허공에 내 뱉었다. 그리고 침대에 돌아와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왔다.  

 

 

 

 

 

 

몇시인지 모르나 호텔근처의 청진사는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사원이, 광장에 켜둔 불빛을 받아 갈색으로 물들여있었다. 그 건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간밤의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는 것 같았다. 기도를 하러가는 사람과 나오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나도 따라들어가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라도 할까 하다가, 말았다.  

 

 

옆에 있던 다른 건물에서도 붉은 빛은 세상의 모든 죄지은 자들에게 사함을 내려주는 듯했다. 방향을 틀어보니 가로등 뒤에 색시 눈썹 같은 달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달을 보니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말했었다. "새벽달을 보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너희들 알겠느냐?"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며, 새벽달을 볼 바에는 잠이나 더 자지 쓰잘데기 없이 새벽달은 왜 보냐?, 라고 누군가가 뒤에서 궁시렁댔다. 아마도 "소씨"라는 성을 가진 학생이었을 것이다. "야 임마, 새벽달을 보는 사람은 첫째, 노름꾼이 밤새도록 노름하다가 들어오면서 보고, 둘째 도둑놈이 새벽에 도둑질 하다가 오줌 싸면서 보고, 그리고 세 번째로 과부가 잠이 안 와서 밖에 나와 새벽달을 보며 한숨짓는거여, 이것들이 어려서 뭘 알아야지!" 이 말을 했던 선생님은 염라대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수학선생님이었으며, 그의 모습은 물에 빠진 쥐 같기도 하고, 마귀할멈 같기도 했었다. 술이 반쯤 취하니 기억력이 더 좋아지는 듯한 착각을 하며, "다음에 또 한번 해봐, 말어?"라고 피식 웃으며, 가방속의 카메라를 꺼내 들고 걸었다.   

 

 

 

 

 


 

 

 

<로운리 플래니트에서 인용한 지도: 카스에서 쿤제랍 고개까지>

 

 

5월 20일, 일요일이다. 12시에 국제버스를 타고 파키스탄을 향해서 출발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KKH)는 카스에서 시작하여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이슬람아바드까지 가는 험한 산길을 말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중국쪽의 KKH를 '314번 국도'라고 부른다.

 

 

 

 

<국제 버스 내부>

 

 

 

 

 

 

카스의 해발이 1300미터인더 여기서부터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며 버스는 달린다. 하늘로 치솟은 산 사이의 계곡으로 차가 달리면, 농토 하나 없는 황량한 산 비탈만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내서는 안될 곳에 길이 만들어져 있기에 산에서 바위가 계속 떨어져, 한 시간 동안 멈춰서서 기다린 곳도 있다.

 

 

 

 

 

 

 

 

 

 

 

 

 

 

한참을 가다보면 시커멓고 칙칙한 드넓은 평원이 나타나게 된다. 먼 곳, 가까운 곳에 듬성듬성 물이 고여 작은 호수를 형성하고 있다. 찬바람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세차게 불어 이에 도전장을 내밀고 차 밖으로 나간 사람들은 몇분을 버티지 못하고 기겁을 하고 돌아왔다. 가끔가다 나타나는 대형 공사차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이곳이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센티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처절한 분위기가 적군처럼 밀려왔으며, 몽둥이를 맞고 쓰러지는 숫사슴처럼 내 마음은 황폐화 되었다. 가끔가다 유리 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외로움이 몰려와 내 마음은 카라쿨 호수에서 목놓아 울고 있었다.   

 

 

 

 

 

 

 

 

 

 

 

 

 

 

 

 

<喀拉库勒(카라쿨라 호수 입구)>

 

 

 

 

<카라쿨라 호수>

 

 

 

 

 

 

 

 

<카라쿨라 호수 위의 7719미터 콩구르산 방향에 있는 설산>

 

 

 

 

<갑자기 오토바이꾼이 도착해 허접한 물건들을 팔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타쉬쿠르간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음식점에서였다. 쉬앙뤼쉬앙이라는 이름의 맥주 병너머로, 동료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옆에 뱀장어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지를 삶아 놓은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음식이 차분하게 접시에 놓여있었다. 옆에는 가족을 동반한 현지인들이 큰 잔치를 벌이면서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 보았다. 끈적거리며 쫀득거리는 안주를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어젯일을 생각해 맥주는 입에 대지 않고 맥주의 쓴맛만을 되풀이해 회상하였다.  

 

 

 

 

 

 

 

 

<카시쿠르칸 초등학교 정문에 붙어 있는 "당과 국가의 교육방침": "교육은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업무를 위해야 하고, 생산과 노동이 결합되어야 하며, 덕, 지, 체(우리의 지덕체와 순서가 달랐다!) 등 모든 면이 갖추어진 사회주의 사업 건설자와 후계자를 만들어내야 한다"라고 적혀있다. 필자 해석>

 

 

 

 

<타쉬쿠르칸 초원에 건설된 나무 다리>

 

 

5월 21일 아침 10시, 카쉬쿠르칸 "교통 빈관"을 나와 파키스탄으로 가는 중국 이민국에 도착했다. 녹색의 복장을 한 경찰이 줄을 맞춰 행진해 들어왔다. 출국 절차를 마치고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했다. 경찰은 화장실에 갈 사람이 생길 때마다 데리고 갔다가 데리고 왔다. 허허 벌판에 숨을 데도 없고, 도망칠 데도 없는데, 왜 그리 철저히 여행객을 관리하는지 알 수 없었다.

 

 

거기서부터 국경선까지 경찰이 동승해서  같이 가게 되었다. 젊은 경찰은 한 시간 30분 국경으로 가는 동안, 무거운 경찰 복장을 입은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가끔 가다 졸기는 했으나 기압이 팍들어서 자기 임무를 너무 성실히 하는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 검문을 마쳤다. 같이 동승했던 공안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약 1키로지점에 중국과 파키스탄의 실제 국경선임을 알리는 커다란 돌로 된 대문이 있었다. 거기가 바로 쿤제랍 패스라고 알려진 4825미터 고개였다.

 

 

 

 

 

 

지나온 길을 바라보니, 아쉬움과 시원함이 몰려왔다 몰려갔다. 아마 다시는 와보지 못할 카스에서의 일주일이 영화처럼 머리 속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카스에 대한 추억과 파키스탄에 대한 기대가 두 강물이 밀려와 마주쳐 생기는 소용돌이처럼 마음을 휘젓고 있었다.

 

 

려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며 이리저리 냄새를 맡고 다녔다.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고, 아무도 말도 걸어주지 않는 털이 부시시한 개에게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한참 고개를 들어 우리를 쳐다보던 개는, 자기가 있어야 할 집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그 개의 쓸쓸한 모습은 멀고 희미해져, 마침내 하나의 소실점으로 변하더니,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2012년 6월 29일)

출처 : 투어인케이씨-자유배낭여행동호회
글쓴이 : 알바트로스(곽영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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