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인도성지순례

월기획 해외성지순례Ⅱ] ⑩ 네팔 룸비니·인도 쿠시나가르: 찬란한 불교문화 쇠퇴했지만 고귀한 진리 고스란히 남아

정혜거사 2019. 2. 13. 11:28





탄생·열반지로 순례객 붐벼

마야데비 사원, 아쇼카 석주

부처님 마지막 모습 간직한

열반상 등 불교유적 곳곳에


부처님 탄생성지인 네팔 룸비니에 조성된 마야데비 사원과 푸스카니 연못.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 전법과 교화를 하고 열반에 든 곳이자 불교가 처음으로 꽃피운 발상지, 바로 인도다. 기원전 273년 마우리아 왕조 아소카왕은 인도 전 지역이 통일하고 불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것도 이 무렵이다. 


이후 왕조의 흥망성쇠에 따라 불교 역시 쇠퇴하고 힌두교가 주요 종교로 자리잡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불교유적과 불교성지가 위치해 있어 많은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특히 부처님이 탄생하신 룸비니와 깨달음을 얻으신 부다가야, 부처님께서 처음 법을 설하신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르 등 4대 성지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성지인 룸비니는 현재 네팔의 영토에 속한다. 인도 국경에서 약 20km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네팔 수도 카트만두나 포카라에서 항공편으로 이동할 수 있다. 룸비니는 2600년 전 석가족의 왕국이 위치했던 곳이다. 


국왕인 슛도다나 왕의 부인 마야데비 왕비가 산달이 가까워지자 친정을 향해 가던 길, 왕비 일행은 카필라성과 콜리성 경계 근처의 룸비니에 이르러 휴식을 취했다. 이 때 흰 꽃을 만발한 꽃동산을 거닐던 마야데비 부인이 꽃이 만발한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는 순간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로 부처님께서 탄생했다. 


“하늘과 땅 위에 오직 나홀로 존귀하네(天上天下唯我獨尊).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이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으니 내 마땅히 이들을 편안케 하리라(一切皆苦我當安之).” 음력 4월8일. 아기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며 세상을 향해 인간생명의 존엄함을 외쳤다.


인도 쿠시나가르 열반당.

룸비니는 부처님 탄생성지로 불교성지 가운데 가장 성스러운 장소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룸비니는 오랜 시간 방치되다가 1895년 독일의 고고학자인 알로이스 퓌러 박사가 추리아 산맥의 작은 언덕을 배회하다가 돌기둥을 발견하고, 돌기둥에 새겨진 고대 비문을 해독해 내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파야다시(아쇼카) 왕은 즉위한 지 20년이 지나 친히 이곳을 찾아 참배했다. 여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했다. 이곳에서 위대한 분이 탄생했음을 경배하기 위한 것이며, 이에 룸비니 마을은 조세를 면제하고 생산물의 8분의 1만 징수하도록 한다.” 


이처럼 당시 퓌러 박사가 발견한 돌기둥인 아쇼카 석주에는 룸비니가 부처님 출생지였으며 기원전 3세기 아쇼카 왕이 이곳을 방문했었다고 쓰여 있었다. 이후 퓌러 박사는 주변 지역을 조사하고 발굴해 벽돌로 된 사원과 사원 안에서 부처님의 탄생 장면을 묘사한 사암 조각을 발견했다.



현재 룸비니에는 마야데비 부인을 기리는 사원과 연못이 있으며, 기원전 249년경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 왕이 룸비니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아쇼카 석주가 위치해 있다. 부처님 탄생 장면을 묘사한 부조를 모시고 있는 마야데비 사원은 11세기에 조성됐다가 1943년에 재건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마야부인이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고 연화대 위에 똑바로 서서 갓 태어난 어린 석가모니부처님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의 마야부인상을 모시고 있다.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낳기 바로 직전 목욕을 한 곳이자 부처님을 낳고나서 처음으로 씻긴 곳이라고 전해지는 푸스카니 연못(구룡못)도 만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르는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열반당은 인도 굽타 왕조 쿠마라굽타 1세의 재위 기간에 건립됐다. 이후 12세 말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으로 크게 훼손됐으며, 1867년 열반당에서 약 1.5㎞ 동쪽에 있는 히라냐바티 강바닥에서 심하게 훼손된 열반상을 찾아내며 발굴됐다. 


열반당은 높이가 약 12m이며 13세기 무슬림의 침공으로 사원과 주변이 모두 불에 타버린 것을 1879년에 복원을 하고 1956년 미얀마 스님들이 재건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45년간 법을 설하셨던 부처님은 80세에 이르러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드셨다. 열반에 들 것을 예감한 부처님은 아난존자를 동행하고 당시 마라족의 도읍인 쿠시나가르로 발걸음을 옮겼다. 


쿠시나가르 교외에 도착한 부처님은 두 그루 사라나무 아래에서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얼굴은 서쪽으로, 오른쪽 옆구리를 침상에 붙인 채 두발을 포개어 옆으로 고요히 누워 열반에 드실 준비를 한다. 비통해하는 제자들에게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自燈明 法燈明)’는 가르침을 설하며 끊임없는 정진을 당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할 마지막 말은 이렇다. 모든 것은 변하고 무너지나니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나는 방일하지 않았으므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을 때 지축이 뒤흔들리고 주변 곳곳에 아름다운 향기가 피어났다고 한다. 부처님 열반 후 부처님 사리는 마가다국의 아쟈타삿투왕을 비롯해 바이샬리의 릿챠비족, 카필라바스투의 석가족, 라마마을의 콜리야족, 파바의 말라족, 알라캅파의 부리족, 베타디파에 있는 바라문 등에게 전해졌으며, 부처님 사리를 받은 이들은 부처님 사리를 모시며 탑을 세웠다.



과거 쿠시나가르에는 수많은 불탑과 사원, 승방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지고 불교 유적에서 발견되는 불상 등이 미얀마가 이곳에 건립한 마하팔리니르바나 사원에 모셔져 있다. 마하팔리니르바나 사원 주변에 열반탑과 절터 등의 많은 유적이 있으며 동쪽으로 1㎞ 되는 지점에 높이 46m의 벽돌탑이 있다. 


벽돌탑은 라마바르 흙무덤으로, 부처님 유해가 다비된 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흙무덤의 북서쪽으로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셨다고 전해지는 히라니야바티 강이 흐르고 있다. 열반당 내부에는 부처님의 장엄한 모습과 열반상이 모셔져 있다. 


열반상 대좌에는 마지막 공양을 부처님께 올린 춘다와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타, 그리고 부처님의 발아래서 슬퍼하고 있는 아난다 존자 등의 모습이 조각돼 있다.


열반당 내부에 조성된 부처님 열반상.

자료협조=  대승투어

[불교신문3253호/2016년11월30일자] 

엄태규 기자  che1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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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8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