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부처님의 나라다. 사바세계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해 이 땅에 화현(化現)한 부처님은 깨달음을 성취한 후 인도 전역을 다니며 가르침을 전했다.
또한 인도는 힌두교, 브라흐만교, 이슬람교 등이 공존하는 ‘세계종교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해외여행이 활발해지면서 인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최근 들어 라자스탄과 남인도가 주목받고 있다.
고대왕조 역사 품은 라자스탄
‘파란색 연꽃’ 고대도시 푸쉬카르
인도 대륙 들어가는 관문 첸나이
해안도시 폰디체리는 ‘작은 유럽’
① ‘물고기의 눈’을 한 여신을 모시는 미나쉬 힌두교 사원. |
라자스탄
인도 북서부의 라자스탄은 인도, 이집트, 아라비아, 페르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무역상과 진리를 찾아 나선 구도자(求道者)들의 숱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뉴델리와 올드델리를 합쳐 부르는 델리는 인도의 중심이다.
갠지스강 지류인 야무나강 서쪽에 자리하면서 인도와 아시아, 유럽 대륙을 오가는 요충지이다. 그런 까닭에 고대부터 다양한 문화가 흘러들어 용광로 역할을 담당했다. 17~18세기에 이슬람 무굴 제국의 수도로 번영하면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지
금의 수도인 뉴델리는 1931년 새롭게 건설되면서 인도의 중심이 됐다. 붉은색 사암(砂岩)으로 쌓은 랄키라성과 그 안에 자리한 궁전이 오랜 역사와 경치를 선물한다. 특히 눈부신 보석으로 치장한 벽과 웅장한 대리석 기둥의 디와니이하스트 궁전은 오래전부터 유명하다.
라자스탄주(州)의 거대한 요새 도시인 자이살메르는 ‘전쟁과 평화’의 인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더스 계곡과 비옥한 평야 사이의 타르사막에 우뚝 서 있는 자이살레르성(城). 12세기 중반 자이살공(公)이 만든 마을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도시가 내려보이는 언덕 위에 왕궁, 자이나교 사원, 도서관 등을 갖춰 유구한 역사를 증명한다. 14세기 이슬람교도인 델리의 황제 알라 웃 딘 할지가 침략한 후 쇠퇴했으며, 그 뒤에는 무굴제국의 봉토가 됐다. 라자스탄 왕가의 저택인 싱키하벨리, 인공호수인 가디 시가르, 사막박물관에서 자연의 아름다음과 인류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라자스탄주의 가운데 위치한 푸쉬카르는 인구 2만 안팎의 작은 도시이다. 성스러운 호수로 알려진 푸쉬카르호(湖)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푸쉬카르는 산스크리트어로 ‘파란색 연꽃’이란 의미이다. 설화에 따르면 세상을 만든 브라흐마(창조의 신)가 악마와 전쟁을 벌이다 무기를 이 마을에 떨어트렸다고 한다.
그 무기가 바로 푸쉬카르, 즉 ‘파란색 연꽃’이었던 것이다. 1년에 한번 푸쉬카르 낙타축제가 열리는데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가축시장에서 유래한다. 매년 11월 열리는 축제에서는 ‘낙타 사파리’도 즐길 수 있다.
타르사막 초입에 자리한 조드푸르는 15세기 중반 라오 조다가 세운 도시로 조드푸르 왕국의 수도다. 모래구릉으로 이뤄진 쓸모 없는 땅이 많아 ‘죽음의 지역’이란 의미의 ‘마르와르’로 불렸다. 메헤랑가드성, 자스완탄다, 사다르바자르 등 관광지가 여러 곳이다.
② 인도 라자스탄주의 거대한 요새 도시인 자이살메르. |
남인도
인도 남부의 최대 도시이며 항구인 첸나이는 대륙의 관문(關門)이다. 벵골만에 자리하면서 해양과 대륙을 이어주는 요충지로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잦았다. 1640년 영국이 아시아로 진출할 당시 동인도회사를 세운 곳이 첸나이일 정도로 산업과 교역이 활발했다.
동인도회사가 둥지를 튼 성(聖)조지 성채와 그 주변의 모래 언덕을 따라 도심이 형성되어 있다. 인도 문화는 물론 동서양의 문명을 짧은 기간에 만날 수 있는 매력을 지닌 도시가 첸나이다. 성조지 요새를 비롯해 마리나 해변과 고등법원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인도 각지를 향해 힘차게 뻗어 있는 철도 역시 장점이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지구촌을 연결하는 항공으로 편리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뱅골만에 접한 항구로 타밀나주에 자리한 마하발리푸람 역시 7세기부터 동서양 교역의 거점이었다.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60km 정도 떨어진 마하발리푸람은 3세기 후반부터 9세기 말까지 남인도 동쪽 해안을 지배한 팔라바 왕조가 있었던 지역으로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도시 남쪽에는 초기 남인도의 건축 양식 흔적을 만날 수 있으며, 8세기경 조성된 해안 사원도 인도 전통의 힌두교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지역의 역사유물은 지난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파이브 라타스, 아르자나 고행상, 크리쉬나 버터볼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코로만델 해안에 위치한 폰디체리는 ‘작은 유럽이’나 마찬가지다. 1674년 이 지역을 손에 넣은 프랑스를 비롯해 네덜란드와 영국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다. 프랑스의 아시아 무역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폰디체리는 해양 중심의 관광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17세기 말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폰디체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는데, 최종 승자는 1761년 지역을 장악한 영국이었다.
③ 문나르의 광활한 홍차 밭. |
인도 대륙의 최남단인 타밀나두의 주도(州都)인 마두라이는 첸나이에 버금가는 도시이다. 스리랑카와 인도를 연결하는 핵심 요충지로 고대부터 인류가 살았던 고도(古都)이다. 드리비다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기원전 5세기부터 11세기까지는 판디아 왕국의 수도가,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는 나야크 왕조의 수도가 있었다.
그 만큼 화려한 문화유산과 유적이 많다. 스리미나쉬 사원, 티루말라이 나약 궁전, 이탈리아풍의 인도궁전, 간디박물관을 통해 인도의 과거와 현재를 만날 수 있어 금상첨화다. 특히 스리미나쉬 사원(힌두교)은 물고기 눈을 하고 가슴이 3개 달린 여신 미나쉬를 모신다.
‘물고기 눈’은 예로부터 ‘완벽한 눈’이란 뜻으로 알려져 있다. 사원의 면적은 6만㎡이고 가장 높은 탑은 52m에 이른다. 문나르는 홍차의 고장이다. 인도를 대표하는 홍차는 문나르 고원의 자연환경에서 가장 잘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남서부에 자리한 케랄라 주의 코치는 해양도시로 1502년 포르투갈이 상업 거점으로 삼았다. 포루투갈이 동아시아로 진출하는 중간 기지 역할을 담당했던 도시로, 무역이 활발했다.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가 코치를 무역 중심지로 삼았다.
네덜란드가 만든 궁전인 마탄체리를 비롯해 차이니스 피싱넷, 성프란시스 성당, 유대인 마을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자료협조= 대승투어
인도의 별미 ‘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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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3268호/2017년1월25일자]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승인 2017.01.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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