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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라바스티

정혜거사 2019. 2. 12. 22:33

쉬라바스티

 

◆  쉬라바스티(사위성)

지난날 코살라국의 도읍지로서 인도 전역으로 부터 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몰려들던 사위성은 라프티강 남쪽 기슭에 있는 자그마한 언덕 위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 기 원 정 사  --

기원정사는 인도말로는 제다바나 즉 제다의 숲이라고 한다.  제다태자가 제공한 숲과 급고독장자가 세웠다고 하여 기수급고독원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줄여 기원정사가 된 것이다.

급고독은 외로운 이를 돕는 자라는 뜻으로 인도말로는  ‘아난드 핀디카’라고 하며 수닷타 장자의 별명이다.


수닷타는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남기는 장사꾼이다. 그런데 전 재산을 다 바쳐 부처님께 공양드리며 불법에 귀의하는 자세는 지금 우리 마음의 자세와 견주어 볼만하다.

부처님께서  성도 후 3년 마가다국 라즈기르 죽림정사에 머무르고 계실 때의 일이다. 쉬라바스티에 살고있는 거부 수닷타 장자가 장사 차 라즈길에 갔다가 친구 집에 들르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모든 일을 그만두고 자신을 접대하는 친구였는데, 오늘은 조금 기다리라고 하는 전갈만을 남긴 채 영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 지난 연후에 나타난 친구에게 집에 무슨 큰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으니까,

                                                                                                             <수달타장자의 집터> 
내일 부처님과 그 제자들께 올릴 공양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며 사과하였다.  그날 저녁 친구로부터 일체를  깨달은 부처님이 오신다는 것과  더불어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설레어 장자는 그만 잠을 설치고 말았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수가 없어 밖으로 나왔지만,  순간 칠흑 같은 어두움에 두려움을 느껴 전율하였다. 그러나부처님을 생각하며 산책을 하다가 마침 명상하고 계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수닷타는 ‘이 분이 부처님일것’이라고 생각하고 경배를 드렸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어서오너라, 수닷타여. 내 이미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 되었느니라.’ 하셨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수닷타 장자는 부처님께 간청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저희 도시는 귀가 열린 사람은 있지만 성인이 없어 좋은 법문을 듣지 못해서  어리석은 사람이 많습니다.’ 하며 사위성에 오셔서 교화해 주시고 공양 받으시기를 간청하였다.


부처님이 청을 수락하자 그 길로 수닷타장자는 사위성으로돌아간다. 고향으로 돌아오자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머무실 처소를 물색하던 중, 거리도  사위성과 적당히 떨어져 있고  번잡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동산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코살라국의 제다태자의 소유였다.

 

제다태자에게 찾아가  무조건 그 동산을 팔라고 하자장사꾼의 안하무인의 작태에  태자는 거절하고 만다.

수닷타는 수차례를 찾아가 애걸하였으나 거절당하자 ‘값은 얼마든지 치를 것이니 저에게 파십시오’ 하고 흥정을 하였다.

 

그러자 태자는 팔지 않을 요량으로  ‘만일 그 동산을 전부 황금으로 깔아 덮어버린다면 팔겠다.’하고 제안하였다. 물론 황금으로 깐다면 그 값어치는 땅값의수천 배가 되겠지만 일단 흥정은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수닷타장자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락하고 자신의전 재산을 황금으로 바꾸어 수레에 가득 싣고 동산 바닥에깔기 시작했다. 그러나 황금은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태자는장자의 정성에 탄복하여 그 동산을 사려고 하는 이유를 묻게되었다.



  < 기원정사 내 >

이곳에 부처님이 머무실 정사를 지으려고 한다는 설명을 듣고는, 이 동산을 기증하겠다고한다. 부처님은 도를 이루시고  3년째 되던 해 사위성에 첫발을 디디신다. 


그 이후 이 곳은부처님의 중요한 활동 근거지가 되었다. 경전 상에 스라바스티를 배경으로 한 일화가 많고 또 많은 경전을 설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께서 45년간의 교화 여정 중에 이곳 사위성에서 24안거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중에 19안거를 수닷타장자가 부처님을 위해서  마련한 기원정사에서 머무르셨는데 주변에는 숲이 우거져있고 밝고 안온하여 수행처로  아주 적합한 장소로 부처님이사랑하셨던 곳이라고 한다.

 
 ♠  앙 굴 리 마 라   탑

기원정사에서 북쪽으로 걷다보면 사위성 성문 유적지를  지나 오른쪽으로는 자이나교사원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앙굴리말라를 기념하는 스투파가 있는데,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을 만나 참회하고 귀의한 곳, 돌에 맞아 죽은 곳, 혹은 여인이 애을 낳던 곳이라고도 한다.


앙굴리말라는 사위성 출신으로  펀잡 가까이 북인도 쪽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혜와 용모가 뛰어나고 수행을 아주 열심히 하는 청년이었다.



어느 날 스승이 집을 비웠을때 스승의 아내는 그에게 넌지시 추파을 던졌으나 거절당하자 그녀는 부끄러운 생각과 분한 마음으로 앙심을 품게 되었고, 

게다가 앙굴리말라가 자신의 부정한 모습을 남편에게 알릴까 두려워 오히려 앙굴리말라가 자신에게 강제로 욕을 보였다고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 앙굴리마라 탑 >

질투심에 화가 난 스승은 파멸시키기 위해 앙굴리말라에게 100명의 사람을 죽이고, 그 100개의 손가락을 잘라 목거리를 만들어 목에 걸면 승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승의 말씀인지라 의심할 여지도 없이 앙굴리말라는 수행의 마지막 단계라는 생각으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였고, 그 소문은 사위성을 삽시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앙굴리’란 손가락을 뜻하며 ‘말라’는 목걸이를 의미한다.

 

이 청년의 이름은 원래 따로 있었으나, 이로 인해 앙굴리말라로 불리게 된 것이다.  99명을 죽이고 난 앙굴리말라는 마지막 한 명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이, 자신의 어머니를 보게 되고, 어머니를 죽이려는 찰나 부처님은 그를 제도하기 위해 앞에 나타나게 된다.

 

그러자 그는 부처님을 향해 그 자리에 서라고 소리치며 달려가 죽이려고 하였으나, 부처님은 평소 걸음으로 가시는데도 불구하고 앙굴리말라는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었다.


앙굴리말라가 제발 걸음을 멈추라고 애원하자 부처님은 ‘앙굴리말라여, 나는 이미 멈춘지가 오래 되었다. 멈추지 않은 것은 바로 너다.’ 라고 하셨다.


‘부처는 번뇌와 고뇌와 경계에 끄달림을 멈춘 지 오래되었으나, 너는 멈추질 못하고있구나.’ 하는 말씀을 듣고 앙굴리말라는 제 정신이 들어 참회하고 출가하여 ‘비폭력주의자’라는  의미의 ‘아힘사’ 비구가 되었다.

 

♠  천 불 화 현 탑

부처님께서 라즈기르에 머물고 계셨을 때, 제자들은 사위성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무엇인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부처님은 ‘지금부터 4개월뒤에 스라바스티 동쪽 암라 숲에서 신통을 보이겠노라’고 선언하신다.  4개월 후 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부처님은 이교도들과 신통력을 견주게 되었는데, 그때  부처님은 망고를 잡수시고 그씨를 땅에 심어 순식간에 싹을틔어 거목으로 자라게 한 후,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셨다. 


그리고 그 망고 열매가 전부 부처님 모습으로 변하게 하는 기적을 보이셨다. 이 때 천분의 부처님이 나타나셨다고하여 천불화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이교도들이 부처님의 위신력과 부사의함을 찬탄하여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며, 결국 자이나교도였던 프라세나짓왕도 부처님의 감화를 받아 불교에 귀의하는 동기가 된다. 그래서 사위성은 천불화현의 모습으로 상징된다.

 

이 탑터는 기원정사와약 1㎞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로 사위성 밖에 위치하고 있다.이 탑은 천불화현의 기적을 알리기 위하여 세운 것인데, 아쇼카왕이 불적지를 기념하며세운 탑중에 가장 큰 것이라고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허물어져 큰 동산을 이루고 있는데 쌓여 있는 벽돌로 미루어 보아 어마어마하게 큰 탑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탑위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곳에서 설한 부처님 법은 아직도 빛나고 있지만, 탑터를 보면 물질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제행무상이라고 하신 말씀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 기원정사 들어가는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