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섬유·이소플라본 풍부
혈액 중 콜레스테롤 낮추고
갱년기 여성 증상완화 효과
단백질 분해효소 저해제 함유
날로 먹으면 소화작용 방해
삶아 먹어야 비린내 적어져
메주콩은 알 둥글고 윤기나야
발효땐 맛 좋아지고 저장성 ↑
장류, 어떤 음식과도 어울려
콩은 우리나라 선사시대 유적지 수십 곳에서 출토됐다. 학자들은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콩의 발상지를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로 본다. 재배 역사가 4000년이 넘는 만큼 변이도 다양해 콩 종류와 이름이 참 많다.
순우리말 ‘콩’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첫소리 글자(初聲) ‘ㅋ’을 사용하는 예시로 나온다. ‘콩’을 예로 들고 ‘大豆(대두)를 의미한다’고 했다. 여기 나오는 대두는 팥을 의미하는 소두(小豆)의 반대 개념이고 메주콩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적인 콩을 말한다.
우리나라 콩은 태(太)라는 한자를 써서 메주콩은 백태, 검은콩은 흑태, 파란색 콩은 청태로 색깔에 따라 불렀다. 검은콩은 속이 노란 것도 있고 속이 파랗고 서리 내릴 때 수확하는 만생종 서리태가 있다.
쥐의 눈을 의미하는 작은 약콩 서목태(鼠目太)도 있다. 검정콩은 껍질에 광택이 나는 것도 있고 흰색 가루가 많이 묻어 있는 것도 있는데 품종에 따라 다르다.
콩은 장류나 두부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나물, 밥밑콩, 풋콩으로도 소비된다. 노란콩(백태)은 두부나 메주콩으로, 검은콩(흑태, 서리태, 서목태)은 떡이나 밥에 넣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소비된다.
크기가 작은 콩나물콩은 싹을 틔워 쓰고, 단맛이 있는 밤콩 종류는 밥에 넣어 먹는 밥밑콩으로, 푸른 상태로 수확하는 풋콩은 채소로 이용했다. 콩잎을 따서 이용하기 좋게 만든 콩 품종도 있다.
모양과 색상, 무늬 등에서 비롯된 콩 이름도 많다. 아주까리밤콩, 홀아비밤콩, 선비잡이콩, 푸른독새기콩 등이 그런 것들이다. 홀아비밤콩은 노란콩인데 밥밑콩으로 좋다. 배꼽이 검고 크며 겉껍질이 조금씩 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비잡이콩은 두 뺨에 커다란 검은 점이 있는데 갓을 쓰거나 먹물을 묻힌 것 같아 민간에서 선비콩, 정승콩으로도 불렀다. 너무 맛있어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붙잡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삶아서 바로 먹어보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달고 맛있다. 장을 만들 때 쓰이는 푸른독새기콩은 제주의 토종 콩인데 다른 메주콩과 달리 푸른색이다.
콩은 건강한 식재료다. 에너지원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영양가도 뛰어나다. 단백질 함량이 매우 높다.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콩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단백질은 근육, 피부, 머리카락 등 신체조직을 구성하고 혈액과 호르몬, 효소의 주요 구성성분이다.
우리 몸의 생리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데 여러 가지 성분을 운반·저장한다. 성장기에 단백질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성장이 느려지고 뇌 기능이 감퇴한다.
콩에 들어 있는 이소플라본과 식이섬유는 혈액 속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특히 이소플라본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구조와 효능을 가지고 있어 여성호르몬 농도가 낮아지는 갱년기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 밖에도 콩의 여러 가지 기능성이 확인되면서 콩은 동양인의 일상식품에서 세계인이 찾는 건강식품으로 바뀌었다.
콩을 날로 먹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조직이 단단할 뿐만 아니라 콩에 있는 단백질 분해효소 저해제가 인체의 소화효소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콩을 삶거나 끓이면 조직도 연해지고 단백질 분해효소 저해제가 열에 의해 쉽게 파괴돼 소화율도 높아진다.
콩에 있는 리폭시게나아제라는 효소는 불포화지방산에 산소를 결합시켜 비린내를 유발한다. 이 효소가 만들어지지 않게 개발된 콩도 있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장을 담그는 솜씨가 좋았다. 집집마다 매년 장을 담그며 발효과정을 우리만의 문화 콘텐츠로 만들고 대를 이어 왔다. 올해 문화재청은 ‘장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장 담그기 행사가 여러 곳에서 다시 이어질 것 같다. 장 담그기는 맛에 대해 경험을 하게 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전해야 할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김장을 마치면 장을 담그기 위해 메주를 만들었다. 메주용 콩은 알이 둥글고 색상도 균일하며 윤기가 나는 것이 좋다. 노란색이나 황백색 콩을 고른다.
집에서 콩을 골라낼 때 쟁반에 굴려보는데, 좋은 콩은 잘 굴러 내려가지만 잘 자라지 못해 모양이 고르지 않은 콩은 중간에 멈춰 버린다. 벌레 먹은 콩, 깨진 콩도 가려낼 수 있다. 여물지 않은 콩은 납작해 잘 구르지 않는다.
콩은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같은 장류를 만드는 데 많이 쓰였다. 콩을 발효하면 맛이 좋아지고 독특한 색깔과 향이 난다. 저장성도 향상된다.
조직도 부드러워지고 소화되기 쉬운 상태로 바뀐다. 미생물에 의해 콩에 없던 영양성분도 생긴다. 생리활성 물질이 생성돼 몸에 좋은 효과를 낸다.
장류는 조미료였으며 저장식품이었다.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오래된 친구처럼 잘 변하지 않는다. 다른 것과 섞여도 제맛을 잃지 않는다.
기름진 냄새를 잡아주고 매운맛을 부드럽게 바꾼다. 어렸을 때는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 발효 음식을 찾게 된다. 오래 끓여 더 살아나는 맛, 지친 몸을 달래주고 속을 편안하게 만드는 음식이다.
콩은 정직한 식재료다. 흙에서는 땅을 혹사하지 않고 이롭게 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처럼 정성 들인 만큼 맛있다. 이른 새벽부터 꼬박 정성을 다해야 맛있는 순두부가 나온다.
장 담그고 삼칠일 안에는 낯선 사람의 방문을 꺼릴 정도로 조심했는데, 사람이 오염원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경험을 통해 미리 알고 주의했던 지혜가 담겨 있다.
장 담근 집에는 복이 온다는 말처럼 정성을 다한 장 담그기는 한 집안의 건강을 지키고 기쁨을 주었다. 흙을 빚어 만든 크고 작은 항아리가 놓인 장독대는 보기만 해도 푸근하다.
쌀과 함께 콩은 한국인의 뿌리가 돼온 주식이었다. 콩에는 곡류에 적은 아미노산 라이신이 비교적 많으나 메티오닌 함량은 적다. 곡류는 콩에 부족한 메티오닌을 보충해 줄 수 있다. 곡류와 콩 가공식품을 함께 먹는 방법은 영양소를 보완해 높이는 좋은 식생활이었다.
뚝배기에 오랫동안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 신김치와 두부를 넣어 끓인 청국장찌개, 뜨거울 때 양념장만 넣어 먹는 담백한 흰 순두부, 돼지고기를 넣은 콩비지찌개, 쌀뜨물이나 멸치육수에 된장을 풀어 철 따라 흔한 재료를 넣은 된장국이 좋다.
생각만 해도 맛있고 좋은 음식이다. 겨울에는 시래기, 봄에는 냉이, 여름에는 근대, 가을에는 아욱을 넣어 끓인다.
신구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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