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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라다크: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를 찾아가는 길

정혜거사 2018. 6. 15. 13:28


인도 라다크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를 찾아가는 길


영하 20도를 넘는 겨울이 8개월 이상 계속되는 척박한 환경에서 최소한의 것으로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온 땅. 서구 문명의 질주를 막기 위해 애쓰는 강인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인류의 ‘오래된 미래’를 찾아가는 길.

아름다운 것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

인도 대륙의 북동부, 히말라야 산맥을 타고 앉은 잠무카슈미르 주의 라다크(Ladakh)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아름다운 것을 만나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라다크를 만나기 위해서도 인내의 시간이 요구된다.


일 년에 여름 석 달간 열릴 뿐인 라다크로 가는 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인 따글랑 라(Taglang La 5,325m)를 통과한다. 델리에서 출발해 히마찰 프라데쉬 주의 마날리까지 12시간, 마날리에서 라다크의 주도 레(Leh)까지 다시 24시간이 걸린다.


별빛이 초롱초롱한 밤의 장막을 가로지르고, 히말라야의 설산들을 스치며 사막과 같은 황량한 땅으로 들어서는 동안 바랄라차 라(Baralacha La 4,892m), 룽가라차 라(Lungalacha La 5,059m), 따그랑 라(Taglang La 5,325m)의 고개들을 연달아 넘는다. 그 사이 선물처럼 따라붙는 고산병으로 인한 두통까지 견뎌야한다.


남걀 곰파에서 바라보는 벌거벗은 산에 둘러싸인 레의 전경

문명의 손길을 타지않은 작은 티베트

‘고갯길의 땅’이란 뜻의 그 이름처럼 라다크는 지리적 폐쇄성으로 인해 오랫동안 문명의 손길을 타지 않았다. 덕분에 자급자족을 통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지켜올 수 있었다.


티베트 불교를 믿으며 티베트 방언을 쓰는 ‘라다키’들의 삶 속에는 티베트의 문화와 풍속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1974년, 외부인에게 처음 개방된 이후 라다크는 종종 “작은 티베트”로 불리며 세계인을 매혹시켜 왔다.



라다크의 풍경은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막을 닮았다. 벌거벗은 산과 황량한 땅은 투명하고 강렬한 햇살 아래 부끄러움도 없이 빛나고 있다.


공룡의 등뼈 같은 헐벗은 산들과 눈 쌓인 봉우리들, 그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강. 사막을 닮은 황량함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미루나무들이 우뚝 선 마을이 나타나는 라다크의 풍경은 몹시 비현실적이다.


하늘의 색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새파랗고, 태양은 머리를 태울 듯 뜨겁게 내리쬐는데, 공기는 깜짝 놀랄 만큼 차가워 발가락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차가운 사막’인 이곳에 밤이 오면 별들은 쏟아져 내릴 듯 가까이 빛나고, 막막하리만치 삭막한 풍경 사이 도드라지는 초록의 나무들은 곰파(라마교의 절)의 흰색과 놀라운 대비를 만들어낸다.


이토록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오기 위해서는 종교의 힘이 간절했으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라다크를 둘러보는 일은 주변의 곰파(Gompa)를 찾아나서는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라다크의 중심 도시인 해발고도 3,505m의 레(Leh)에서부터.

매만지고 다듬고 가꾸어 온 초록빛

라다크의 모든 곳이 그렇듯 레에서도 곰파는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1830년대까지 라다크 왕국의 왕족이 거주하던 9층 건물 레 궁전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면 남걀 체모 곰파로 가는 길이다.


수백 년을 견뎌온 탱화와 불상을 둘러보고 절 뒤의 무너진 성벽으로 향하자. 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절에서 내려다보는 레의 모습은 돌처럼 단단한 심장도 흔들 만큼 초현실적인 풍경이다. 공허할 정도로 텅 빈 산들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초록의 섬으로 떠 있다.


긴 세월을 건너오는 동안 사람이 매만지고 다듬고 가꾸어 온 초록빛이다. ‘사람의 손이 닿아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경이롭다. 남걀 곰파에서 내려와 메인 바자 로드를 지나 북서쪽의 창스파 방면으로 향한다.


식당과 게스트 하우스들로 이제는 붐비는 거리가 되어버린 창스파를 지나면 샨티 스투파. 일본인들에 의해 평화를 갈망하며 세워진 불탑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체력을 시험하는 동안 해가 설핏해지기 시작한다면 휘파람을 불어도 좋다. 잠시 후 불탑을 등지고 앉아 바라볼 저녁노을은 하루의 노고를 기꺼이 보상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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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을 나누는 라마유르 곰파의 스님들

일 년에 석 달 열리는 라닥으로 가는 육로

바위산 꼭대기에 앉아 해지는 라다크를 바라보자

다음날은 알치(Alchi) 마을로 가자.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타고 가다 마음 내키는 곳에 내려서 걷자. 날 빛은 좋고, 길 위의 풍경은 평화롭다. 흰 구름이 떠가는 푸른 하늘과 흙산과 바위 언덕 그리고 하얀 쵸르텐과 바람에 나부끼는 탈쵸들.


11세기에 세워진 알치의 곰파는 라다크 주변에서 평지에 세워진 유일한 절이기에 더 사랑스럽다. 정오의 뜨거운 햇살에 달아오른 절은 고요하다. 법당마다 들어가 삼배하고, 시주하고 절마당을 기웃거리다가 처마 밑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쉰다.


어린잎들이 드리우는 순한 그늘 밑에서 한바탕 곤한 잠이라도 들고 싶은 오후. 알치 마을을 빠져나와 사스폴까지 내쳐 걷는다.


앞모습은 검소하나 뒷모습은 화려한 라닥 여성들의 전통 복장



마을의 계곡에서 탁족을 하며 쉬다 보면 동네 꼬마 녀석들이 몰려든다. 지독한 발냄새에 포위당한 나른하고 평화로운 여름날 오후. 다시 걷다가 지칠 무렵 양계장 차라도 얻어 타고 스피툭(Spituk) 곰파로 이동.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 바위산 꼭대기에 앉아 해지는 라다크를 바라보자. 이곳에서 레까지는 8킬로미터. 도로를 따라 두 시간 남짓 걸으면 된다.



이삼일 레에 머무르며 고도 적응도 하고, 충분히 걸었다면 레 주변의 곰파들을 만나기 위해 나설 차례다. 첫 절은 라다크에서 가장 오래된 절 라마유르. 범죄자들도 보호를 받을 수 있어 '자유의 장소'로 불려온 절과 마을의 풍경이 어여쁘다.


작은 우체국을 지나 무너진 흙담 사이를 걷다 보면 건초 마르는 냄새 사이로 내려앉는 한낮이 정적이 고즈넉하다. 햇살이 달군 담벼락 너머로는 "찡.니. 뚱에닷! (하나, 둘 셋)" 외치며 사진 찍는 동자승들. 절간의 예불 분위기는 감독이 소홀한 야간 자율학습 시간 같다.


다음은 테미스감(Temisgam) 곰파. 역시나 절은 산꼭대기에 있다. 지름길인 가파른 자갈길의 유혹에 진다면 기진맥진 넋이 나간 상태로 절간에 들어설 수도 있다. 천천히 돌아가는 길을 택하자. 스님이 푸자(예불)를 하기 위해 출타한 경우라면 절 내부를 못 볼 수도 있지만, 못 본들 또 어떠리.


세 번째는 리종(Rizong). 역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하얀 절이다. 마을은 없고 절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파란 하늘에 하얀 회벽과 붉은 창틀이 눈부시다.


그 다음은 리키르(Likir). 멀리서 바라보는 절의 풍경은 설산을 뒤로한 절경이다. 올라가서 들여다보는 절간의 얼굴도 단정하다. 해지는 모습을 보고 절 마당을 나서면 또 하루가 간다.

지친 영혼들마저 넉넉히 품어주는 땅

일 년에 겨울이 8개월 이상인 땅에서 버터와 소금을 섞은 보릿가루를 주식으로 살아가는 곳. 주름진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 “줄레”라고 인사하는 소박하고 강인한 사람들. 광풍처럼 들이닥친 서구 문명의 파도 속에서 천 년을 건너온 전통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


그들은 사라져가는 ‘오래된 미래’를 만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지친 영혼들마저 넉넉히 품어준다. 간소한 삶을 이어가는 영적인 이들 곁에서 자신과 마주 서고, 자연과 마주 서고, 마침내 신과 마주 서게 되는 땅. 그곳은 라다크이다.



라닥의 사찰 중 하나인 리끼르 곰파

 


코스 소개

   
히말라야의 그늘에 내려앉은 티베트 문화권 라다크는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빼어난 저작 [오래된 미래, Ancient Futures : Learning form Ladakh]로 유명해졌다.


파키스탄과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외부 접근이 어려운 환경 덕분에 자급자족의 공동체 문화를 오랫동안 유지해 올 수 있었다. 1974년 개방 이후 빠르게 서구화되고 있으나 공동체 문화를 지키려는 운동 또한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라다크의 면적은 98,000㎢로 한반도 남녘땅의 크기에 인구는 겨우 15만. 인도에 편입되기 전까지 티베트에 속했던 곳으로 10세기 무렵 티베트에서 분리된 후 라다크 왕국의 수도로 번성한 곳이 레다.


레는 마을과 곰파 전부를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주변의 곰파들은 차를 빌리거나 버스와 히치하이킹을 섞어야 한다. 대부분의 절이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어 걷기는 필수다.



찾아가는 길

   
델리에서 레까지는 인도항공이 비행기를 운행하고 있다. 1시간 20분 소요. 육로로는 델리에서 출발해 마날리를 경유, 레로 가는 코스를 주로 이용한다.


이 육로는 6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남짓 열린다. 스리나가르를 경유하는 길도 있지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폐쇄되기도 하므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여행하기 좋은 때 

  
라다크를 여행하기 좋은 때는 6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의 여름이다. 날씨도 온화하고, 육로가 열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대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자들로 라다크 전체가 붐비는 시기이기도 하다. 9월 중순을 넘어서면 육로가 닫히고, 대부분의 식당과 숙소들도 문을 닫는다.



여행 Tip 

  
라다크는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많고 고도가 높기 때문에 일정을 넉넉하게 짜야한다. 1년에 300일 태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100미리 정도. 6월부터 9월까지의 여름 기온이 -3도에서 30도 사이를 오가는 극단적인 기후로 유명하다.


‘그늘에서는 동상에 걸리고 햇볕에서는 화상을 입는’ 날씨이므로 여름이라 해도 따뜻한 옷과 선크림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라다크는 공동체 문화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모색되고 있다. 라다크를 여행하는 동안 가급적 원주민인 라다키들이 운영하는 숙소와 상점, 식당을 이용하자. ‘여성협회’에 들러 BBC에서 제작한 다큐 [오래된 미래]를 보며 좋은 여행자가 되기 위한 토론의 시간을 가져보자.


플라스틱 병에 든 생수 대신 물통을 지니고 다니며 정수된 물을 사먹는 것도 작은 실천이다. [오래된 미래]를 읽는 것은 여행 준비의 필수.



라다크 주변으로는 야영 장비를 준비하고 가이드를 고용해야 하는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도 많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라다크의 자연과 문화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장거리 트레킹에 참여해보자. 원숭이해(2016년)마다 열리는 헤미스 곰파의 축제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