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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정혜거사 2018. 6. 7. 14:16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

요약 『오래된 미래』는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관점에서 인도 북부에 위치한 라다크 전통의 소개와 그 파괴의 과정, 다시 회복하기 위한 가능성과 방법 등을 차례로 다룬다.
그럼으로써 인류 모두에게도 가능하고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미래가 분명히 있으며, 그것은 전지구가 생태적 다양성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그의 모색의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헬레나 노르베리-호지 (Helena Norberg Hodge, 1946년 ~)
발표1996년
장르산문

작품해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 Hodge)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원래 런던대학교의 언어학 전공 학생이었던 헬레나는 1970년대 중반에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라다크를 방문했다. 그는 라다크의 현지 조사 과정에서 라다크 특유의 온화한 가족공동체와 유대 관계가 그들의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게 된다.

헬레나가 처음 접한 라다크는 사실상 황량한 황무지에 가까웠다. 문화적으로 티베트에 속하는 라다크는 흔히 ‘작은 티베트’라고도 불린다. 대승불교가 주된 종교이고 달라이 라마가 정신적 지도자이다.


라다크를 크게 지배하는 것은 계절인데, 여름에는 너무 뜨겁고 겨울에는 온도가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며 비는 드물다. 이처럼 황량한 지역에서 놀라운 점은, 그 안에서 사람들이 땅과 유대 관계를 맺고, 물길을 섬세하게 관리하며, 각자 혹은 서로 협력하고 공생하며 아주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가족공동체가 있다. 그들은 경작할 수 있는 만큼만 땅을 소유한다. 가족공동체를 중심으로 서로 친밀한 여러 작은 공동체들은 거의 완전하게 자급자족을 이루며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간다. 안정된 공동체는 개인에게 유대감과 안정감을 제공한다.


이런 공동체는 성숙하고 균형 잡힌 개인들을 만들어내고, 그들은 산업사회의 우리보다 훨씬 편안하고 대범하다. 이러한 라다크에서 저자는 미래에 지향해야 할 아주 건강한 삶의 방식을 본다. 우리를 서로 연결시켜주는 힘들이 모여 건강한 사회를 형성할 수 있으며, 그런 사회는 우리 자신과 지구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저자는 라다크를 통해 서구 산업 문화가 가져온 폐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무분별한 개발을 통한 획일적이고 단일한 문화의 확산이었다. 한 문화는 파괴될 때마다 여러 세기 동안 누적되어 온 지식도 말살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경쟁에 몰입하며 탐욕스럽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러한 산업화와 개발의 과정에서 자기중심적인 성향들을 인간의 본성이라 여기게 되는데, 저자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임을 알게 된다.


무분별한 개발이 우리에게 어떻게 들어왔는가를 무시하고, 모든 문제를 우리 개인의 문제나 선천적 결함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저자는 라다크의 예를 통해 다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저자가 바라본 라다크 사회는 낭비도 오염도 없으며, 건강하고 튼튼하며, 서로에게 유순하다. 그들은 자급자족을 하기 때문에 땅과 분리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회가 현대화의 압력 아래서 붕괴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각자 자기에게서 분리되는 과정을 저자는 지켜본다.


그리고 문화가 개인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저자는 라다크의 공동체 사회를 조명함으로써, 현대인들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지속가능한 미래의 대안이 실은 오래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기를 희망한다.

작품 줄거리

<제1부. 전통>에서는 라다크의 오래된 공동체와 자급자족, 함께 살아가는 문화, 여성의 높은 지위, 그들의 전통 종교인 불교, 그리고 안정적인 정서 등을 다룬다. ‘작은 티베트’라고 하는 라다크는 황량한 지리적 조건 속에서도 환경에 순응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는 표시가 있다.


그들은 늘 땅과 가까우며 모든 일에는 노래를 곁들인다. 제한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쓰는 ‘검약’의 문화는 인색함과는 거리가 멀며, 모든 자원은 빈약하지만 그들은 모든 것을 아껴 쓰고 재순환하도록 한다. 그래서 빈약한 자원만으로 자연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예를 보여준다.

삶의 속도가 느리고 편안하므로 스트레스라는 말이 거의 없을 정도이며, 전통적인 그들의 식사는 섬유소가 부족하고 불균형한 편이지만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점으로 보아 심리 상태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사치품을 사는 용도 이외에 돈을 거의 쓸 필요가 없으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관용과 배려이다. 그들의 공동체는 소규모이고 서로 관계가 긴밀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화에서 부패나 속임수, 권력 남용 등은 거의 드문 일이다.

모든 법은 유연하고 정의는 인간적인 모습이며, 가진 것의 분배가 비슷하므로 그들은 경쟁보다 서로 도움으로써 공동체 삶을 꾸려간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공동체가 함께 양육하고 여성은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노고를 충분히 인정받는 문화이다.


공동체 속에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그들은 각자라는 느낌보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늘 편안하고 충격을 덜 받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라다크의 전통문화가 파괴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제2부. 변화>에서는 1962년부터 파키스탄과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 지역에 인도 군대가 주둔하게 되면서 라다크가 겪은 변화를 소개한다.


인도 정부가 1974년부터 이 지역을 관광객에게 본격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하자, 라다크는 점차 서구 문명을 접하고 서구식 개발을 경험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물질문화가 라다크 사람들의 마음에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지켜본다.

현대 사회의 접촉의 결과로 라다크가 경험한 첫 번째 커다란 변화는 인구의 빠른 증가였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작은 공동체는 점점 무너지고, 작은 공동체 문화에서만 가능했던 직접 대면 관계와 친밀감도 약해졌다.


라다크 사람들은 영상을 통해 서구의 이미지를 보면서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된다. 그들은 영상을 통해 현대의 과장된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갑자기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급자족 문화에서는 극히 일부 사치품 소비 이외에 필요가 없었던 ‘돈’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돈은 라다크 사람들이 전에는 몰랐던 ‘탐욕’을 창조한다.


사람들은 점차 돈을 벌 수 있는 도시로 떠나가고 점차 공동체의 유대 관계는 약해진다. 계속 농부로 남는 일도 어려워졌고, 빈부격차도 점점 커지게 된다. 또한 중앙이나 도시로 진출하기 위한 서구식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전통적인 경제에서는 시간이 넉넉했고 생활은 인간적인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시간을 절약하는 기술’을 갖게 됨에 따라 삶의 속도는 오히려 급해지게 된다. 특히 라다크 아이들은 서로가 아닌 각자를 위해 공부를 하게 되었다.


서구식 교육은 경쟁을 유도하고 경쟁은 더 큰 경쟁을 초래한다. 한편 경쟁에서 소외된 아이들은 그동안은 몰랐던 소외감과 결핍을 경험하고 분노와 원한이 생기게 되면서, 그 결과 ‘배려’를 강조하던 라다크 문화에서는 없었던 많은 폭력이 생겨나게 된다.

이처럼 서구식 개발의 힘은 라다크인들의 뿌리 깊은 만족감과 편안한 태도를 너무 많이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라다크인으로서 서구식 교육을 받고 서구 문화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된 지식인들이나 저자와 같은 서구의 환경운동가들에서부터 점차 반성이 시작되었고, 라다크를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생겨났다.

<제3부.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그 활발한 움직임들의 출발점과 그들이 모색하는 대안 등을 설명한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서구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소위 ‘개발 속임수’임을 라다크인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성을 깨닫는다.


즉, 그들의 새로운 움직임의 출발점을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일로 설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반()개발’운동가들은 산업 문화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라다크인들에게 제공하는 운동을 벌인다.


예를 들어 산업 생산품의 잠재적 위험에 대해 서구인들은 알지만 제3세계에서는 그러한 정보가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므로 이를 개선하려는 것이다.

다음 과제로 세계 도처에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지역공동체 운동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지역공동체 운동은 건강한 가족공동체의 유대 관계를 복원하는 일이 건강한 미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린다.


또한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해 농업적 자립 또한 중요함을 알리고 농업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혜택은 농민에게 돌아가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그동안 무분별한 개발이 초래한 폐해를 살피고 미래에도 꾸준히 지속될 수 있는 균형-농촌과 도시, 남성과 여성, 문화와 자연-을 향해 방향을 돌리고자 하는 데 목표를 둔다.

저자는 라다크 사람들에게 아직 개발의 함정을 피할 많은 기회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대다수의 인구가 아직은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공동체 문화에서 온 친밀한 유대 관계와 뿌리 깊은 만족감이 있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을 어느 정도의 어려운 처지에서 버티고 다시 균형을 회복하게 하는 저력이 되어준다. 저자는 라다크를 통해 문화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들의 잠재력은 우리 모두에게 계속 지속될 수 있고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어떤 토대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넓혀준다 보는 것이다.

작품 속의 명문장

시간은 느슨하게 측정된다. 분을 셀 필요는 절대로 없다. 그들은 “내일 한낮에 만나러 올게, 저녁 전에”라는 식으로 몇 시간이나 여유를 두고 말한다. 라다크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나타내는 많은 아름다운 말들이 있다.


“어두워진 다음 잘 때까지”라는 뜻의 ‘공그로트’, “해가 산꼭대기에”라는 뜻의 ‘니체’, 해뜨기 전 새들이 노래하는 아침 시간을 나타내는 ‘치페-치리트(새노래)’등 모두 너그러운 말들이다.

여러 시간 일을 해야 하는 추수철에도 일이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여든 살의 노인도 어린아이도 함께 일할 수 있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들의 속도로 웃음과 노래를 곁들이며 한다. 일과 놀이는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제1부. 전통> 중 ‘2장. 땅과 함께 살기’ 중)


 

라다크인들의 삶의 속도는 매우 인간적이다. 그들은 속도를 자신의 인간적인 리듬, 자신이 이해하는 범주에 맞춘다. 어떠한 객관적인 기준보다 자신의 속도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규모의 공동체 단위로 생활하므로 ‘시간은 늘 넉넉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은 늘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살며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대목일 것이다.

또한 그들의 언어는 그들이 얼마나 자연과 가까운가를 보여준다. 이 역시 자연과 늘 막연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근원의 향수를 자극한다.


‘일에는 늘 노래를 곁들이며 일과 놀이는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다소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만족감은 무엇보다도 과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절실한 대목이다.

저자는 더 이상의 개발과 경쟁을 지양하고 더불어 사는 삶과 공동체를 복원함으로써, 이러한 만족감을 되찾고 현대인들이 자기를 치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북유럽문학, 2013. 11., 인문과교양)


오래된 미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출판 중앙북스

발매 2015.07.01.

상세보기


    고등학교 입학 전 즈음해서 나는 논술학원을 다녔다. 그 때 뭔가 가치관의 방향이 살짝 굳어버린 감이 있다. 맨날 입에 달고 사는 '우매한 대중'같은 발언 말이다. 물론 그 수업의 내용이 그런 건 아니지만, 학습하지 않고 무작정 파도타기 바쁜 대중들을 우습게 여겼다. 페북, 인스타, 트위터 등등으로 선동질 참 쉬운 일들 말이다. 나는 소위 '고위계층'이 밟는다는 학습 코스를 따라보고 싶었고, 그런 책들은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정답은 '그딴 거 별거없음'이다. 자기가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할 수 있고 그것이 세상에 선함을 가져올 수 있는 방향이 짱이다. 아무튼 근거없는 엘리트부심을 부리고 싶다가 얻어낸 추천도서들 중 하나였다. 이 <오래된 미래>라는 책 말이다. (마키아밸리의 <군주론>도 추천도서였음)


    이 책을 읽으려면 도서관에서 빌리기만해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 나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뭔놈의 읽을 글들이 그렇게나 많은건지. 학교에서는 전공하느라고 바쁘지, 경시대회같은걸 나가도 읽어야할 기사들도 많지, 분석할 통계자료와 보고서들도 많지, 그렇다고 다 읽는 것도 아니면서, 전공서는 또 왜케 두껍냐. 물론 그 모든 자료들이 무의미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알았어야 할 분야라고 생각한다.
    암튼, 그런 연고로(핑계로) 계속 읽기를 미워왔다. 가뜩이나 당시 편입을 같이 준비하던 친구가, 이 책을 빌려준다고 했다. 그 친구는 다른 학교로 편입학했고, 나는 공익근무를 했다. 그렇게 멀어진 친구를 뒤로한 채 계속 읽을 생각도 안 했다. 왜? 난 책 싫어하니까.


    그러다가 부산에서 공부하다가 돌아온 중학교 친구. 이 친구는 취업준비에 선택과 집중을 잘 해서인지 앞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나 같이 이거저거 건들다가는 취업이 안 되나부다. 아무튼 이 친구가 내가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친구인데, 이 책을 언급했다. 알라딘에서 이 책 샀다. 이거랑 코믹북을 주로 구입한다. 라며 <오래된 미래>이거 빌려주랴 물어봤다. 나는 어 그거 빌려달라, 읽으려던지 한참되어도 안 읽고 있었다. 뭔 내용인지도 모른채 살다가 '라다크'라는 지역을 처음 봤다. 대체 여기가 어디야? 서문을 읽는 내내 어딘지가 안 나와서 답답했다.




    지도를 보면 딱 알 수 있듯이, 위치가 참 마이너틱하다. 인도 노노, 티베트 노노, 파키스탄 노노, 중국 노노, 딱 그 접경 지역이다. 보통 접경지이거나 분기점같은 곳이면 여기저기 영향을 다 받을 것만 같은데. 아니다. 스위스도 그러고 여기도 그렇고 되게 독립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아니지, 읽다보면 그 느낌은 또 아니다. 스위스가 독립적인 느낌이라면, 이 곳 라다크는 때묻지 않는 느낌이랄까.
    이 '라다크'라는 곳은 '리틀 티베트'라는 별칭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언어체계는 또 완전히 다른 곳. 땅도 척박하다. 작물 생육 가능기간이 연중 4개월 뿐. 고산지대인거 같다. 척박함의 상징인 건지 보리작물이 여기 사람들의 주식이다. 계절도 극기훈련이라고 한다. 여름에 찌는 더위와 8개월간의 영하 40도. 절대로 나의 기타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겠군. 우리나라보다 악기에 더 치명적인 국가가 있다니. 우리나라도 악기를 참 괴롭히는 사계절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야.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어떻게 그토록 까다로운 환경 속에서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검약'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서구에서 이 '검약'이라는 말은 대게 자물쇠가 채워진 음식창고를 지키는 나이든 아주머니를 연상시키지만, 이곳 라다크에서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풍요의 기본이 된다. 한정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아껴 쓴다는 것은 인색함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아주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 바로 그것이 '검약'의 본래 의미라 할 수 있다.

    1부가 '전통에 관하여'라는 큰제목으로 해놓은 부분이다. 그곳에 나오는 내용은 척박해도 살기좋은 곳 라다크를 찬양하는 것이다. 되게 바람직해 보이는 사회로 묘사되어있다. 건강한 사회랄까. 내 친구가 자연인이 되고픈 애가 있는데, 걔가 딱 좋아할 그런거.
    그 부분에서 나오는 이 '검약'의 부분을 다시 되새긴다. 원래 미국스타일로 막 소비하면서 즐기고 싶었다만. 막 기타 망가지도록 쓰고서 또 사고 말이다. 이 라다크에서는 술찌끼를 뽑아낸 작물을 가지고도 또 사용한다. 버릴 게 없다. 마치 우리나라가 소 한 마리를 먹으면 남김없이 먹어버리는 느낌. 아마 열악한 선교지에서는 선교사님들이 대개 이렇지 않을까? 이런 삶을 살지 않을까? 선교비와 기도 후원에 감사하다는 그런 말들을 소중히 보내는 그런거 생각하니까 맘이 좀 텁텁해지는군.
    나도 검약을 좀 작은걸 실천해봐야겠다. 다만, 남에게 인색해지는 것은 경계할란다.









나만 잘 살면 안 되는거야. 신세도 서로 질 때도 있는거야. 이 도덕적 결벽증 환자야.
(어 나한테 하는 말이야)




5장에는 여성지위의 '확고함'이 나온다. 굳이 어느 성별이 우세함이 중요한 게 아닌 사회. 내가 페미니즘이 불편한 이유는, '공정'이 아닌, '여성우위'에 더 집중하는 뉘앙스 때문이다. 그런 페미니즘 주창자들은 나같은 사람을 두고, 정작 남성사회에서 찌질하니까 여자들한테 쿠사리멕이는 짓을 한다고 하더군. 글쎄... 당신들이 노인, 장애인, 히메가리없는 멸치같은남자들의 권리도 살펴준다면 안 그랬음. 당신들마저 '약자'를 천대할줄을 몰랐어. 그래서 당신들 주장이 별로야.





6장 불교에서는 뭐 종교적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저자가 서양인이래놓고 기독교문화 잘 아는거처럼 말해놨다만. 기독교에 대해 틀린 생각을 말해놔버렸다. 맘에 안 들어서 패스함니다.




7장에서 삶의 기쁨을 이야기 한다. 아직 1부가 안 끝났거든. 1부는 참 살기 좋은 라다크를 말하고 있다.

나는 라다크 사람들같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안정감있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근데 2부에서부터 라다크 사회에, 서구문명이 침공한다.





2부. 변화에 관하여

    8장에서 제목이 '서양인의 발길'이다. 여기서부터 기분이 찝찝해진다. 뭔가 흰 빨래에 아메리카노 튀겨가는 느낌? 공적부문, 의료,교육 부문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관광산업이 물질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광범위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라다크 사람들의 정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 빌려준 친구가 아주 질색할 내용이다.







    좀 아이러니한 속담이다. 어이없기도 하다. 근데 왠지모르게 공감의 감정이 생긴다. 그래서 해봤다. 내가 아는거를 가지고 도움요청을 했다. 근데 되게 보기 싫은 꼬락서니를 볼 때도 있었다. 다 틀리는 말을 하면서 뽐내는 게 아닌가. 아이고두야. 잘난척을 잔뜩하는 것을 가식적인 웃음으로 잘 가렸었다. 이 또한 사람파악에 좋은 지평을 열어줬네. 책은 선한방향이든 악한방향이든 실천해봐야겠다. 경험이 결국 내 삶을 만드는거잖나.





3부. 미래를 향하여

    개발이 꼭 파괴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 나도. 근데 나는 프로 선입견자들이 싫다. 그것도 되게 비이성적이고 정서상으로만 선동질당하는 부류들. 개발이 꼭 나쁜 건 아니야. 자연만이 꼭 답은 아니야. 니도 문명인이야. 이 블로그를 읽는다는건 이미 컴퓨터를 하는거잖아.








    그런 선입견을 여기서도 또 발견하지? 열악한 노동자들을 위해 하는 불매운동. 뭐 나이키나 뭐 여타 등등의 회사들 있잖나. 그거 하면 노동자들에게 복이 올까? 되려 저주를 하게 된다. 헬조선에서 불매운동이 성공했다고 치자. 노동자들은 실직하고, 그 돈이 없어서 괴로워진다. 당신들이 괴롭히는 것은 기업인이 아닌 노동자다. 그럼 어떡하냐. 기업의 만행을 냅둬야 하냐? 나도 잘 몰라. 근데 당신들의 정서만 가지고 세상을 타개하는 척 하지 좀 마라. 실상은 타개가 아닌 파괴를 하고 있는거야. 우매한 대중넘들아.






    연극의 내용 중에 재미있는 부분이다. 미국의 상류층들이 돈을 처들이는 부문을 보라. 결국 라다크인들이 향유하던거다. 100퍼 천연 섬유 옷, 100퍼 천연 자원, 100퍼 천연 유제품, 그걸 가지고 100퍼 천연제품에 고가의 프리미엄을 붙이잖는가. 문명이 결국 바보짓을 하도록 만들긴 했지. 다만, 지금 누리는 것들이 편리하기는 하지. 그 어느 정도를 해야하는가도 참 애매하고 복잡계의 영역이다. 변수가 넘 많아.









    어쨌든 이렇게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릴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보며.
    이 라다크인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저 사람들의 정서 속에 녹아들고 싶었다. 왠지 편안할 듯 했다. 그렇다고 완전 진리야!이건 아니지만. 그리스도가 없는 게 진짜 평화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머리싸매고 끙끙앓는 현대인들이 주변에 참 많잖아.

    그런 감상을 다음 사진에서도 보여준다.


    저렇게 '미래를 향하여'라는 부분에서 쓴 개발중인 라다크는 지금 어떤지 검색 안 해봤다. 귀찮잖아. 다만 저 개발중인 모습이 "무공해 적정기술"을 지향한다는 걸 봤다. 이 때 떠오른 것은 '로우 테크놀로지'라는 단어였다. '하이테크놀로지'는 고집적기술이 필요한 것들이다. 반도체같은 것들 말이다. 로우 테크놀로지의 대표작은 '라이프 스트로우'. 휴대용 즉석 정수기이다. 아프리카 국가들 중 후진국들에서 애들 흙탕물 멕이지 말라고 만든거다. 이거 삼성 사옥 강연에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강연 좀 별로 쓸모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기억에 남아있구만.

비록 몸이 좀 고되어도 여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이 사회를 한번 읽어보는것도,
썩어가는 현대인들 감각에 약간 상쾌함을 적셔줄 것 같다.
근데 책 읽기 싫으면 읽지 말든가.
ㅋㅋㅋㅋㅋ

나도 읽기는 귀찮다.

메탈이 짱이다

l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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