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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 는 못 막아도 '노쇠' 는 막을 수 있다

정혜거사 2017. 2. 25. 09:07


노화, 시간이 흐르면서 생물학적 기능 쇠퇴
노쇠, 영양·운동 부족으로 쇠약해지는 현상
6개월간 5kg이상 줄거나 걷기 힘들면 '의심'

[ 임락근 기자 ]


일본 도쿄에 사는 A씨(75)는 요즘 음료수가 담긴 페트병 뚜껑을 열지 못해 손자에게 부탁하는 일이 많아졌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져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는 것만 같고 횡단보도는 길게만 느껴진다. 하루 중 누워 있는 시간이 가장 길지만 석 달 새 체중이 3㎏이나 줄었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는 ‘후레이루’라는 말이 화두다. 후레이루는 노쇠를 뜻하는 영어 ‘frailty’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후레이루티’에서 유래했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이 줄어들고 체력이 약해져 누군가 곁에서 돌봐줘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건강한 노년 생활’에 관심이 모아지자 일본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노쇠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노쇠로 인한 노년층의 삶의 질 저하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철 상계백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한국도 80세가 넘는 고령층의 40% 가까이에서 노쇠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며


“노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노쇠 현상을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혼자서 끙끙 앓는 사람까지 고려하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쇠는 노화와 다르다. 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생물학적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현상을 말하지만 노쇠는 충분치 못한 영양 섭취와 운동 부족으로 몸이 쇠약해지는 것을 뜻한다.


80세가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과 옆에서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 60대의 차이는 노화가 아닌 노쇠에 있다.


김 교수는 “특별한 이유 없이 최근 6개월간 체중이 5㎏ 이상 줄었거나 걷기가 힘들어지고 피로를 자주 느낀다면 노쇠 현상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쇠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건강 문제를 불러온다. 정선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노쇠가 나타나면 성인병, 감염병 등 각종 질병에 취약해진다”며


“노쇠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노쇠가 나타나고 있는 노년층의 건강 상태를 방치하면 의료비용과 개호비용이 더 들어가 사회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화는 막을 수 없지만 충분한 영양 섭취와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면 노쇠는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근육을 만드는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빨리 걷기 같이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운동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쓰지 데쓰오 도쿄대 특임교수는 “사회로부터의 단절이 노쇠를 가속화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고령의 노인들에게 일자리와 봉사활동 등에 참여할 기회를 마련해줘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놓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한국경제 | 임락근 | 입력 2017.02.25 0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