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랄 기내식 이라니…’ 이슬람 세계는 달랐다
최근 터키 이스탄불의 한인 음반매장에서 열린 록밴드 음악모임이 현지인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에 술을 마신다는 이유였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자기 나라와 도시의 민감한 부분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이에 비민주적으로 반응한 이들은 우리의 호의에 그늘을 드리운 것”이라며 폭력과 무슬림 문화에 대한 무지를 동시에 비난했다.
그랬다. 이슬람은 생각 이상으로 우리와 달랐다. 2012년 11월 중순 터키로 가는 비행기 기내식에서부터 이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들은 기내식을 돌리기 전에 메뉴판부터 나눠줬다. 품격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메뉴판 뒷장에서 생소한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할랄’이었다. ‘본 항공기의 음식은 이슬람 율법에 맞춰 미리 준비된 할랄 재료만 사용됩니다.’
세계인이 같이 타는 비행기 안에서 이슬람을 강요할 줄은 몰랐다. 할랄(halal)은 ‘허용된 것’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금지된 것’은 하람(haram)이라고 부른다. 할랄 재료만 사용한다는 것은 돼지고기는 맛볼 생각을 말라는 뜻이었다. 기내식이 일반적으로 소고기와 생선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이슬람 세계로 진입했다는 느낌은 확실히 전달됐다.
이슬람율법인 샤리아에 따르면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이자를 받는 것도 금하고 있다. 은행이 술과 돼지고기, 도박, 무기 등 사업에는 아예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대신 정당한 투자를 통해 얻어지는 수익을 배당금 형태로 받는 것은 허락하고 있다. 바로 ‘수쿠크’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이슬람 국가에서 꾸란을 어겨서는 설 땅이 없다.
터키 도착 첫날, 실크로드의 종착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스탄불의 그랜드바자르를 들렀다. 비단과 가죽가방, 구두, 물 담배 파이프, 반월형 칼, 알라딘의 요술램프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상인들은 한국 사람을 용케 알아봤다. 그들의 호객행위는 간단했다.
바로 “강남스타일”이라고 외치고 말 타는 흉내를 내는 것으로 끝이었다. 흥이 나면 두 세 명이 한꺼번에 말 춤을 추기도 했다. 호객행위의 핵심이 손님 마음을 여는 것이라면 그들은 제대로 된 장사꾼이었다. 마음이 무장해제된 그 가게에서 램프도 사고, 터키식 전통모자도 샀다.
며칠 후 이스탄불 도심에 쌍무지개가 내걸렸다. 도시 전체가 노천박물관인 이스탄불에서 단연코 손꼽히는 아야소피아 박물관에도 무지개가 걸렸다. 그 광경을 본 것 만으로도 여행자는 본전 뽑았다. 가까이서 보니 박물관의 대리석 기둥 하나도 예사롭지가 않다.
안뜰에 있는 그리스식 기둥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아테네와 에페소스에 가져왔다고 한다. 박물관 안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약간의 조명으로만 내부를 밝히느라 조금 어두웠다. 이곳 높이 56m의 대형 돔은 지름이 31m로, 로도스 섬의 가벼운 벽돌로 지어졌다.
하중을 고려한 건축가의 설계겠지만 2층 한쪽의 기둥은 약간 휘어있는 것이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이 건물은 지진에 따른 지붕붕괴 등을 막기 위해 보수공사가 이어져왔다.
이 도시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이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름에서 딴 명칭이다. 그 콘스탄티누스 1세가 325년 건물을 짓기 시작했고 360년에서야 완공했다. 수 차례 화재 후 537년에 와서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으로 비잔틴양식의 대성당이 현재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마터면 그 유명한 벽화를 지나칠 뻔했다. 출구 쪽 통로를 나오다 뒤를 돌아다보니 문 위쪽에 마리아 품에 안긴 아기 예수의 그림이 하나 있었다. 콘스탄티누스가 이스탄불을, 유스티니아누스가 아야소피아를 봉헌하는 그림이었다.
대성당은 1453년 그 모습 그대로 이슬람사원에 자리를 내줬다. 달라진 것은 크게 없었다. 메카방향을 나타내는 미흐랍이 추됐고, 내부 곳곳의 십자가 문양과 성화에 회칠이 더해졌다. 이를 두고 이슬람의 관용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종교국가에서 국교가 바뀐 셈인데, 건물 자체를 해체하거나 대규모 리모델링도 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은 타종교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성당이 너무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대성당과 사원은 공존하다 터키 국부인 케말 파샤가 1930∼35년 이를 박물관으로 바꿨다. 916년간 성당, 477년간 모스크, 그리고 이제는 박물관인 이 건물은 세계 4대 건축물로도 꼽힌다.
블루모스크, 톱카프궁전 등 으리으리한 건물이 많았지만 아야소피아박물관의 감동에는 미치지 못했다. 예레스탄이라고 불리는 지하궁전은 물 창고였다. 어두컴컴하고 냉기가 감도는 이곳에서 바로 술탄의 갈증을 해소할 물을 저장했다.
가로 70m, 세로 140m, 높이 8m정도며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메두사가 사람을 끄는 힘이 있는 지 가로누운 메두사 얼굴의 기둥 주변으로 관광객들이 빼곡했다.
궁전을 얘기하자면 신시가지 바닷가의 돌마바흐체궁전을 빼놓을 수 없다. 285개의 방, 43개의 거실, 술탄과 첩들의 침소, 최고급 헤레케산 카펫, 대형홀에는 36m 높이의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화려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영국 빅토리아여왕이 헌상한 샹들리에는 750개의 등에 무게만 4.5톤이다.
오늘날 터키에서 가장 존경받는 케말 파샤는 1938년 11월10일 대통령집무실이 있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숨졌다. 지금도 돌마바흐체 궁전의 시계 156개는 모두 그가 숨진 9시5분에 멈춰 있다.
이 궁전에서 바라보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일품이다. 물론 배를 타고 이 궁전을 바라봐도 마찬가지다. 바다에는 아직 통행허가를 받지 못한 배들이 대기 중이다. 흑해와 마르마라해의 병목인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선박 통행세만 거둬도 어마어마한 액수다.
저녁 무렵 이스티클랄 거리를 걸어 탁심 광장에 이르니 젊음이 물씬 느껴진다. 신도심은 어디나 젊은이 차지다. 도심을 걷노라면 오늘 하루도 수천 년 이스탄불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스탄불에 서면 누구나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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