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교 8대 성지를 찾아서
인도 8대 성지를 따라 떠나는 인도의 불교와 문화탐방
다양한 문화와 융합된 나라 인도.
한없이 기도하는 갠지스강의 수행자들.
종교적 삶과 문명의 삶 그 사이를 찾아.
인도 [印度, 인도공화국(Republic of India)]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 인도는 국토 면적이 세계에서 7번째로 넓고 인구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습니다. 북서쪽으로는 파키스탄, 북동쪽으로는 중국·네팔·부탄, 동쪽으로는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며 북동부는 방글라데시를 3면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남동쪽은 벵골 만, 남서쪽은 아라비아 해와 접합니다.
인도에는 또한 100만㎢ 이상이 면적을 차지하는 거대한 평야지대가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북부 인도 갠지스 평원에 해당합니다. 남부에도 상당한 규모로 삼각주가 존재합니다. 이들 지역은 인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러 강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인구 밀집지역이라 집중적으로 개발 경작되고 있습니다. 충적평야가 북부의 서벵골·비하르·우타르프라데시·하리아나·펀자브 주 대부분을 차지하고 아삼·라자스탄 주까지 펼쳐져있습니다. 남쪽의 코모린 곶에서 마하나디 삼각주에까지 이르는 동해안 지역에는 인도 남부를 흐르는 여러 강들의 삼각주가 발달했습니다.
인도의 기후는 대체로 열대계절풍의 영향을 받습니다. 계절풍은 6~9월에 습윤한 남서풍이, 12~2월에는 건조한 북동풍이 붑니다. 이에 따라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게 교차되고 1년은 크게 다음의 3계절로 구분됩니다.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하고 온화하면서도 때로는 한랭한 11~2월의 건조한랭기. 기온은 매우 높으나 강수량이 적은 3~6월경의 건조혹서기. 남서계절풍이 불어와 비가 많이 내리고 기온도 높아서 매우 무더운 6~10월까지의 습윤고온기입니다. 그러나 지형과 몬순(남서계절풍)의 도래 시기에 따라 지역간에 기온. 강수량·강수일수 등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국가 전체적으로 평균강수량이나 평균기온을 살펴보는 것은 무의미하고 각 지역별로 강수량과 기온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 지도로 보는 인도 불교 8대 성지
불교 8대 성지
탄생지 “룸비니”
깨달음의 땅 “부다가야”
설법의 땅 “샤르나트”
열반지 “쿠시나가르”
포교의 땅 “라지기르”
교단본부의 땅 “쉬라바스타”
도리천에서 내려온 땅 “상카시아”
마지막 여행의 땅 “바이샬리”
■ 탄생지 룸비니
아소카석주
고마타 붓다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휘러(Fuhrer)는 룸비니에서 아쇼카 석주를 발견했다. 이 석주는 BC 250년 고마타 붓다의 탄생지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던 대왕에 의해 세워졌다. 석주에 새겨진 명문(銘文)에는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야다시(아쇼카왕의 다른 이름)왕은 즉위한지 20년이 지나 친히 이곳을 찾아 참배 하였다. 여기에서 붓다 샤카무니께서 탄생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馬)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했다. 이곳에서 위대한 분이 탄생했음을 경배하기 위한 것이다. 룸비니 마을 조세를 감면하여 생산물의 1/8만 징수케 한다라고 새겨져 있다.(다른 지역은 생산물의 1/6을 징수) 이 석주는 현재 싯타르타 연못 북쪽에 위치하며 약 7.2m의 높이로서 지면으로부터 약 3.3m 지점에 아쇼카왕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 깨달음의 땅 “부다가야"
불교 성지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바로 이 성불의 땅 부다가야이다. 부처님께서 구도의 일념으로 부귀영화를 버리고 29세의 나이로 출가한 이래 고명한 선인들을 찾아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만족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하산하였다고 하는바 이때 니란자나강으로 내려가 목욕을 하시고 마을 소녀 수자타가 공양해 준 우유죽으로 체력을 회복하신 후 지붕처럼 가지를 드리운 큰 나무 밑에 앉아 명상에 잠기시어 마침내 정각을 성취 성불하신 곳이 바로 이곳 부다가야이다.
□ 금강좌와 보리수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보리수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지켜본 그 나무의 후손이라고 합니다.『불타의 세계』(나까무라 하지메 外, 김영사)에 따르면 현재 마하보디사원을 지키고 있는 이 보리수는 1876년 폭풍으로 쓰러진 고목의 뿌리에서 나온 싹이 자란 것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 스리마하보디 사원에서 옮겨 심은 것이라고도 한다. 아누라다푸라 스리마하보디 사원은 부왕인 아쇼카왕의 명으로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상가밋타 스님이 보드가야에서 가져온 보리수를 심은 사원이다. 보드가야의 보리수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마하보디사원이 파괴될 때 불태워졌는데, 1880년 마하보디사원을 발굴·조사했던 영국 출신의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이 아누라다푸라 스리마하보디 사원에서 옮겨 심었다고 한다. 어느 설을 취하더라도 이 보리수가 부처님 깨달음의 순간을 지켜본 보리수의 후손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 설법의 땅 “샤르나트”
부처님께서는 정각을 얻으신 후 칠주간 명상에 잠기셨을 때 하늘에서 재선천이 하강하여 그 크나크신 깨달음을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여 주실 것을 간청함에 부처님께서 첫 설법의 대상으로 녹야원(샤르나트)에서 수행중인 교진여등 5명의 수행자들로 정하시고 부다가야로부터 걸어서 사르나트에 도착, 부처님에서 5제자를 상대로 첫 설법(4성제와 8정도)을 행하심으로써 불법의 법륜을 최초로 굴리신 바로 그 장소에 아쇼카대왕이 다메크 대탑을 건립하셨는데 그 후 많은 사원이 조성되었으나 11C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고되고 오늘날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 다메크(DHAMEKH) 대탑(STUPA)
벽돌로 조성된 원통형 건물, 아쇼카 왕조시대에 축조되어 굽타 왕조 시대에 증축 되었으나 지금은 윗부분이 붕괴되어 있습니다. 그 탑 뒤에 있는 아쇼카왕이 세원 석주의 기단부와 승원 터, 승방 등이 최근 발굴 되었습니다.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도 방문의 의의가 깊은 곳으로 B.C 3세기에서 12세기 간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 포교의 땅“라지기르”
과거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은 지금은 라지기르라 불린다. 과거 북인도에는 16개의 왕국이 있었는데 그중 이곳 마가다국은 가장 강력하였고 부흥한 국가로 부처님께서는 성불하시기전 출가하셔 이곳에서 공부를 하셨고 성불하신 후엔 빔비사라왕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최초의 정사인 죽림정사를 이곳에서 보시 받으시고 불법전파의 시발점으로 삼으셨으며 이곳에서 불교 최고의 경전으로 알려진 법화경을 설하셨다. 이곳 라지기르 곳곳은 부처님과 여러 제자와의 얽힌 이야기가 있어 조용한 시골 곳곳을 마차를 타고 순례하기에 좋은 곳이다
□ 영축산
기다란 능선을 말하는데 이곳엔 도시를 감싸는 5개의 능선이 있어 라지기르라 한다. 5개의 능선 이는 바로 우리 내산 오대산과 일맥하는 것으로 바로 이곳에서 오대 문수사상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모든 법은 본래부터 오면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
항상 스스로 적멸의 형상이니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
불자가 이런 도를 수행하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
오는 세상에 성불하리라.
□ 죽림정사
죽림정사(竹林精舍)는 불교 최초의 사찰입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기증했다고도 하고, 칼란다카 장자가 기증한 죽림원에 빔비사라왕이 정사를 지었다고도 합니다.
20세기 초 이곳을 발굴했지만 심하게 파괴된 두세 개의 불상과 스투파 터를 확인한데 그쳤다고 합니다. 죽림정사터에 있는 이 연못은 죽림원을 기증한 칼란다카 장자의 이름을 따‘칼란다카연못’으로 불린다.
□ 나란다대학
나란다대학은 5세기에 건립된 세계 최초 최대의 불교대학으로 1만명의 학승과 1천7백명의 교수진이 있었으며, 기숙사생만 3천명이 있었다한다. 당시 나란다의 수학생들은 인도 전역에서 우대를 받았으며 이들을 위한 공양물은 끊임이 없었는데 AD. 7세기경 하르샤왕도 스스로를 나란다승원 스님들의 종이라 칭할 정도였다 한다.
실로 지금 복원된 대학의 터 만해도 몇 만평이 넘는다고 하니 그 당시의 이 대학의 규모가 굉장했음을 보여 준다.
나란다의 전성기는 5~12세기의, 약 7백년간이었다. 당시의 나란다는 세계적인 학문의 요람이었는데, 불교학 이외에도 인문학·철학·수사학·자연과학·천문학 그리고 다방면의 예술까지 폭넓게 탐구되었던 명실공히 인도 최대의 종합대학이었다.
■ 교단본부의 땅 “쉬라바스타”
과거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은 지금은 과거 북인도 16개국 중 가장 강열했다는 기록의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연 속으로 사라졌다. 이곳은 다른 불교성지와 달리 거의 복원이 되어 있지 않는데 최근 인도 고고학회에서 사위성 일대를 발굴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과거 부처님 재세시 이곳에서 라지기르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셨고 수닷타장자와 기타태자가 기부한 기원정사에서 불교 최고의 경전으로 일컬어지는 금강경을 이곳에서 설하셨다. 이곳은 한적한 곳으로 당시 경전상의 사건과 역사적 수행자의 유적지를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수닷다장자집터
수닷타 장자는 아들 결혼문제로 왕사성의 처남 집에 들렀다가 부처님 소식을 듣게 되고 이에 더할 수 없는 기쁨과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빨리 부처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밤잠도 설치고 마침내는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새벽길을 나섰다가 묘지에서 부처님을 만나는 일대사 인연을 맺게 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게 되고 마침내 삼보에 귀의하여 한평생 재가신도가 되겠다는 서약을 하게 된다.
수닷타 장자는 다시 부처님에게 다음 장마철에 사위성에 오시어 안거하시길 청하고 부처님은 이를 허락하심에 그는 사위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아는 이들에게 부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일러둠으로 다음 부처님께서 사위성으로 오실 때 이들을 잘 맞이하였다고 한다.
□ 앙굴리말라 집터
어느 때 부처님은 사밧티에 들어가 밥을 빈 다음 성 밖에 있는 숲길을 지나다가 소치는 사람과 밭을 가는 농부들을 만났다. 그들은 길을 가는 부처님을 보자 가는 길을 만류하였다.
"부처님, 그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 길에는 앙구리말라라는 무서운 살인자가 있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을 죽인 다음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닙니다. 제발 그 길로 다니지 마십시오." 이와 같이 거듭거듭 만류하였으나 부처님은 "내게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소"라고 말씀하시면서 길을 떠났다.
얼마 안 가서 앙굴리말라가 갑자기 칼을 치켜들고 나타나 부처님께로 달려왔다. 부처님은 태연하게 걸어가셨다. 앙굴리말라는 있는 힘을 다해 뛰었으나 이상하게도 부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사문아 거기 섰거라!"하고 그는 소리쳤다. 부처님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앙굴리말라를 바라보셨다. 그는 부처님의 자비스럽고 위엄 있는 모습을 대하자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때 부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다. 너는 어리석어 무수한 인간의 생명을 해쳐왔고 나를 해치려하지만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어도 마음이 평온하다. 너를 가엾이 여겨 여기에 왔다." 이 말을 듣자 앙굴리말라는 문득 악몽에서 깨어나서 정신으로 돌아왔다. 마치 시원한 물줄기가 훨훨 타오르던 불길을 꺼버린 듯하였다. 그는 칼을 내던지고 부처님 앞에 끓어 엎드렸다.
"부처님,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부터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그는 부처님을 따라 기원정사에 가서 설법을 듣고 지혜의 눈을 뜨게 되었다.
□ 천불화현지(千佛化現地)
쉬라바스티에서 부처님께서는 당시 자이냐교 및 외도들의 사상이 팽배해 수많은 기적을 드러내 보이셨다. 이곳에 보이신 천불화현의 기적은 많은 불교미술상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천불화현지는 부처님께서 이내 이곳을 떠나 하늘세계 도리천에 오르셔, 이루 상카시아로 하강하시게 된다.
□ 기원정사
인도 불교성지(佛敎聖地)중에서 기수급고독원으로 알려진 기원정사(祇園精舍)에는 “아난다 보리수(菩提樹: Bodhitree)”라는 나무가 있다. 기원정사는 사위성의 급고독 장자가 크나큰 원을 세워 바사익 왕의 태자인 기타태자의 동산에 부처님이 안거할 수 있는 정사를 짓고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는 창건설화가 유명한 인도불교 8대 성지중의 하나다. 수닷타장자의 보시로 창건된 곳으로 부처님께서 17안거를 지내셨으며 금강경을 설하신 곳이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 도리천에서 내려온 땅 “상카시아”
상카시아는 싯다르타태자가 태어난지 7일째 돌아가신 어머니 마야부인이 계시는 도리천에 올라가 설법을 하고 내려오신 곳이다. 8대불교성지중 하나이다. 3개월동안 천상의 여러 신들에게 설법을 하고 내려오실 때 금의 보화의 계단이 놓여지고 좌우협시로 제석천과 범천이 부처님을 모시고 내려 오셨다 한다.
현재 이 장면을 묘사한 상이 작은 법당에 모셔져 있고 마야데비를 기리는 법당은 허물어진 사원 위에 작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아쇼카왕이 세운 아쇼카석주가 있는데 파손되어 몸체일부와 상륜부 코끼리가 손상된 채로 보존되어있다. 이 지역은 석가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여러 불가국가들이 사찰을 불사하여 포교를 하고 있다.
■ 마지막 여행의 땅 “바이샬리
바이살리는 파트나(Patna) 북서쪽 44km 지점의 갠지스강변에 위치한, 부처님 당대(기원전 5세기 경) 리차비족의 수도였던 곳이다. 이곳은 당시 지리적 여건으로 상업이 크게 발달한 도시였으며, 새로운 사상의 형성과 파급의 중심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곳이다. 바이살리는 부처님과 많은 인연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은 우선 부처님이 출가 한 후 여러 스승을 찾아다닐 때, 이곳 바이살리에서 아라다-까라마(Arada-Kalama) 선인을 만나 무소유의 가르침을 받은 곳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후 5년이 지나 다시 바이살리를 찾는다. 바이살리가 오랜 자연 재해로 사람들이 굶주리고 질병이 유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바라문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릿차비족은 라자그라하에 머물던 부처님을 초청하게 되고, 부처님이 바이살리를 밟으시자 그 질병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바이살리에 머무시며 설법을 하셨다. 이에 바이살리의 왕과 백성들은 대림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쳤다고 한다. 부처님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이곳 바이살리를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열반을 향한 여정에서, 마지막 하(夏)안거를 보내신 곳이며, 3개월 뒤 열반에 드실 것을 예견하신 곳이기도 하다.
□ 아쇼카석주
인도 북부 대륙에 산재해 있는 아쇼카 석주는 마우리아(Mauryan) 왕조 아쇼카왕의 명령에 의해 불교의 가르침을 새겨 넣은 것이다.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인 사르나트에 위치한 석주가 가장 유명하다. 석주의 기둥머리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 조각이 올려져 있는데 붓다에 대한 왕의 신분과 왕의 법령이 전국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석주의 기둥머리에는 모형이 올려져 있고, 사자상 원형은 현재 사르나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자상의 기둥머리는 종 모양의 연꽃 위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코끼리·말·황소·사자 네 마리의 동물과 법륜(Dharma wheels)을 의미하는 수레바퀴 네 개가 조각된 원형의 판이 올려져 있으며, 맨 위에는 네 방향의 전 지역으로 아쇼카의 법이 미치는 것을 의미하는 네 마리의 사자가 등을 맞대고 서있는 형상이다.
현재 사자상은 인도의 국가 문장(National Emblem)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인도지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수레바퀴 모양은 인도 국기의 중앙에 도안이 되어있다. 또 다른 아쇼카 석주는 바이샬리(Vaishali) 지방의 불교수도원에 위치하며 기둥머리에 북쪽을 향한 한 마리의 사자상이 올려져 있다.
■ 열반지 “쿠시나가르”
45년간의 가르침의 여행을 계속하시어 80세에 달하신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던 그 해의 우기에 병을 얻어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아시고는 아난존자만을 데리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시는바 풍요로운 도읍 바이샬리를 지나 파바마을에서 대장장이의 아들 춘다가 공양을 드시고 이질의 증상을 얻으셨다. 병을 헤아리신 부처님의 당시 마라족의 도읍인 쿠시나가르로 발을 옮기시다(고양인 카필라바스투 방향을 목표) 쿠시나가르의 교외에서 45년 동안의 끝없는 교화와 설법전파의 활동을 마감. 제자 아난존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그루의 커다란 사라나무 사이에서 80년의 생애를 마치시고 입적하셨다.
비통해하는 제자들에게 "부처님의 입적후도 부처님을 의지하고 또 법(진리의 갈침)을 의지하도록" 당부하시고 가르침에 의문점이 있으면 물으라 제촉하신 후 "모든 사물과 현상은 지나가는 것. 게을리하지 말고 수행을 완성하라"고 이르신 후 열반에 드신바 이때 사라나무는 때 아닌 꽃을 피워 부처님의 유체를 장식했다는 이곳은 의의 깊은 불교성지입니다.
□ 열반당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이곳엔 열반당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당 내에는 열반상이 모셔져 있는데 길이 6.1m로 부처님의 상호가 보는 각도에 따라 세 가지로 다르게 보입니다. 11세기에 조성되었으며 열반상 기단부분엔 3분의 상이 모셔져 있는데 왼쪽부터 마지막 공양자 춘다, 마지막 제자, 시봉 아난다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 사라쌍수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사라나무 두 나무 사이에는 열반에 드셨는데 두 나무를 가르켜 사라쌍수라 합니다. 현재 사라쌍수를 기념으로 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 다비장
7일 후 다비식을 거행한 곳입니다. 원래 왕족들을 위한 다비처였으나 거룩한 부처님을 위해 이곳을 보시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다비장소엔 사리탑이 모셔져 있으며 탑 돌이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부처님열반소식을 듣고 달려온 상수제자 마하가섭의 조상이 있습니다.
[출처] 인도 불교 8대 성지를 찾아서|작성자 byuns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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