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첸라마[ 班禪喇嘛 ]
활불(活佛) 반선액이덕니(班禪額爾德尼)의 간칭(簡稱)으로 장전불교(藏傳佛教) 격로파(格魯派)에서 본래 달라이 라마(達賴喇嘛) 다음의 지위였으나
강희(康熙) 이후 지위가 동등해져 17세기 중엽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1959년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까지 티베트의 통치자이자 국가 원수였다.
1645년 톈산(天山, 천산) 북록(北麓)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몽고 오이라트(衛拉特, Oirat) 4대 부족의 하나인 화석특(和碩特, Khoshut)의 수령 고시한(固始汗, 1582~1655)이 4세 판첸(班禪, 반선) 반선박극다(班禪博克多)를 제1대 반선으로 옹립하였고 격로파가 그를 4세 반선으로 추인하였다.
강희 52년인 1713년 5세 반선 액이덕니(額爾德尼)를 격로파 즉, 황교(黃教)의 또 다른 영수(領袖)로 삼아 분권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또한 이전의 각 반선을 인정하여 하나의 활불(活佛) 계통이 성립되었다.
반선의 주재지는 르카쩌(日喀則)의 찰십륜포사(扎什倫布寺)이며 강희제는 5세 판첸라마(班禪喇嘛, 반선라마)에게 금인(金印), 금책(金冊)을 주어 반선과 달라이 라마의 동등한 지위를 확인하였다.
반선의 영향력은 주로 르카쩌(日喀則)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크게 작용하고 있으며 1989년 티베트 망명정부는 경등확길니마(更登確吉尼瑪, Gedhun Choekyi Nyima : 1989.4.25~)를 제11세 반선 라마(班禪喇嘛)로 인정하였다.
1995년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정식으로 그를 10대 반선 라마의 환생으로 인정했으나 중국정부에 의해 불법 무효 결정을 받은 이후 1995년 중국정부에 체포된 이후 2008 현재 그의 행적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반면 1990년 중국정부는 확길걸포(確吉傑布, Qoigyijabu)을 제11세 판첸라마(班禪喇嘛, 반선라마)로 인정하였으며 1995년 12월 8일 중국정부가 역대 반선의 거소인 르카쩌(日喀則)의 찰십륜포사(扎什倫布寺)에서 대전(大典)을 거행하였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달라이 라마와 반선 라마는 전통에 따라 상호 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14세 달라이라마가 인정한 경등확길니마(更登確吉尼瑪)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황제가 이를 승인하였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판첸라마 [班禪喇嘛] (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 2010. 8. 1., 도서출판 황매희)
미륵전
9대 판첸라마가 1914-1918에 건축했으며
279kg의 금과 23만톤의 동이 소요되었다.
미륵전 입구 바닥에 모자이크된 만자
미륵전 입구의 벽화로된 사대천왕
미륵전 입구의 벽화로된 사대천왕
미륵전 입구의 벽화로된 사대천왕
미륵전 입구의 천정 벽화
미륵전 입구 상단의 조형물
미륵전 입구 벽화
미륵전 입구 문고리 장식
미륵전 입구 문고리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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