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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탁실라(17.9.30)

정혜거사 2017. 10. 30. 21:48

9.30 토 맑음

0608출발 탁실라로

고속도로 6차로상태 최상 대우 시공


휴게소에서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커피 290루피 아침 먹고 같은거 점심으로 구입


계속 평야를 달리다 산이 나타남

이슬라마바드를 우회하여 탁실라로


탁실라박물관 책1000루피 사진 몇장 찍음

사진촬영 불가인데  직원들이 돈받고 찍게함


입장료 500루피 야외 유적관람료 500루피

한군데가다 교통통제로 못가고(시아파행사 아슈라)

시르캅도시와 스투파 관람



탁실라 (Taxila)

 

라왈핀디 북서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고대유적지로서, 간다라유적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탁실라의 산스크리트어는 탁샤실라(Taksasila)로서, 탁샤(Taksa,'자르다')와 실라(sila,'머리')의 합성어로 '머리를 자른 곳'이란 뜻이며,


부처님이 보살로 계실 때 머리를 잘라 남에게 베푸셨다는 전설에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법현스님의 '불국기'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이미 BC 6세기경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BC 4세기경에는 알렉산더의 침략을 받았으며, BC 3세기경에는 인도 북부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BC 2세기경에는 그리스계의 박트리아인들이 나라를 세워 그리스 문화를 전파했으나, 나중에 불교를 받아들여 불교 문화를 번성 시켰다.

  

이와 같이 수많은 민족들이 거쳐 가면서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시켜, 간다라 미술이라는 독특한 문화유산을 남기게 되는데, 그 중심 도시가 탁실라이다.

 

동진의 법현스님이 5세기 초 이 도시에 왔을 때는 불교 사원이 융성한 곳이었다고 적고 있으나,   

455년경 훈족에 의해 파괴된 이후로 다시는 재건되지 못하였으며,


당나라 현장스님이 7세기에 들렀을 때에는 도시가 폐허화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혜초스님도 탁실라유적을 둘러본 내용을 '왕오천축국전'에 남기고 있다.

 

발국작업은 1863년부터 시작되었으며, 현재 탁실라 박물관을 중심으로 반경 수킬로가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간다라 미술 (Gandhara art)

 

간다라지방 (지금의 파키스탄 북서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지역)에서,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번성한 그리스, 로마풍의 불교미술로서,


이후 중앙아시아와 중국, 한국, 일본 등지로 전해졌으며, 유물은 주로 조각이 많다.

 

간다라는 인도 마투라지역과 더불어, 인간의 모습을 한 불상이 처음으로 제작되었던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간다라불상 이전에 부처는 오직, 스투파나 보리수, 법륜, 보좌 등 상징적으로만 표현되었을 뿐이다.

 

간다라불상에서 특이한 것은, 머리카락이 고수머리가 아니고 물결 모양의 장발이라는 점과, 눈 언저리가 깊고 콧대가 우뚝한 것이 마치 서양 사람과 같은데,


이는 헬레니즘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탁실라박물관

 

간다라미술의 보고라고 일컬어지는 박물관으로 1928년에 개관하였으며, 탁실라 주변에서 발굴된      불상과 동전, 항아리, 보석 등이 전시되어 있음.

 

입구에 들어서면 모라 모라두에서 발굴된 일곱스투파의 복제품을 볼 수 있으며, 유리진열장에 간다라의 불상과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고, 모라 모라두에서 출토된 좌불상은 간다라미술의 최고 걸작이다.

                   

또한 '소년의 머리상'은, 탁실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후기 간다라미술의 대표작으로서, 이 머리상은 꼭같은 것이 두개가 있는데,


물결모양의 곱슬머리 아래로 살짝 미소를 띈 귀공자의 인상이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부처의 두상 2-3세기



탁실라 박물관내에서는 사진촬영 불가인데

박물관안내책자를 1000루피에 사니까 몰래 몇장 찍으랜다.





시르캅 (Sirkap)

 

기원전 2세기~기원후 2세기에 번영했던 그리스왕조와 쿠샨왕조의 도시유적으로, 비르언덕에 이어

탁실라 제2의 도시로 조성되었다.


높이 9m의 성벽이 5.5km에 걸쳐 축조되어 있으며, 성문으로 들어서면 너비 약 6m의 넓은 거리가 500m가량 이어지고,


양쪽으로는 당시에 일반주택과 상점들이 그 위에 축조되었을 석축토대가 늘어서있으며, 거리에는 돔모양의 스투파 유적도 있고 왕궁유적도 남아있다.

 

시르캅에서 가장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는 유적은, 태양의 사원이라 불리는 힌두교유적지로, 스투파의 기단에 두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 조각이 있어 '쌍두취불탑' (雙頭鷲佛塔, Double-headed Eagle Stupa Shrine)이라 불린다.


현재는 방형의 기단부만 남아있으며, 불교와 그리스예술의 혼합된 양식으로 조형과 기둥 등에서 헬레니즘양식을 띠고 있는데,


이 불탑의 기단은 중앙계단을 사이에 두고 좌우 정면에 코린트식 둥근 기둥이나 네모 기둥을 세워, 벽 공간을 각각 세등분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다르마라지카 (Dharmarajika)


탁실라에서 가장 큰 사원이기도 했던 다르마라지카사원은, 기원전 3세기 이래 불교도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곳으로, 


아쇼카왕 때 세운 탁실라 최초, 최대의 스투파로서, 석가모니 유골을 모셨던 곳인 다르마라지카 스투파가 유명하다.


지금은 작은탑들이 큰탑을 둘러싸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모든 기단이 원형이란 특징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