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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실크로드, 파키스탄, 북인도 여행기 (19일차) - 탁실라 (박물관, 유적지), 이슬람아바드(파이살모스크, 다마네코산)

정혜거사 2017. 9. 22. 13:56

-  6:00 기상.

   호텔 건너편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6:45).

   넓은 공원 안을 좌우로 두바퀴 거닐며, 맨손체조도 하면서 아침운동을 한다.

 

 

   (공원에서  -  큰 보리수나무가 있어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해보려고 했더니, 현지인들이 모여들어 바라보는 통에 포기한다)

 

 

 

-  공원 옆길에서 크리켓경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잠시 어울려본 후에, 공원 주변을 한바퀴 돌아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한다 (7:30).

 

 

   (크리켓을 해보는 중)

   (숙소 호텔 풍경)

 

 

-  호텔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에 (8:00), 방에서 오늘의 여행지에 대한 자료를 읽어본다.

 

-  오늘은 미니버스를 대절해서 단체로 탁실라와 이슬람아바드를 관광할 예정으로, 일행 모두 버스에 탑승하여

   호텔을 출발한다 (10:00).

 

-  라왈핀디의 대우버스터미날에 정차해, 내일 라호르로 출발하는 일부 회원들의 버스표를 구입한 후, 탁실라로 향한다.

 

 

   (대우버스터미날에서)

 

 

 

   (*) 탁실라 (Taxila) :

 

        -  라왈핀디 북서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고대유적지로서, 간다라유적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탁실라의 산스크리트어는 탁샤실라(Taksasila)로서, 탁샤(Taksa,'자르다')와 실라(sila,'머리')의 합성어로

           '머리를 자른 곳'이란 뜻이며, 부처님이 보살로 계실 때 머리를 잘라 남에게 베푸셨다는 전설에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법현스님의 '불국기'에서 기록하고 있다. 

 

        -  이 지역은 이미 BC 6세기경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BC 4세기경에는 알렉산더의 침략을 받았으며,

           BC 3세기경에는 인도 북부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BC 2세기경에는 그리스계의 박트리아인들이 나라를 세워 그리스 문화를 전파했으나, 나중에 불교를 

           받아들여 불교 문화를 번성 시켰다.  

           이와 같이 수많은 민족들이 거쳐 가면서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시켜, 간다라 미술이라는 독특한 문화유산을 

           남기게 되는데, 그 중심 도시가 탁실라이다.

 

        -  동진의 법현스님이 5세기 초 이 도시에 왔을 때는 불교 사원이 융성한 곳이었다고 적고 있으나,   

           455년경 훈족에 의해 파괴된 이후로 다시는 재건되지 못하였으며, 당나라 현장스님이 7세기에 들렀을 때에는

           도시가 폐허화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혜초스님도 탁실라유적을 둘러본 내용을 '왕오천축국전'에 남기고 있다.

 

        -  발국작업은 1863년부터 시작되었으며, 현재 탁실라 박물관을 중심으로 반경 수킬로가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간다라 미술 (Gandhara art) :

 

        -  간다라지방 (지금의 파키스탄 북서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지역)에서,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번성한 그리스, 로마풍의 불교미술로서, 이후 중앙아시아와 중국, 한국, 일본 등지로 전해졌으며,

           유물은 주로 조각이 많다.

 

        -  간다라는 인도 마투라지역과 더불어, 인간의 모습을 한 불상이 처음으로 제작되었던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간다라불상 이전에 부처는 오직, 스투파나 보리수, 법륜, 보좌 등 상징적으로만 표현되었을 뿐이다.

 

        -  간다라불상에서 특이한 것은, 머리카락이 고수머리가 아니고 물결 모양의 장발이라는 점과, 눈 언저리가 깊고

           콧대가 우뚝한 것이 마치 서양 사람과 같은데, 이는 헬레니즘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  탁실라박물관 앞에 도착해서, 박물관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11:00).

   때마침 박물관에는 파키스탄 남,여학생들이 단체로 관람을 온 모양인데, 우리일행을 보고는 우리쪽으로 우르르 모여든다.

   우리들을 촬영하기도 하고, 서로 어울려 사진도 찍는 등 한동안 꽤나 요란스러운 풍경이 전개된다.

 

 

   (탁실라박물관 정문)

   (파키스탄 학생들과 함께)

 

 

 

-  입장권을 끊어 (200루피) 박물관 안으로 들어간다.

 

 

 

   (*) 탁실라박물관 :

 

        -  간다라미술의 보고라고 일컬어지는 박물관으로 1928년에 개관하였으며, 탁실라 주변에서 발굴된

           불상과 동전, 항아리, 보석 등이 전시되어 있음.

 

        -  입구에 들어서면 모라 모라두에서 발굴된 일곱스투파의 복제품을 볼 수 있으며, 유리진열장에 간다라의

           불상과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고, 모라 모라두에서 출토된 좌불상은 간다라미술의 최고 걸작이다.

                   

           또한 '소년의 머리상'은, 탁실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후기 간다라미술의 대표작으로서, 이 머리상은 꼭같은 것이 

           두개가 있는데, 물결모양의 곱슬머리 아래로 살짝 미소를 띈 귀공자의 인상이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  탁실라박물관은 1층으로 되어있는 아담한 박물관으로,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관리인들이 적당한 때

   신호를 주면 알아서들 조용히 사진을 찍으라고, 복마니님께서 이야기한다.

 

-  얼마후에 다른 관람객이 없는 때를 이용해 사진을 찍으라는 관리인의 신호가 나오자, 우리일행들은 여러 작품들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한다.

   우리들이 사진찍는 게 너무 소란했던지, 책임자가 나타나서 관리인들에게 호통을 치자, 일행들의 사진찍는 것도 끝이 났다.

 

-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한 관리인이 나에게, 팁을 주면 사진을 찍게 해주겠다는 제의를 했으나 사양했다.

   입장권매표소에서 사진 찍는 요금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박물관 내부에서는 촬영금지가 맞는 것 같으나,

   관리인들이 비공식적으로 묵인해주고 팁을 받는 것 같다.

 

 

-  간다라예술품을 대표하는 유명한 작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이라고는 하나, 관련 자료를 공부하거나 준비해오지 않은 데다가

   내용을 설명해주는 가이드가 없으니, 문외한인 내가 혼자 둘러보아야 크게 감흥이 날 리가 없다.

   일단 촬영해놓고 뒤에 기회가 되면 공부해보자는 심정으로, 재빠르게 찍었던 사진 중에서 몇장을 올려본다.

 

   (*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인터넷 등을 통해 자료를 검색해보지만, 그야말로 '봉사가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박물관 내부 모습  -  일곱스투파의 복제품이 보인다)

 

                                     (탁실라의 상징이라는 '소년의 머리상')

 

                                           (모라 모라두에서 출토된 좌불상이 어떤 작품인지 잘 모르겠다)

 

 

 

 

 

 

                                     (진열된 작품들에 어울리지 않는 왠 여자 조각상이 있다)

 

 

-  박물관을 나와 버스를 타고 탁실라 제2의 도시터였던 시르캅으로 향한다.

   입장권을 끊어 (200루피) 옛 성문을 들어서니, 시원스레 쭉 뻗은 넓은 길이 펼쳐지고 길 좌우로 유적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열심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회원도 있고, 큰 나무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회원도 있다.

 

 

 

   (*) 시르캅 (Sirkap) :

 

         -  기원전 2세기~기원후 2세기에 번영했던 그리스왕조와 쿠샨왕조의 도시유적으로, 비르언덕에 이어

            탁실라 제2의 도시로 조성되었다.

            높이 9m의 성벽이 5.5km에 걸쳐 축조되어 있으며, 성문으로 들어서면 너비 약 6m의 넓은 거리가 500m가량

            이어지고, 양쪽으로는 당시에 일반주택과 상점들이 그 위에 축조되었을 석축토대가 늘어서있으며,

            거리에는 돔모양의 스투파 유적도 있고 왕궁유적도 남아있다.

 

         -  시르캅에서 가장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는 유적은, 태양의 사원이라 불리는 힌두교유적지로, 스투파의 기단에 두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 조각이 있어 '쌍두취불탑' (雙頭鷲佛塔, Double-headed Eagle Stupa Shrine)이라 불린다.

            현재는 방형의 기단부만 남아있으며, 불교와 그리스예술의 혼합된 양식으로 조형과 기둥 등에서 헬레니즘양식을

            띠고 있는데, 이 불탑의 기단은 중앙계단을 사이에 두고 좌우 정면에 코린트식 둥근 기둥이나 네모 기둥을 세워,

            벽 공간을 각각 세등분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입구에서 바라본 시르캅유적지 풍경)

 

   (두개의 독수리 머리 형상을 한 쌍두취불탑이, 계단 좌우측 하단부에 조각되어 있다)

 

 

   (유적지 안에서 입구쪽을 바라본 풍경)

 

 

-  다음 유적지인 잔디알사원으로 향한다.

   집들이 꽤 들어서있는 동네의 한쪽에 위치해 있으며, 조그만 규모의 유적지이기 때문인지 무료입장이다.

 

 

  (*) 잔디알 (Jandial) :

         -  조로아스터교유적지에 세운 그리스 신전유적이 있음.

 

 

   (잔디알사원의 돌담벽 위에서 바라본 풍경)

   (잔디알사원 유적지)

 

 

 

-  약간 언덕 위에 자리잡은 모라 모라두에 도착했다.

   이곳을 무료로 들어갔는지는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

   계단을 좀 오르니 오른쪽에 거대한 원형의 메인스투파가 나타나고, 안으로 들어가 살펴본 이 유적지에는 부처님 조각상이 많은데,

   대부분 파손되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 모라 모라두 ( Mohra Moradu) :

         -  3~5세기경 불교승원터가 있던 곳으로, 부처님 좌상의 형태가 많은데 대부분 훼손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결혼케잌모양의 일곱스투파 복제품과 여기에서 출토된 간다라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좌불상이

            탁실라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 있는 원형의 메인 스투파)

 

                                             (결혼케잌모양의 일곱스투파인데, 상륜부가 잘린 사진이다)

 

   (훼손된 부처조각상들)

 

                                    (이곳에 있던 조각상은 탁실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모라 모라두유적지를 나오는 중  -  오른쪽에 원형의 메인스투파가 있다)

 

 

-  100여m 언덕 위에 위치한 자울리안유적지에 도착해, 시냇물을 건너고 돌계단을 한참 올라간다.

   입장권을 끊자 (200루피), 관리인이 자물쇠를 채워둔 유적보관건물의 문을 열어준다.

   이곳에 있는 불상들도 머리부분이 대부분 파괴된 채로 보관되어 있다.

 

  

   (*) 자울리안 (Jaulian, 줄리안, 졸리안) :

         -  언덕에 위치한 대학승원터 (불교대학터)로서, 아쇼카왕의 고향인 이곳에서 그의 아들이 수행했다고 하며,

            우리의 혜초스님도 이곳에 머무르며 수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인도양식이 아닌 스투파와 불상조각이 있는데, 부처조각상은 대부분 파손된 상태이며, 인도의 스투파와는 완연히 

            다른 모양인 사각형의 낮은 스투파들이 있다.

            

 

   (언덕의 계단을 오르며 바라본 풍경  -  언덕을 내려갈 때에는, 시냇물에서 애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었다)

   (관리인이 자물쇠가 채워진 요 문을 열어준다)

   (인도의 스투파와는 다른 모양인 사각형의 스투파들)

 

                                                     (머리 부분이 파손된 부처조각상)

 

 

                                                    (온전한 형태로 보아, 아마 복제품이 아닌가 한다)

 

   (자울리안유적지를 내려오는 중) 

 

 

 

-  2천년전 안팎의 파손된 유적지를 돌아다니는 여행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날씨는 무더워 땀을 줄줄 흘리고, 점심식사 때가 지나 허기도 찾아오고 있다.

   불과 이틀전 페어리메도우의 하얀 설산과 빙하가 그리워지는 상황이다.

 

-  이동중인 버스에서 일정에 대해 논의가 벌어졌다.

   많은 회원들께서 유적지 관광은 이만 마치고, 라왈핀디로 돌아가 시원한 KFC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얼마간 얘기가 오가다가, 이왕 탁실라까지 왔으니 말이 나온 유적지를 마저 보고 돌아가기로 한다.

 

 

-  탁실라 제1의 고대도시였던 비르언덕에 도착해보니, 단순한 언덕 풍경 뿐이라 사진만 몇장 찍어본다.

 

 

   (*) 비르언덕 (Bhir Bound) :

        -  기원전 6세기경부터 조성된 탁실라 제1의 고대도시인 비르언덕은, 페르시아왕국의 지배를 받은 탓에 서양의 고대도시

           형태를 유지한 곳으로, 당시 광장과 주거지, 하수도시설을 갖춘 계획도시였지만, 지금은 황량한 황토언덕으로 남아있다.

 

 

   (비르언덕 풍경들)

 

 

   (길가에서 과일을 사는 중)

 

 

-  길가에 있는 과일가게에서 수박 등을 산 후에, 버스에 올라 마지막 방문지인 다르마라지카에 도착했다.

   유적지까지 얼마를 걸어가니, 정식 매표소도 없이 현지인 몇명이 입장권을 팔고 있다 (200루피).

   몇사람만이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가 유적지를 둘러보고, 대부분의 회원들은 나무그늘 아래서 쉬고 있다. 

 

 

    (*) 다르마라지카 (Dharmarajika):

        -  탁실라에서 가장 큰 사원이기도 했던 다르마라지카사원은, 기원전 3세기 이래 불교도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곳으로,

           아쇼카왕 때 세운 탁실라 최초, 최대의 스투파로서, 석가모니 유골을 모셨던 곳인 다르마라지카 스투파가 유명하다.

           지금은 작은탑들이 큰탑을 둘러싸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모든 기단이 원형이란 특징를 갖고 있다.

 

 

   (동그란 작은탑들이 큰탑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파손된 부처조각상들)

 

 

 

-  다르마라지카유적을 돌아보고 나오노라니 입장을 안했던 회원들께서, 입장권 파는 현지인이 반값만 내고 들어가라고

   타협해왔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  탁실라에서 우리들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마간산식으로나마 4시간30분 동안 부지런히 여러곳을 둘러본 셈이다.

 

 

   (다르마라지카유적지를 떠나 버스로 돌아오는 중)

 

 

 

-  탁실라관광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라왈핀디로 출발한다 (오후 3:30).

 

-  라왈핀디에 들어서서 어떤곳에 버스를 세우더니, 복마니님과 케이씨대장님이 버스에서 내리며 맥주를 사오겠으니

   잠시 기다려달라고 한다.

 

-  얼마후에 맥주 2상자를 구입해와 버스에 싣고 가던 중에 일이 발생한다.

   경찰관 두명이 우리 차를 세우더니, 차안으로 들어와 맥주를 가리키며 하차한다.

   이후에 경찰관과 복마니님의 실랑이가 한참동안 계속되고, 우리들은 약간은 긴장하고 약간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  시간이 꽤 흐른 후에 복마니님이 승차하더니 버스를 출발시키고, 우리들은 전말이 궁금하여 복마니님의 입을 쳐다보고 있다.

   술을 금지시키고 있는 무슬림국가에서, 내국인은 술을 살 수 없지만 외국인은 구입할 수가 있는데, 담당관청에 가서 여권을

   제시하고 허가증을 받은 후에 지정된 장소에서 사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복마니님은 허가증 없이 술을 산 것인데, 술을 사기 위해 줄서있는 사람들이 복마니님을 제외하곤 모두

   파키스탄인들이며, 술파는 곳에서도 허가증같은 게 없어도 술을 판다고 한다.

 

-  복마니님이 경찰관에게, 내가 문제가 된다면 불법적으로 술을 파는 가게 등도 모두 문제를 삼으라고 하면서 따졌더니,

   그냥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경찰관들은 맥주 몇병을 건네주면 보내줄 속셈이었으나, 복마니님이 응하지않고 설전을 벌인 끝에 승리한 셈이 되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  복마니님의 무용담에 일행들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복마니님이 파키스탄의 법적 공용어인 우르두어를 잘하는 것을 보아왔으나, 단속경찰을 상대로 언쟁을 벌여 이긴 셈이니,

   아무튼 대단한 우르두어 실력자임이 분명하다.

   하기야 내가 단속경찰이라도, 왠 동양인이 자기나라 말을 이렇게 잘하는 걸 보면, 고맙고 기특해서라도 그냥 보내주지

   않을까 싶다.

 

-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금주국가인 이슬람권에서도 힘있는 계층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술을 구해서 마신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훈자에서는 비공식적으로나마 뽕술을 마실 수 있고, 우리가 구입한 맥주도 수입품이 아니라 파키스탄의 머리에서

   제조했다고 적혀있지 않은가.

 

 

 

-  라왈핀디의 에어컨이 빵빵한 KFC식당에 도착해, 햄버거와 콜라로 때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오후 4:30, 2명분 400루피).

 

  

                                     (식당 옆에서 본 광경)

 

 

-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슬람아바드로 향한다.

 

-  복잡하고 지저분하기도 한 라왈핀디를 벗어나, 넓게 잘 닦여진 시원스런 포장도로(Murree Road ?)를 달려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람아바드에 들어서노라니, 신설된 계획도시답게 깨끗하고 부티가 나는 곳임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남북으로 바로 이웃에 위치한 두 도시는, 라왈핀디가 구시가지, 이슬람아바드가 신시가지에 해당되는데, 우리의 서울과 비교하면

   강북지역과 강남지역으로 볼 수 있겠다.

 

-  널찍한 포장도로 끝부분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모스크인 파이살모스크 관광에 나선다.

 

 

 

   (*) 이슬람아바드 (Islamabad) : 

        -  이슬람아바드란 '이슬람의 도시'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로, 현재 파키스탄의 수도이다.

           (파키스탄의 수도 변천 : 카라치,1947~1959 -> 라왈핀디, 1959~1969 -> 이슬람아바드, 1969~현재) 

        -  전통적인 이슬람 건축양식과 현대적 양식 및 기능의 조화에 초점을 두고 건설된 계획도시로, 

           라왈핀디 북동쪽 14km에 위치하며, 해발고도는 500~600m이고, 인구는 약 70만명(2010년 기준)이다.

 

 

   (*) 샤 파이살 모스크 (Shah Faisal Mosque) :

        -  이슬람모스크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원으로, 사원 건축비용을 헌납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인

           샤 파이살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명칭이다.

        -  마갈라언덕 아래에 위치하며, 총면적 190제곱미터, 미나렛(첨탑)의 높이는 88m, 메인홀의 높이는 40m에 이르며,

           실내외를 포함하여 최대 10만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  모스크 입구에 있는 신발보관소에 신발을 맡기고,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맨발로 걸어다닌다.

   예배드리기 전에 몸을 씻는 세정대에서 손과 발을 닦은 후에, 이층의 본관으로 올라가 예배당 출입문쪽으로 가보니,

   문이 닫혀있어 예배당 안으로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  모스크를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일행은 현지인들에게 인기스타가 되어, 여러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건네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파이살모스크 전경)

   (세정대에서 몸을 씻자니, 현지인 여성들이 기둥 뒤에서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이층의 본관 앞에서)

   (본관 앞 풍경)

   (이층에서 바라본 모스크 앞 풍경)

 

                                                    (모스크 첨탑)

 

                                     (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아이들에게 어떤 의식을 행하는 것 같았다)

 

 

   (일층의 연못에서)

   (모스크를 나갈 때 신발보관소에서, 보관료 5루피를 내고 신발을 찾는다)

 

 

-  파이살모스크를 떠나 버스를 타고 다마네코산에 있는 공원으로 올라가는데, 마치 서울의 남산 팔각정을 올라가는 풍경이다.

   잘 가꾸어놓은 공원에서 이슬람아바드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구경한 후에, 저녁식사 장소인 펄 콘티넨탈호텔로 출발한다 (저녁 7:30).

 

 

   (다마네코산 공원전망대에서  -  라왈핀디에서 우리가 지나온 대로가 보인다)   

   (오른쪽 방향 풍경  -  파이살모스크가 보인다)

   (왼쪽 방향 풍경  -  오른편 뒤로 라왈호수가 보인다)

   (공원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파이살모스크 뷰포인트에서 바라본 풍경)

 

 

 

-  PC호텔 (Pearl Continental Hotel)로 불리는 이 호텔은 라왈핀디에서 최고급호텔이라고 하는데, 호텔 주위로는 무기를 휴대한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으며, 두곳의 검색대를 통과해서 호텔 로비로 들어왔다.

 

-  내일 라호르로 출발하는 22일 여행팀과 페샤와르로 향하는 36일 여행팀간의 마지막 만찬을, 특급호텔의 고급식당에서

   소고기 스테이크로 저녁식사를 한다 (저녁 8:30).

 

-  값비싼 메뉴이기는 하나 술이 없이 아이스티를 홀짝이며 소고기를 먹자니, 부드러운 소고기가 뻑뻑하니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는 기분이다.

   어제 저녁식사 때, 반주없이 정통 파키스탄음식을 먹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

 

-  능숙한 솜씨와 어설픈 솜씨 등 여러 형태로 소고기를 칼질하면서 얘기들이 오간다.

   '우리 지금 배낭여행하는 거 맞어?'

   '배낭여행하면서 이렇게 비싼 거 먹어도 되는 거야?'

   '배낭여행이라도, 이렇게 한번씩 분위기를 내봐야 하는 거여.'

   '그나저나, 술이 없이 고기가 넘어가나, 원.' ...

 

 

                                     (저녁식사 중)

 

 

 

-  숙소 호텔로 돌아와 케이씨대장님의 방으로 집합한다.

   내일이면 헤어지게 되는 두 팀간의 석별을 아쉬워하며, 오늘 복마니님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무사히 가져온 맥주를 마시면서,

   밤 늦도록 얘기꽃을 피운다.

 

-  밤 12시가 넘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내 방으로 돌아와 취침에 들어간다 (0:20). 

 

 

출처 : 웰컴투파키스탄
글쓴이 : 약수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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