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불교유적지

[스크랩]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 금당터(10.11.21)

정혜거사 2017. 8. 13. 12:47

 

 

감은사지

 

감은사는 동해안에 있는 통일실라시대의 사찰로 지금은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이며, 그 은혜에 감사하여 절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금당 앞의 탑 2기는 우리나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석탑의 모범이 되고 있다.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한다는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으나,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감은사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두 2기의 삼층석탑은 국보 제112호(1962.12.20 지정)에 지정되어 있다.

 

2층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양식으로 가람(伽藍)배치가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최초의 탑이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백제탑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그대로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치밀한 계산을 거친 정교한 비율로 짜 놓았다.

 

또한 거대함을 잘 살리기 위한 의도로 보여진다, 통돌을 사용해서는 그러한 연출이 힘들기 때문이다. 탑을 세운 때는 신문왕 2년(682)의 일로, 경주에 있는 3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다.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출처 : 정혜(正慧)의 세상사는 이야기
글쓴이 : ohjbac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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