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레 시내(18.7.30)
라다크의 역사와 전통
라다크는 10세기 중반부터 약 900년 동안 독립된 왕국이었습니다. 10세기 경 라다크를 처음 통치했던 왕조는 옛 티베트 제국의 왕조로부터 계승된 혈통이었습니다. 옛 티베트 제국이 해체된 후, 티베트 왕조 한 명이 라다크 지역으로 이동하여 첫 라다크 왕조를 세운 것입니다.
이후 몇 세기에 걸쳐 라다크의 왕들은 통치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러던 15세기 초 왕가 내에 불화가 생겨 제국이 나뉘어졌다가, 서기 1470년 라첸 바간(Lhachen Bhagan)이 라다크를 재통일하고 남걀(Namgyal) 왕조를 세웠습니다.
라첸 바간의 후계자가 중앙아시아 동-투스키스탄의 침략으로부터 라다크를 지켜낼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라다크는 이슬람 군대의 반복적인 약탈에 시달려야했습니다.
라다크가 다시 강해진 시기는 셍게 남걀(Sengge Namgyal, 1616-1642)과 델단 남걀(Deldan Namgyal, 1642-1694)의 통치 기간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라다크는 다시 영역을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초중반, 라다크는 잠무 지역 도그라 토후국의 왕인 마하라자 굴랍 싱(Gulab Singh)의 표적이 됩니다. 그의 주된 목적은 가치가 높은 라다크의 생산물인 파쉬미나의 유리한 교역권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1834년 도그라의 장군 조라와 싱(Zorawar Singh)이 이끈 라다크 침략은 독립 왕국으로서의 라다크의 최후를 가져왔습니다. 1842년 침략자들이 물러날 때까지 라다크는 합병되어 있었습니다. 1846년 영국이 암리차르 조약을 맺고 카슈미르를 굴랍 싱에게 넘겨주어 라다크는 잠무&카슈미르 주의 일부가 됩니다. 1947년 인도 제국이 파키스탄과 인도 연방으로 분할될 때, 카슈미르가 인도 연방으로 편입되고 라다크는 라다크는 인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
약 천 년 전 들어온 티베트 이주민의 문화는 토착 부족이었던 다드인과 인도-아리아인들의 문화를 압도하여 토착 부족의 인종적 특성은 희미해졌습니다.
오늘날 라다크 동부 및 중부 인구의 대부분은 티베트 혈통인 듯합니다. 저 멀리 서쪽의 카길과 그 주변 지역의 사람들은 좀더 혼합된 혈통을 암시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라다크 마을의 언덕 꼭대기에는 곰파 또는 수도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들은 사원, 기도 공간, 수도승 거주 공간으로 이루어진 복합 단지이기도 하고 작은 유적일 수도 있습니다.
라다크인들은 대체로 사교적이에요. 그들은 출생, 결혼, 장례을 비롯해 생활의 모든 대소사를 구실삼아 축제를 열지요.
라다크 사람들은 불교도이거나 이슬람교도이거나 기독교도입니다. 라다크에 불교가 맨 처음 들어온 것은 티베트가 아닌 인도로부터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인도의 황제였던 아쇼카 왕은 기원전 3세기 경 라다크에 소승불교를 전파했습니다. 이후 8세기 경 라다크인들은 티베트로부터 대승불교를 들여옵니다.
라다크 전 지역에 걸쳐서 고대 불교의 새김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옴마니반메홈" 진언이 새겨진 돌로 구성된 가슴 높이의 긴 구조물인 마니 월(Mani wall)의 형식을 취하거나 초르텐(라다크식 탑) 또는 스투파 안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인더스 강을 따라 위로는 칼세까지, 아래로는 다르칙과 다하누 마을까지 강유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불교도입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이 드록파(Drokpa)이고 여전히 불교 이전의 본(Bön) 신앙을 따르기도 하지만요. 이슬람교는 서기 15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와 카슈미르로부터 라다크로 들어옵니다. 오늘날 카길, 드라스, 수루 계곡에 시아파 교도들이 분포되어 있고 더 적은 인구의 수니파 교도들이 레와 카길에 살고 있습니다. 라다크인들의 전통적인 삶은 수 세기 동안 외부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끼쳤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자연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들의 삶은 여전히 인상적이지요. 라다크 공동체의 농업-목축 생활 방식은 매우 균형적이면서도 실용적입니다. 가축은 라다크 가정에 우유, 버터, 털, 고기, 거름 등을 제공하고 뿐만아니라 짐 운반을 돕습니다. 라다크인들은 높은 해발 고도에서 살아오면서 특유의 생활 방식을 개척해왔어요. 라다크 가정은 대체로 자급자족을 합니다. 이들의 집은 보리, 밀, 채소가 심어진 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러한 모습은 레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가족들간에도 끈끈한 협동 정신을 가지고 함께 농사일을 합니다. 이들이 마을의 밭에서 함께 농사일을 할 때면 밭으로부터 흘러오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곰파와 수도원은 기본적인 종교 의식과 더불어 다른 여러가지 종교적인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라다크인들의 삶에 중요하게 관여합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케사르라는 영웅이 세계 질서를 바로 잡고 평화를 확립하려고 애썼던 업적과 공훈에 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로 말미암아 기원전 7세기 초반 이 지역에 불교가 들어올 때까지 샤머니즘과 정령 숭배 사상이 널리퍼져 있었지요.
하지만 서부 티베트와의 전통적인 교역은 1962년에 끝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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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로드 구경 화장실 돈받음
환전소에서 30불을 67루피 2010루피 환전
환전후 부근의 티벳탄식당에 1845도착
뗀뚝,양고기모모,난,야채,탄두리치킨,밥 커리
2010 이슬람사원 앞에서 호텔 갈사람 가고
나머지는 시내구경후 21시에 만나 호텔가기로
시내 중심가
시내에서 보이는 왕궁
시내 중심가
사람이 무척 많다
분주한 도시, 레
레(Leh)는 라다크의 수도입니다. 고도 3,505m에 위치해 있지요. 17세기 셍게 남걀에 의해 지어진, 지금은 반쯤 무너진 레 왕궁이 굽어보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 왕궁으로부터 레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인더스 강 계곡 일부와 눈에 덮힌 스톡 캉그리(6,150m)의 인상적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지요.
레는 역사적으로 중앙 아시아의 야르칸드(Yarkand)와 카슈가르(Kashgar) 등 유명 상업 지역으로 향하는 길고도 고된 고산 지대 교역로의 중요 거점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한 상업적인 중요성을 바탕으로 오늘날 라다크의 행정 수도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레는 히말라야 풍경, 문화 유적, 각종 야외 활동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라다크로 찾아오는 많은 여행자들이 모이는 여행 거점입니다.
모든 종류의 여행 활동, 즉, 시내 관광, 트레킹, 지프 투어 등 모두 레를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유명 불교 곰파, 인더스 계곡, 판공초 호수, 초모리리 호수, 초카 호수, 아리얀 계곡, 쌍봉 낙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자동차 도로... 모두 레에서 출발해 쉽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환전소
여기서 1달러에 67루피로 환전을 했다
티베트 수공예품과 보석 판매점
저녁먹고 나오니 폐장하였다
티베트 수공예품과 보석 판매점
티베트 전통음식점
뗀뚝(수제비), 양고기모모(만두) 등을 먹었다
시내 중심의 이슬람사원인 모스크
모스크
자주 정전되어 상가들은 문앞에 디젤 발전기를 돌린다
발전기 소음과 매연으로 숨쉬기 힘들 정도다.
1시간정도 시내구경후 호텔로 복귀